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수) 코스모폴리탄 클로즈업 줌 세미나 강연 내용을 정리했어요. 들어주시고 따뜻한 마음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
지금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같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 오랫동안 하고 있는 일과 다른 일을 꿈꾸었다. 이리저리 휩쓸리던 주니어 시절, 일만 미워해도 충분했을 텐데 왜 나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만 했던 나 자신까지 미워했을까.
두 개의 나
한동안 회사 안에서의 나와 회사 밖에서의 나를 철저히 분리했다. 회사에서는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사회인으로 제 몫을 다 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리고 퇴근 후 피곤함을 이기며 글을 썼다. 그때의 글은 콘텐츠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일기였다. 글은 나의 유일하고 안전한 도피처였다.
회사 안의 나 – 하고 있는 일
회사 밖의 나 – 하고 싶은 일
용의주도한 이중생활은 다행히도 잘 굴러갔다. 회사에서는 프로모션 마케터로 일하고 회사 밖에서는 글을 쓰는 작가이자 크리에이터로 활동한다. 작년에는 에세이집 <매일매일 채소롭게>를 출간했고, 올해 여름에는 브런치북 X 클래스101 공모전에 당선되어 <내 콘텐츠로 전문가 되는 법> 클래스를 만들고 있다. 1년째 일하는 어른들의 고민을 이야기하는 뉴스레터 <함께하는 독학클럽>을 발행하고 있으며 6개월째 리추얼 플랫폼인 <밑미> 에서 리추얼 메이커로 활동하고 있다.
해야 할 일을 기술적으로 해치우는 회사원과 하고 싶은 일을 열정적으로 해내는 나 사이 간극이 정점에 달했을 때 결국 이 두 자아가 같은 마음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 안에서도 밖에서도 나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고 싶었다.
퇴근 후 콘텐츠를 만드는 이유
나에게 콘텐츠란 내가 가진 생각, 아이디어,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을 기록하고 정리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그 결과물이 글일 때도 있고 프로젝트 기획안일 때도 있고 포트폴리오나 프로모션 페이지가 될 때도 있다. 세상에 나를 드러내고 이해받고 인정받는 것. 내가 가진 활활 타오르는 마음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을 본질적인 욕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회사 생활 초반, 회사에서 하는 일에서 ‘나’를 드러낼 수 없다는 답답함을 느꼈다. 그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글을 써야만 했다. 그 당시에 글은 감정의 배출구였다. 콘텐츠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읽을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글이었다.
그렇게 혼자만의 글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다가 친구가 브런치 공모전에 수상해서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 부러워서 냉큼 친구 따라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그리고 떨어졌다. 브런치에 너무 서운해서 1년간 접속도 하지 않다가 1년 즈음 지나 다시 마음을 다잡고 도전해 두 번의 시도 끝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브런치는 정말 기회의 땅이었다. 에세이를 올리기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나고 출판사로부터 메일이 왔다. 브런치에 연재하는 에세이를 책으로 내고 싶다고.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다를 때
하고 있는 일을 꾸준히 하면서 그 일에 대한 생각을 드러낸 콘텐츠가 차곡차곡 쌓이고 나니 그 콘텐츠가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세상에 알려주고 있었다. 작은 기회를 만났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다시 글로 기록해서 공유했다. 그 기록을 통해 또 기회를 만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하고 싶어 했던 일을 하고 싶은 방식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커리어를 바꾸고 싶어서 부단히 노력할 때는 꿈쩍도 하지 않던 바위가 이렇게도 움직일 수 있다니.
처음 회사 생활을 시작했던 9년 전, 내가 하는 일을 싫어했고 그 일을 하는 스스로를 미워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 일이 싫었던 게 아니라 같이 일했던 동료가 힘들었던 거고 그 조직에서 일하는 방식이 싫었던 거였다. 당시 했던 일인 영업사원 교육 직무는 사실 싫기는커녕 재미있었다. 퇴근 후 HR 세미나에 사비로 참석할 정도로.
그렇게 좋은 일을 사람과 방식 때문에 미워했다면, 반대로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방식이 문제인 것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을 정해진 대로 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바꿔서 해보면 달라지지 않을까? 변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자체를 (what) 당장 바꿀 수 없다면 일하는 방식 (how) 부터 바꿔보기로 한 거다. 그러려면 더 많은 고민과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게 내가 원하는 일이라면 그 정도는 감수할 만했다.
하고 있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되기까지
일단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속성을 나열하고 분류하고 연결해보기로 했다. 하고 있는 일은 데이터 분석, 프로모션 마케팅, 회사 생활. 하고 싶은 일은 교육, 커뮤니티 기획, 작가이다. 하고 있는 일에서 하고 싶은 일로 가기 위해 거쳐갈 [how 바꾸기] 중간 과정을 설계해보기로 했다.
1. 데이터 분석 – how 바꾸기
데이터를 납작한 숫자로만 바라보지 않고 나만의 가설을 세우고 스토리 텔링을 한다. 작가가 스토리텔링을 하듯이 숫자 안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낸다.
2. 프로모션 마케팅 – how 바꾸기
쿠폰 생성, 포인트 지급, 경품 처리를 하면서 나의 일을 운영 업무라고 생각했다. 70%의 시간을 운영에 쓰더라도 그 일을 왜, 어떻게 결정하는 것은 30%의 시간 동안 하는 기획이다. 일의 기준을 ‘시간’으로 보지 않고 ‘영향력’으로 보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기획자, 카피라이터, 스토리텔러가 되었다.
3. 회사 생활 – how 바꾸기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다닌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럴까? 돈 말고는 아무 가치가 없나? 나는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결과를 만드는 경험을 10년째 하고 있다. 이 경험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배울 점이 있는지 생각하자면 끝도 없다. 그동안 회사에서 경험했던 일을 글로 풀어내서 지금 이렇게 글도 쓰고 강의도 한다. 일하는 마음에 대한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밑미에서 공부 리추얼을 리딩 하면서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나열하고 분류하고 연결해보니 이미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내 일의 가치를 가장 인정해주지 않은 사람은, 어쩌면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일의 여정을 그리고 나의 일을 스스로 인정해주고 난 후 점점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회사 안과 밖의 경험이 서로를 돕다
회사 안의 나 – 하고 있는 일 – 프로모션 마케터
회사 밖의 나 – 하고 싶은 일 – 기획자, 크리에이터, 커뮤니터
how 바꾸기는 회사 안에서 일하듯이 회사 밖에서 일하고, 회사 밖에서 일하듯이 회사 안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두 경험은 서로를 돕고 발전시켜주었다.
회사에서 프로모션을 기획하면서 아주 작은 요소라도 나만의 관점을 담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니 넓은 시야로 일의 맥락을 스스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일에 매몰되기 쉬운 주니어 시절을 벗어나게 해 준 것은 회사 밖 글쓰기와 모임이었다.
회사 밖 콘텐츠를 만들 때는 내 콘텐츠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회사에서 경험한 데이터 분석과 프로모션 기획이 큰 도움이 되었다. 회사에서 생산성 툴, 데이터 툴을 다루면서 꼼꼼하게 문서로 정리하고 보고서를 만든 경험이 콘텐츠를 만들 때 길잡이가 되어줬다. 보고서도 콘텐츠라는 것을 깨달았다.
** 회사에서 배운 정리, 기획, 데이터 분석은 회사 밖에서 일할 때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 회사 밖에서 자유롭게 기획했던 콘텐츠와 모임 경험은 회사 안에서 단순한 업무에도 “나만의 스토리와 맥락”을 불어넣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진정한 보상은 스스로의 인정
스스로 하는 일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을 꾸준히 콘텐츠로 만들어 세상에 알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올해 이직을 준비하며 또 한 번 깨달았다. 이전 회사에 다닐 때는 내가 하는 일을 ‘반복적인 운영 업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의 일을 내세울만한 것으로 여기지 못했기에 그동안 한 일을 정리해서 포트폴리오로 만들거나 나만의 언어로 내 일을 표현해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원하는 기업에 지원해도 결과가 좋지 않았던 적이 많았다.
퇴근 후 콘텐츠를 만들면서 내 일을 어떻게 정리하고 인정하고 가치를 담아 표현해야 하는지 반복 훈련을 한 셈이다.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일에 대한 방향성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을 때 “아 이 일은 이런 방향으로 진행하면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겠다” 하는 감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내 일을 반복 운영 업무가 아닌 마케터, 기획자의 일로 인정해줬다. 그 후에는 지원하는 회사로부터 모두 좋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회사에서 나를 찾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퇴근 후 콘텐츠를 만들었던 건데 그 콘텐츠가 회사에서의 나를 성장시키게 된 것이다.
9년 전으로 돌아가 25살의 나에게 “콘텐츠를 만들어서 커리어를 성장시키라.”는 조언을 한다면 좀 덜 헤매고 더 빠르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 대답은 아니오다. 콘텐츠 만들기의 시작이 <글 쓰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커리어 점프업을 위한 콘텐츠 만들기>였다면 얼마 버티지 못했을 거다. Input이 output으로 연결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 누구나 노력한 만큼 보상받고 싶은데 그러지 않으면 지속하기가 힘들다. 내가 지속할 수 있었던 건 그 당시 글 쓰면서 느끼는 해방감만으로 충분한 보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돌고 돌아왔지만, 돌고 돌아왔기에 오랜 시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래서 후회도 아쉬움도 없다.
위의 그림은 개미 가족이 장애물을 통과해 먹이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장애물이 없다면 곧장 먹이를 찾았겠지만 우리의 삶 속에는 늘 장애물이 있다. 장애물을 (그림을 보는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피해 간다면 빠르게 먹이까지 도달할 수 있겠지만 처음 가보는 길이고 장애물로 가로막혀 있어서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개미 가족은 이런 방식으로 최적의 경로를 찾는다.
수많은 개미가 각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그중 몇몇 개미가 먹이를 발견한다. 그들은 돌아오는 길에 페로몬을 뿌린다. 멀리 돌아가는 왼쪽 경로를 택한 개미 중 몇몇도 먹이를 찾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자신이 왔던 길과 반대의 최적화된 경로를 택한다. 역시 돌아오면서 페로몬을 뿌린다. 먹이를 찾은 개미가 늘어갈수록 그들의 경로에는 진한 페로몬이 덧입혀지고, 먹이를 찾지 못한 개미의 경로에는 페로몬의 흔적이 옅어진다. 시간이 지나면 개미집과 먹이 사이를 잇는 최단 거리의 페로몬 루트가 만들어진다. 책 <프로세스 이코노미>에서 본 떠돌이 개미의 성공법이다.
지그재그로 길을 잃어본 사람이 오히려 원하는 곳으로 향하는 최적의 루트를 찾아낼 수 있다. 당장 가시적인 output이 나오지 않아도 괜찮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면 지그재그로 헤매는 길이 그리 험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길가에 핀 꽃을 보며 쉬기도 하고 떠가는 구름을 보며 함께하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이 헤맬지도 모른다.
진정한 보상은 오직 나만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다. 나는 내가 가진 어떤 경험과 시간, 생각을 이해하고 인정해주고 싶은가? 내가 나를 인정해줄 때 비로소 세상이 나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단단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