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없는 커리어 만들기] 경험은 실력이 될 수 없다

 

 

처음이 어렵다는 말이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둘 때보다 3번째 직장을 나오면서 가장 긴 고민을 했다. 두고 오기에 아쉬운 것이 많았다.  

 

• 1시간만 넘겨도 꼬박꼬박 챙겨주는 야근 수당
• 휴대폰, 인터넷, TV 요금 지원
• 넉넉한 팀 비용 덕분에 매일 법카로 마시는 커피
• 택시 10분 출근이 가능한 회사 위치
• 자율 출퇴근제
• 화를 내지 않는 조직 분위기
• 마음 터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동료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그만둔 이유는 단 하나였다. next step. 1년 반 동안 일하면서 배운 것이 많았지만 ‘딱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단계 넘어서는 경험을 하려면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 확신이 든 것은 1년이 지난 후였다. 내리 6개월을 이직 준비를 하고 합격하고 취소하고 다시 면접을 보고 합격하고 취소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이제 떠나자고 익숙한 경험을 버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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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경험을 후회하지 않아

 

10년간 여러 번 직업을 바꾼 친구를 만났다. 그는 하고 있는 일을 견딜 수 없어 몸이 망가지기 시작할 때쯤 직업을 바꾸었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그는 두 가지 마음을 털어놓았다.

“네가 꾸준히 회사 다니면서 돈도 모으고 연차도 쌓는 걸 보면 부럽기도 해. 그렇지만 난 젊을 때 한 경험이라면 방황에도 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지난 시간을 후회하지 않아.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

그 친구의 지난 시간을 지켜보면서 나 역시 그가 안타깝다거나 못나 보인다는 생각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디에서든 야무지고 똑 부러진 친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동시에 마음 한 켠에는 아쉬움 마음도 있었다. 그가 일을 옮길 때마다 스스로 원해서 한 결정이 아니라 등 떠밀리듯 내몰린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10년 차가 이것밖에 안 돼?

 

여러 번 직장을 옮기면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부담감을 자주 느꼈다. 새로운 조직에 가면 다시 처음부터 나를 알리고 인정받아야 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이력서는 번지르르한데 막상 실력은 별로네?’라는 반응을 보는 것이었다. 새로운 직장에 들어설 때마다 스스로를 두려움과 불안, 인정 욕구에 내맡긴 채 질주했다. 

회사 경험이 늘어날수록 이직 횟수가 잦아질수록 알게 되는 동료가 많아질수록 궁금해졌다. 경험은 실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걸까? 왜 똑같은 시간을 보내고 똑같은 경험을 해도 사람마다 결과가 다른 걸까? 그 다름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1만 시간의 법칙을 거스르다

 

인스타그램 계정 <영감 노트>에서 아티클 하나를 읽고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우아한 형제들 김범준 CTO 강의 기록이었다. 아래에 요약해본다.

 

 

시니어는 경험 많은 개발자인가? 그럼 10년 이상 경험을 가지면 시니어인가? 스시 장인이 되려면? 1년 차: 청소와 같은 허드렛일만 진행 2년 차: 위와 동일 3년 차: 위와 동일 이 경우 3년 경험을 쌓았지만 진짜 3년 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가? 경력이란 숫자는 그 사람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지표가 아니다. 진짜 실력이 되려면 2년 차에서 다음 일, 3년 차에서 그다음 일을 해야 한다. 10년의 경험을 가진 시니어 1년의 경험을 10번 반복한 시니어 10년 동안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한 시니어 누가 과연 진정한 10년 차 시니어인가? 같은 시스템을 계속 발전시키지 않고, 운영 업무만 계속 반복한다면 그 기간을 경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참 이직 후 쏟아지는 업무에 시달리던 때 한 줄기 빛과 같은 책을 찾았다. 같은 시간을 들여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피크 퍼포먼스>였다.

 

 

목표가 없어도 애만 쓰면 무조건 배울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최상의 배움은 정말로 해야만 할 때 일어난다. 근력 운동을 할 때 마지막 한 회차를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몸이 제대로 성장하듯, 실패할 때까지 고군분투한 뒤에 도움을 받아야만 두뇌도 제대로 성장한다. 오히려 성과만 놓고 보면 초보자와 베테랑을 구분 짓기가 거의 불가능할 때도 있었다. 어떤 각도로 보더라도 경험과 전문성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 피크 퍼포먼스, 브래드 스털버그 & 스티브 매그니스

 

 

그냥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이 말은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가슴 서늘한 채찍인 동시에 연차와 자격증, 학위가 없어도 내가 하는 일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는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위안이 되어주었다.

무조건 시간을 쌓고 새로운 경험을 한다고 해서 실력이 쌓이는 게 아니다. 실력이 쌓일 만한 경험을 하고 그것에서 나만의 영감과 통찰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 이 과정을 다시 만들고 반복해서 나만의 구조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경험을 통한 학습>과 <학습을 통한 경험>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얼마 전 공부 모임에서 공부 메이트가 이 일을 하는 사람을 learning experience designer라고 알려주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린 기분이었다.

좋은 경험이 탁월한 생각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탁월한 생각 구조를 만들 수 있어야 좋은 경험이다. 경험이 실력이 되려면 이 구조를 반복 학습해야 한다.

 

 

 

 

1. 경험을 충분히 한다
2. 경험에서 통찰과 영감을 추출한다.
3. 통찰과 영감을 나만의 것으로 정리한다.
4. 새로운 경험에 통찰과 영감을 적용한다.
5. 경험을 충분히 한다.
6. 한 단계 나아간 통찰과 영감을 추출한다.
7. 이 과정을 반복해야 실력이 된다.

 

 

공부 모임에서 얻은 것

 

매일 30분씩 공부하는 모임을 3월부터 이끌고 있다. 6개월 간 공부 모임에서 얻은 영감과 통찰은 10년간 매일 8시간씩 일하는 회사에서 얻은 것 못지않았다. 매일 누군가의 공부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이랄까.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경험을 다르게 이해하는 관점을 배운다.

공부 모임에서 배운 통찰의 일부를 소개한다.

 

 

 

 

 

 

균형 잡기의 기술

 

실력은 경험만으로도, 통찰 만으로도 만들 수 없다. 경험과 통찰의 시소 타기와도 같은 균형이 필요하다. 균형은 ‘마음’에서 온다.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활짝 열어젖힐 때 비로소 넘어질 듯 쏠릴 듯 흔들리는 균형의 무게 추가 중심을 잡는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것은 영감을 일으키는 원인이자 영감이 낳은 결과일 수 있다. 배움과 성장에 의미를 부여하는 삶에서는 영감을 얻을 가능성이 커지고, 거꾸로 영감은 전문성을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준다. 영감은 준비된 마음에 찾아오는 법이다.   어떤 대상을 영감의 원천으로 만드는 것은 그 대상의 객관적 가치라든가 달성 가능성이 아니라 한 개인이 인식한 그것의 주관적인 가치이다. –  <창의성을 타고나다>, 스콧 배리 카우프만 & 캐롤린 그레고어

 

노력만을 중요한 요소로 꼽고 영감은 중요치 않게 여기는 것은 불합리하다. 노력과 영감은 똑같이 중요하다! 근면한 노력을 영감과 대립시키는 대신, 그 둘 사이의 역동적 군무가 창의성을 이끌어 내는 힘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  <창의성을 타고나다>, 스콧 배리 카우프만 & 캐롤린 그레고어

 

 

 

단단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