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인 효과의 가격 인상보다는 장기적인 생존을 위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농심은 이제 버틸 수가 없다!
농심이 결국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습니다. 라면과 주요 스낵의 출고 가격을 각각 평균 11.3%, 5.7% 인상키로 한 건데요. 지난해 오뚜기가 무려 13년 만에 가격을 올릴 정도로, 라면은 가격 인상에 매우 민감한 품목입니다. 서민을 위한 상품이란 이미지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심이 고작 1년여 만에, 그것도 상당히 높은 인상폭으로 가격을 올린 이유는 그만큼 대외 환경이 좋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원자재 납품가와 환율이 동반 상승하면서, 비용 구조가 악화되었고요. 이로 인해 농심은 무려 24년 만에 분기 기준 적자를 기록하였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실적 악화를 이례적으로 강조하며, 사전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비판도 일부 있긴 했지만, 농심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몰렸던 것도 사실이긴 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가격 인상은 앞으로 도미노처럼 확산될 가능성이 큽니다. 여론의 반발을 감수하고 농심이 총대를 멘 이상, 다른 식품 업체들도 망설일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인플레이션과 환율 상승으로 인한 비용 증가라는 고통은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도 하고요.
한편 가장 먼저 가격 인상을 단행한 덕분에, 농심의 향후 실적 전망은 긍정적일 거라는 평가가 압도적입니다. 올해 4분기 정도부터는 이익 개선 효과가 나타날 거라 하고요. 이에 따라 주가도 상승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단기적으로는 가격을 올리는 것이, 잘한 선택이라 보이긴 하는데요. 길게 봐도 과연 똑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요?
가격 인상만으론 한계가 있어요
우선 농심의 이번 가격 인상은 출고 가격에 해당되며, 인상폭도 평균 기준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농심이 올린 가격은 그대로 소비자가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유통업체를 거쳐 적용되게 됩니다. 물론 공급가가 오르면 당연히 최종 소비자가 또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결국 판매가를 결정하는 건 유통업체이고, 농심이 이를 온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게 문제인데요. 과거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농심이 이를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마트가 손해를 보더라도 신라면을 업계 최저가로 판매하자, 아예 판매망에서 제외하며 이마트를 길들인 겁니다. 하지만 이는 과거의 영광에 불과합니다. 최근에는 유통업계, 특히 이커머스 플랫폼들에게 가격 경쟁권을 서서히 내주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와 같은 구조적인 한계와 가격 결정권 상실은, 가격 인상으로 인한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습니다.
더욱이 현재 라면 시장 내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무엇보다 1등 상품 신라면의 아성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섣부른 가격 인상은 독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특히 오뚜기가 라면 시장 점유율 마의 30% 선 돌파를 앞둔 것은 물론, 진라면이 신라면의 턱 밑까지 쫓아왔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구매 경험도 기준이긴 하지만, 진라면이 신라면을 앞섰다는 통계자료가 나올 정도입니다. 단기적인 수익 회복이 중요하다지만, 장기적으로 시장 지배력을 상실한다면, 이보다 뼈아픈 일은 없을 겁니다.
또한 이번 가격 인상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유통 PB상품과의 경쟁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아직 라면 시장에서 PB의 영향력은 미미하지만요. 냉동 HMR 분야에서는 PB제품의 시장 점유율이 CJ제일제당(22.1%)에 이은 2위인 18.4%를 차지할 정도로, 이미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는 시장도 꽤 됩니다. 한국경제가 주관한 구매 경험도 기준으로도 우유, 즉석밥 등에선 PB브랜드가 수위권에 들기도 했고요. 이와 같은 PB상품의 핵심 경쟁력은 역시 가격 우위인데요. 원가 상승을 이번처럼 가격 인상 만으로 해결한다면, 라면 시장에서도 PB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래도록 살아남으려면
그러면 가격 인상을 하지 않고도 수익성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사실 농심과 라면 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오뚜기와 삼양식품은 이번 2분기 실적에서 모두 오히려 영업이익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건 포트폴리오 때문인데요. 오뚜기는 다양한 식품을 고루 취급하였기에, 밀가루 상승으로 인한 타격을 덜 입었고요. 삼양식품은 라면 비중이 높은 건 농심과 동일했지만, 해외 매출 비중이 높았기에, 오히려 좋은 성적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최대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잘 구성한다면, 원가 리스크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본질적인 해결책이라 볼 순 없고요. 문제의 근원을 완전히 뿌리 뽑으려면, 식품 제조기업들도 D2C 비중을 늘리는 것이 결국 필요합니다. 직접 유통망을 일정 규모 이상 갖추면요. 우선 최종 소비자 판매가를 어느 정도는 직접 통제가 가능합니다. 또한 유통업체와의 공급가 협상 과정에서도 주도권을 다시 가져올 수도 있고요. 그래서일까요? 농심은 지난 8월 30일 농심몰을 오픈하며 이커머스 시장에 진출하였습니다. 농심뿐 아니라, 풀무원이나 동원 등도 자사몰 키우기에 열중인데요. 과연 이들 중 가장 먼저 성공 사례를 만들 곳이 어디일지 매우 궁금합니다.
기묘한 님이 뉴스레터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