우리가 설득을 잘 못하는 이유.
직장인 중 스스로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대체로 ‘설명형 인간’이다. 무엇이든 설명하려 하고,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특히, 자신이 일하고 있는 업계 내의 특수한 상황 또는 직무상 이해가 필요한 지점에 대해서는 놓치지 않고 ‘아는 척’을 시전 한다. 그것도 ‘설명’이라는 기술을 활용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럴 때의 설명은 ‘설득적’이지 못하다.
1) 설득하는 이의 ‘설득 기술’이 성숙하지 못하다.
말하는 순서 또는 과정 등이 미괄식이 대부분이라, 뒤로 가면 갈수록 김이 빠지는 대화가 많다. 그러다 보니, ‘어떤 주장에 맞는 근거가 함께 엮어서 상대방에 기억’되지 못한다. 또한, 한 문장으로 깔끔히 정리 된 자기주장을 평소에 갖고 있거나, 대담을 앞두고 정리해두지 않는다.
2) 설득을 하기 위하여 치밀한 설계(전략)가 부족하다.
내가 말(글)로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를 ‘어떤 순서를 통해, 어떤 근거로 전달할 것인지, 어떤 태도와 분위기로 대화를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한 복안이 필요하다. 그 복안은 하나의 시나리오로, 그 설득의 효과로 인해 상대방의 생각과 태도에 어떤 변화가 언제 일어날 것인지도 함께 생각해봐야 한다. 또한, 그게 얼어나기 위해 가장 체계화 된 어떤 과정이 수반되어야 하는지도 따져본다.
3) 설득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명확한 목표치가 불명확하다.
대부분 ‘설득’을 (상대방이) 설득되는 것에 초점을 맞춰 해석하기보다는, ‘(내가) 설득하다’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에, 설득이 되지 않았음에 대해 남 탓만을 일삼는다. 하지만 설득은 쌍방이다. 설득하다 보다는 설득이 되었다는 것으로 목표를 잡고, 그 설득이 되었다는 것을 상대방의 어떤 변화로 감지할 수 있는 지를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설득하려는 대상에게 ‘어떤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기대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도 있다.
4) 설득이 될 때까지 설득을 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하다.
‘설득하다’ 행위에 맞춰서 목표를 정하게 되면, 내가 어떤 행동을 했다는 것에 내가 할 일을 다했다고 착각한다. 같은 일을 n번 이상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착각이다. 내가 의지가 충만함을 대상에게 알려주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설득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머리와 마음에 대한 동시 공감(Sympathy + Empathy)을 추구하는 것도 좋은 전략일 수 있다. 이것은 내 의지가 충분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설득은 우리가 가지는 선입견과 오해 등으로 인해 빚어지는 촌극에 가깝다. 나는 설득을 한다고 했지만, 그 설득으로 인해 기대하는 효과(목표)가 불명확했고, 이를 설득의 대상과 충분히 공감을 통해 공유되지 못했고, 그 과정에 있어 다양한 과정과 컨텐츠를 동원하여 설득의 진정성을 전하려는 노력이 다소 부족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설득으로 인해 꺼지지 않는 의지 표출과 동시에 상호 간의 어떤 가치 및 시너지를 누릴 수 있는 지를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여 말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설득하고 싶다면,
말이든 글이든,
일단 ‘(정리된) 주장’부터 던지자.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주장이다. 그 주장을 명확히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수식하는 여러 근거 등을 뒤에 적절히 붙여, 나의 주장이 돋보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내 주장에 더욱 논리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덧대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다니는 회사로부터 떠나는 결정을 윗사람에게 전하고자 한다. 과연 어떻게 말하는 것이 좋을까.
2. 제가 원하는 성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경험’인데, 현재 회사는 이를 주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꼭 해야 하는 일인 줄은 알지만, 그게 저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기는커녕, 지루하게 느껴지고 때로는 당장 치워버리고 싶은 낡은 짐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동시에 새로 출발하기 위해 이곳을 떠나려고 합니다. |
여기서 앞의 문장 ‘원하는 성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경험이다‘이 나의 신념과도 같은 주장이다. 또한, 누구도 틀렸다고 부정하기 어려운 명제일 수 있다. 그럼, 설득은 어렵더라도 납득(인정 – Sympathy)은 가능하다.
이 주장을 수식하기 위해 붙인 근거는 ‘현재의 일은 나에게 지루함 또는 짐처럼 느껴진다’이다. 다소 납득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또 다른 공감의 영역(Empathy) 일 수 있다. 이 둘을 적절히 활용하여 ‘이해와 공감을 통한 인정을 이끌어내고, 부족하다면 유사한 원리의 다른 무언가를 끌어내어 이를 바탕으로 설득이 되도록’ 끊임없이 이끄는 것이 제가 추천하는 기본적 구조이다.
(이 상황 속) 설득의 목표는 ‘제 때에 퇴사하기’이다. 이를 위해 1) 언제 어떤 타이밍에 저 화두를 던져야 할지, 2)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3) 이때 꼭 해야 하는 말과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은 무엇인지, 4) 해야 하는 말에 있어 Sympathy + Empathy를 잘 섞는 것의 표준 답은 무엇인지, 5) 한 번에 안되면 다음의 Plan B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복안을 만들고 이를 ‘될 때까지’ 수시, 상시로 하는 것이다.
우리가 쓰는 말은 구어체, 글은 문어체이다. 물론, 이 둘을 완벽히 구분해서 사용하는 이는 거의 없다. 어떤 어투, 어체 등을 활용하는 것은 대상과 상황에 따라 구분하면 그만이다. 따라서, 설득에 있어서는 크게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과 삶 속에서 필요에 따라 내가 가진 설득의 포인트와 효과를 적절히 만들어 대응하기 위해서는 내 생활 속으로 이를 끌어들여 자연스럽게 만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설득에 있어 무엇에 유의할지에 대해 상시로 여러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등의 능동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설득해야 하는 때도, 설득당해야 하는 때도 내 입장뿐만 아니라, 반대편의 입장을 늘 고려하는 것이다. 모두 동등하도록. 그 고민의 끝에 다다르면 보다 굳건한 나의 설득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설득적인 세치 혀를 갖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질문에 나는 ‘의미가 있다’ 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커리어는 성장하여 높고 무거운 위치에 가면 갈수록 책임질 수 있는 말과 글을 상대방으로부터 요구받기 때문이다. 그에 적절히 부응하지 못하면, 그 위치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고 나도 모르게 성장이 멈출 수도 있다.
이직스쿨 김영학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