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요상한 전화를 받았다.
통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나: 네, 배준현입니다.
- 발신자: 안녕하세요. 온라인파트너십그룹 배준현 차장님 되시죠? (내 예전 팀과 예전 직함이다)
- 나: 네, 어쩐 일이시죠?
- 발신자: (소속이나 이름 등 통성명 없이 용건을 횡설수설함)
- 나: 그런데 어디서 전화 주셨을까요?
- 발신자: 아, 저는 AA 일보 BB 기자입니다.
- 나: 제 연락처는 어떻게 아셨죠?
- 발신자: 선배들한테 구글에 연락처 아는 사람 있으면 아무나 소개해달라고 해서 받았습니다.
- 나: 그렇군요. 제가 출산휴가 중이고 말씀 주신 팀은 제 예전 팀입니다만, 어떤 일로 전화 주셨을까요?
- 발신자: 구글 XX 팀 담당자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 나: 해당 팀은 제 담당 분야가 아니고 제가 해당 담당자분의 연락처를 알지 못하며, 안다고 해도 개인의 연락처를 동의 없이 알려드리기 어렵습니다.
- 발신자: 내선번호도 없을까요?
- 나: 네, 내선번호가 따로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론 XX 팀에서 매체 담당자들을 따로 관리하는 것으로 압니다.
- 발신자: 네.. 대뜸 연락드려 죄송했습니다.
이 통화의 잘못된 점은 무엇일까?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됐다.
1. 내가 물어볼 때까지 본인이 누군지 밝히지 않았다.
모르는 상대방에게 전화할 때는 본인의 소속과 이름을 먼저 밝혀야 한다.
2. 내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는지도 안 밝혔다.
내가 물어보자 그제야 ‘선배’들에게 구글의 ‘아무나’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얻었다고 했는데 황당했다. 학교, 직장 등 어떤 ‘선배’에게 받았는지도 불명확하고 목적 없이 ‘아무나’의 연락처를 받았다니. 요즘같이 개인정보 노출이 민감할 때 수신자의 연락처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연락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 불쾌할 수밖에 없다.
3. 통화 목적, 즉 용건을 명확히 얘기하지 않았다.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상대방이 무어라 말을 하긴 했는데 명확히 알아듣기 힘들었다. 용건을 다시 물어봤을 때도 배경 없이 대뜸 특정 팀 담당자 연락처를 요청했다. 나라면 어떤 배경에서 어떤 이슈가 발생해서 특정 팀과 연결이 필요한 상황인데, 해당 팀의 연락처는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연락했다고 맥락을 덧붙였을 것이다.
4. 잘못된 담당자에게 잘못된 부탁을 했다.
기자가 연락처를 원했던 팀과 내 업무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다. 비유하자면 삼성전자의 모바일 사업부 해외영업 1팀 모 과장에게 전화해서 삼성그룹 인사팀 담당자 연락처를 묻는 격이었다. ‘아무나’의 연락처를 찾기보다 조금 더 적절한 담당자의 연락처를 찾는 노력이 필요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앞뒤 안 가리고 대뜸 연락해서다.
통화 후 나는 해당 연락처를 차단했다.
대뜸 연락하면 원하는 결과는 얻을 수 없을뿐더러 상대방에게 차단당하기 일쑤다. 그러면 미래의 기회들까지 놓치는 꼴이 된다. 연락을 안 하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얻는다.
같은 날 우연히 다른 회사 담당자로부터 콘텐츠 관련 제안 이메일을 받았다.
해당 담당자는
1. 본인의 소속과 이름을 제대로 밝혔고
2. 내 연락처의 출처 또한 명확히 밝혔다. 내 블로그를 통해서 연락처를 알게 됐고, 블로그 글을 읽어보며 협업을 제안하게 됐다는 배경 설명까지 곁들였다.
3. 위 메시지를 통해 여러 명에게 복사-붙이기해서 보내는 게 아니라 맞춤형 메시지를 보낸다는 인상을 받았다.
4. 그리고 나에게 원하는 용건을 간결하면서 분명하게 전달했다.
결론은? 긍정적 검토를 했고 해당 담당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콜드콜, 콜드메일을 통해 누군가에게 제안이나 부탁을 할 때는 최소한의 준비를 한 후에 연락하자. 특히 전화를 할 때는 익숙하지 않는 사람은 일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여 스크립트를 써두면 도움이 된다.
기본적인 비즈니스 매너를 지키면서 맞춤형 제안을 한다면, 서로의 니즈가 맞아떨어지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배준현 님이 블로그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