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마킹에도 Why가 필요하다
누군가 필자에게 연말 마케팅의 꽃이 무엇인지 물으면 세가지를 대답하겠다.
첫번째는 11월 말의 대량 클리어런스, 블랙 프라이데이고, 두번째는 종교와 상관없이 전 국민이 좋아하는 축제, 크리스마스다. 그리고 대망의 세번째는, 연말과 신년에 걸쳐 다양한 연계 굿즈를 뽑아내는 다이어리 마케팅이다.
특히 다이어리 마케팅은 유통 업계 전반에 걸쳐 드러날 만큼 큰 이슈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의 다이어리 마케팅은 커피를 자주 마시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하다. 스타벅스는 행사 기간 내 미션 음료를 포함하여 제조 음료를 기준 잔 수 이상 구매하고, e-스티커 적립을 완성한 고객에게 플래너를 증정하는 이벤트를 해왔다. (스타벅스에서는 공식적으로 ‘플래너’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나, 이하 글에서는 시장 전반에 통용되는 의미 전달을 위하여 ‘다이어리’로 표기한다.)
‘겨울 매출 마법’이라고도 불린 스타벅스의 다이어리 마케팅
쏟아져나오는 뉴스만 봐도 실제로 매출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김소연, ”스타벅스, 겨울의 매출 마법…’다이어리 경제학’”, 2016.10.26 / 김서경, ”‘왕관의 무게’ 견디는 스타벅스…1위라서 더 주목받는다”, 아시아투데이, 2022.08.01) 스타벅스를 벤치마킹한 커피 전문점들의 굿즈 행보는 커피 업계에 다이어리 마케팅 대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굳이 기사를 보지 않더라도, 2023년을 앞둔 지금까지도 관행처럼 다이어리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 마케팅이 연말 매출에 큰 도움이 되고 있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다이어리 마케팅을 하는 것이 매출 상승의 공식이 된다면, 다이어리 마케팅을 하는 다른 커피 전문점들은 어째서 스타벅스의 매출을 뛰어넘지 못할까? 혹은, 스타벅스 다이어리의 유명세를 뛰어넘지 못할까?
스타벅스가 다이어리 마케팅의 대명사인 것은 맞지만, 이 마케팅이 언제나 효과적인 것은 아니었다. 2021년 스타벅스의 다이어리 수요는 그 명성에 미치지 못했다. Covid-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이후 매장에 방문하여 커피를 섭취하는 소비자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커피를 마시고 e-스티커를 적립하는 소비자의 수도 줄어들게 된 것이다.
거기에 “다이어리의 인기가 시들한 것은 사실”이라고 표현될 만큼, 스타벅스 외에도 이디야커피, 투썸플레이스, 커피빈 등의 다이어리 굿즈가 품절된 경우 또한 없었다고 한다. (스타벅스 ‘다이어리 대란’ 13년 만에 끝…올해 대란템은 ‘OOOOO’>, 동아일보, 2021.12.08) 그러나 재미있게도, 사람들의 집안 생활이 늘어나면서 소위 ‘다이어리 꾸미기’로 대변되는 시장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아예 뉴스에서도 ‘다꾸족’에 대해 트렌드를 이야기할 정도. (홍시, ”불렛저널 시스템 #4. 비슷한 듯 다른 듯, 다꾸와 불렛저널”, 오롬매거진, 2021.07.22)커피 전문점들의 다이어리 판매가 저조한 것은 이런 다이어리 고관여자들이 늘어나면서 ‘보수적인 형태의 기념품’의 매력도가 떨어진 영향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올해, 대형 커피 전문점들은 어김없이 보수적인 다이어리를 내놓았다. 스타벅스만 빼고.
일반적으로 (보수적인)다이어리란 월별 스케쥴이나 이벤트 등을 데일리(daily) 혹은 먼슬리(monthly)로 기록하는 노트를 의미한다. 다이어리를 어떻게 쓰는 지는 소비자의 마음이겠지만, 기본적으로 올 인 원(All-in-one)형 노트를 제공하고, 다양한 주제를 날짜에 맞추어 기록할 수 있게 하는 구성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이번에 스타벅스에서 내놓은 ‘라이프 저널’은, 아주 상반되게도, 단 한가지 주제에 대해 적을 수 있도록 의도된 다이어리다.
스타벅스는 다이어리 마케팅과 소비자가 장소에 머무는 시간을 제한하지 않는(일하기 좋은 공간을 연상시키는) 마케팅을 통해 공간에 대한 경험 마케팅을 이끌어왔다. 또한 이런 시도는 매우 독특한 것이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하지 않는 문화경험의 선구자라는 이미지도 동시에 갖추게 됐다.
그러나 성공의 공식이었던 ‘한정판 굿즈’로서의 다이어리 소비가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라이프 저널’이라는 트렌드에 알맞은 상품을 내놓음으로써, 스타벅스는 자사의 다이어리 마케팅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기존의 매니아 소비자들에게 신선함을 줬고, 기존의 타깃이 아니었던 (예를 들면 토픽형 불렛 저널의 고관여자) 소비자들에게는 어필의 기회가 생겼다.
이 ‘라이프 저널’이 필자의 예상처럼 인기를 얻게 된다면, 스타벅스에게 단순한 기록지, 혹은 다이어리 이상의 브랜딩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예측된다. 한 주제에 토픽형 노트를 가져갈 만큼 깊게 빠져 있는 소비자들에게 이 노트는 상대적으로 소장가치가 높아지고, 이는 당연하게도 1년을 목표로 하는 다이어리보다 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때 자신의 긍정적인 경험을 상기시키면서 그 감정을 스타벅스라는 브랜드와 연결시킨다면 어떨까?
‘미쉐린(미슐랭)’은 ‘미슐랭 가이드’(이전에는 미슐랭으로, 한 때는 병행표기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검색시 미쉐린으로 통일되어 표기된다. 따라서 이하 ‘미쉐린’으로 표기한다.)로 알려져 있는 국제적인 여행 안내서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가이드의 요소 중에서도 레스토랑에 ‘미쉐린 등급’이라고 불리는 랭킹이 유명한데, ‘미쉐린’은 이 마케팅 활동을 통해 제품인 타이어의 소비를 촉진시키고, 개인의 경험과 제품을 연결시켜 긍정적 기억을 남기는 효과도 얻었다. (최향란. (2008). 1900-1930년대 프랑스 미슐랭(Michelin) 사의 성장전략과 합리화. 프랑스사 연구, 19, 167-190.) 이와 마찬가지로, 스타벅스는 ‘라이프 저널’을 통해 문화적 트렌드, 혹은 문화적 소비와 이어진 브랜드라는 ‘느낌’을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
스타벅스와 스타벅스 다이어리(기존 플래너)의 연관 관계는 단단하다. 소비자들은 스타벅스 연말 굿즈로 가장 먼저 기존 다이어리를 떠올린다. 게다가 소비자가 라이프 저널을 선택하는 과정은 새로운 소비자의 획득 이전에 카니발리제이션(Cannibalization ; 한 기업의 신제품이 기존 주력제품의 시장을 잠식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두산백과, ”카니발리제이션”))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판매량과는 관계없이, ‘라이프 저널’의 기획은 ‘문화 경험을 주도하는’ ‘스타벅스다운’ 기획으로 보인다. 그것은 스타벅스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어필 가능한 것이다.
이 후로 기존 형태의 다이어리보다 토픽형 저널이 인기를 갖게 된다고 해보자. 그것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 것인지, 우리 브랜드가 왜 이것을 해야하는지 등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 벤치마킹만 이어간다면 그 어떤 브랜드의 결과물이라도 아무렇게나 나눠주는 대량 생산 에코백의 꼴을 면치 못하게 될 테다.
해당 콘텐츠는 마케터Z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