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스해커의 KPI 설정법
안녕하세요?
신사동 마케터입니다.
여러분 올드보이 보셨나요? 영문도 모른 채 갇혀서 군만두만 먹다가 풀려난 뒤 최민식은 유지태에게 물어보죠. 날 다시 풀어준 이유가 무엇인지. 그때 유지태의 대사.
질문이 잘못됐어요.
왜 풀어줬는지가 아니라 왜 가뒀는지를 물어봐야 해요.
최민식이 왜 가뒀는지를 물어봤다면 결말이 조금 달라졌을까요? 아무튼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유지태는 왜 최민식을 가둘 수밖에 없었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데요. 카카오 김범수 회장이 저 대사에서 엄청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앱 서비스에서는 유저의 모든 행동이 다 데이터로 남잖아요. 옛날엔 볼 수 없었던 유저들의 반응이나 행동 데이터도 다 확인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런데 여기서 질문.
그래서 마케팅하기 더 쉬워졌나요?
과거에는 tv나 라디오, 옥외광고, 잡지 같은 일방적인 매스 광고를 통해 소통했죠. 기업은 광고를 내보내고 그로 인해 우리 서비스에 얼마나 유입이 됐는지, 구매가 얼마나 일어났는지 측정이 어려웠습니다. 반면 앱 환경으로 바뀌면서 마케터가 원하는 모든 것은 데이터로 추적할 수 있게 됐지만 오히려 마케팅은 더 어려워졌어요.
지표 정의가 데이터 활용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
- 이 그래프나 데이터에서 어떤 것을 읽어낼 수 있을까?
- 이 데이터에서 인사이트를 얻으려면 어떤 분석 방법이 필요할까?
우리가 데이터를 활용하려고 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질문들입니다. 그런데 설사 저 질문에 답을 구했다고 해도 데이터를 통해 애초에 우리가 달성하고자 했던 목적은 이루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 이런 질문을 먼저 하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카시와기 요시키라는 분이 쓴 <데이터 문해력>이라는 책에서는 데이터 활용에 필요한 3가지 상자가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개인적으로 데이터 관련 업무를 하는 모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상자. [생각] 분석 전에 문제 및 목적을 정의하고 가설을 구축
두 번째 상자. [작업] 분석을 위한 기술과 지식
세 번째 상자. [생각] 분석 결과에 대한 해석 및 스토리 구축
이 중 데이터를 활용하고자 하는 마케터는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요? 당연히 ‘생각‘ 부분에 주목해야 합니다. ‘작업한다’라는 부분은 기계가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빠르고 정확하거든요. 데이터를 활용하는 마케터라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생각’ 부분, 1번과 3번 상자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첫 번째 상자인 <분석 전에 문제 및 목적을 정의하고 가설을 구축>하는 단계가 지표 정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데이터를 먼저 보지 마라
<데이터 문해력>에서는 극단적으로 “데이터 보지 마라”라고 까지 이야기합니다.
제 IT 첫 커리어 시작은 애드 네트워크에서 전략기획 업무였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으로 치면 앱 서비스 PO와 비슷한 업무였던 것 같아요. 그때 저의 매니저는 창업 멤버로 회사를 IPO까지 시킨 분이셨는데 같이 일을 하다 보면 cpu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두뇌회전이 빨랐지만 그만큼 직원들을 심하게 압박해서 6개월 이상 버틴 직원이 없는, 한마디로 직장 생활하면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유형의 상사였습니다. 그분이랑 일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가 굉장히 모호한 디렉션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저를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그랬던 것 같아요. 입사한 지 3개월쯤, 또다시 모호한 업무 지시를 받아 들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루 종일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으니 제 옆에 있던 직원이 한 마디 하더군요.
뭘 봐야 할지 몰라서 그러고 계신 거 아니에요?
문제만 명확하다면 나머지는 줄줄이 고구마
정말 뼈 맞아서 순살 될 뻔했습니다.
문제만 명확하다면 어떤 데이터를 봐야 할지, 그 데이터를 통해 알고 싶은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지. 줄줄이 고구마처럼 딸려 나오거든요. 그 뒤로 저는 어떤 일을 시작하더라도 sql이 아니라 문서에 생각을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일을 시작하게 된 배경,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 달성하고자 하는 KPI, 의사결정이 필요한 부분, 의사결정에 필요한 데이터, 데이터에 대한 정량적이고 구체적인 정의, 실험설계, 액션 아이템 까지.
제가 데이터 관련 일을 할 때 쓰는 에너지와 시간을 비율로 따져본다면 문제 정의에 필요한 문서를 정리하는 데 전체 리소스에 80% 이상을 사용합니다. 그냥 머릿속으로 생각을 해보는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반드시 문서로 정리해야 합니다. 생각을 문장으로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논리에 비약과 중복이 없는지, 더 좋은 대안이 없는지 등등 점검할 수 있습니다. 여러 번 자기 검열을 거치고 동료들과도 리뷰를 마치면 계획에 따라 데이터 추출을 시작합니다. 어떤 데이터를 추출할지, 추출 결과에 따라 어떤 액션을 할지 이미 충분히 고민해뒀기 때문에 뒷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튀어나오지 않는 한 전체 리소스에 20%의 에너지만 투입해도 문제 해결까지는 순식간에 도달합니다.
앞으로 제가 연재할 <마케터의 지표정의> 글에서도 데이터 분석에 대한 기술이나 통계적 방법론이 아니라 데이터를 활용해서 자신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모든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제. 대.로. 된 데이터 활용법에 대해 공유해볼게요.
오늘도 행복하세요~!
데이터를 기반으로 마케팅 업무를 하는 분들과 생각과 고민을 나누기 위해 ‘마케터의 지표정의’에 관련된 글을 시리즈로 연재하고자 합니다. 어떤 지표를 목표로 달려가느냐가 마케팅의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고 생각해요. 제대로 된 지표와 함께 서비스를 성장시키고 싶은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앞으로 제가 공유할 이야기들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0.Intro_데이터로 마케팅하기 어려운 당신에게(▶We are here)
#1.우리가 데이터 활용에 매번 실패하는 2가지 이유
#2.KPI란?
#3.북극성지표란?
#4.북극성 지표의 조건
#5.좋은 가설의 조건
#6.북극성 지표 가설 수립
#7.데이터 추출 요건 정의하는 방법
#8.데이터 해석하는 방법
#9.북극성 지표 정의
#10.문제해결을 돕는 그로스마케터의 사고법 1
#11.문제해결을 돕는 그로스마케터의 사고법 2
#12.문제해결을 돕는 그로스마케터의 사고법 3
#14. Outro_데이터 활용&그로스마케팅 관련 도서추천
신사동 마케터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