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과 책임이 리스크 관리에 미치는 영향
‘이 일은 누가 해요?’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다 보면 담당자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지난 번에는 다른 팀이 했던, 그리고 이번에는 우리 팀에서 처리하는 담당자가 없는 일들이 이에 해당한다. 그와 반대로 우리 팀에서 하다가도 바쁘면 슬그머니 다른 팀으로 넘어가는 일들도 있다. 급하지는 않지만 하기는 해야 하는, 안 해도 딱히 누가 신경도 안 쓰는 이 일이 왜 하는 것인지도 모를 때는 더더욱 하기 싫어진다. 팀장님께 왜 하는 건지 물어보면 명확한 대답 없이 의사결정이 내려졌으니 하긴 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한다.
한편으로는 이 일을 할 때 어떤 책임이 따르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하긴 해야겠지만 중요도가 낮은 일이다 보니 내 일로도 취급을 안 하는 그런 일들 말이다. 이런 일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담당팀이 지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관심도 받지 못한다. 이런 일들은 방치되는 일이 다반사고 주먹구구식으로 처리되는 경우도 많다. 바쁜 것보다도 우리 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방치된다. 회사 내에는 의외로 이렇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일들이 꽤 있다. 이런 일들은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역할과 책임이란 무엇일까?
Role & Responsibility, 역할과 책임.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단어일 것이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이 단어는 회사 내에서 개인과 조직이 어떤 일을 수행하고 있는지 작성할 때 쓰는 용어이다. 혹은 지금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냐고 물을 때 이 표현을 쓰기도 한다. ‘너 회사에서 R&R이 어떻게 돼?’ 이 말을 누군가 듣는다면 그는 지금 하는 일(업무)에 대해서는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역할에 대한 책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정확히 말하기 어려울 텐데 그 이유는 회사마다 그리고 직급마다 책임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또 이런 책임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대부분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보니 ‘잘 지키고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근거 없는 신뢰로 믿고 넘어간다.
그러다 보면 이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A회사 마케팅팀 김대리는 콘텐츠 발행 담당자이다. 박팀장은 회사가 아직 작은 규모의 기업이고, 마케팅팀의 팀원이 한 명밖에 없기 때문에 그를 믿고 모든 콘텐츠 발행을 맡긴다. 서비스와 직결되는 콘텐츠가 아니기 때문에 소소한 이슈가 있어도 그러려니 한다. 그렇게 1년 동안 시간이 지나고 기업의 규모가 커져서 마케팅팀에 신입사원 이주임이 입사한다. 이주임은 회사에서 어떤 톤앤매너를 가진 콘텐츠를 발행해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전에 발행했던 콘텐츠를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란다. ‘맙소사. 아니 왜 이런 말을 쓰지?’ 평소 인터넷을 즐겨 하는 이주임은 김대리가 작성한 콘텐츠 내에 부적절한 표현이 들어갔음을 알고 박팀장에게 말한다. 박팀장은 검토해 보겠다고 했지만, 정작 그 표현이 의미하는 바를 모른다. 박팀장님이 명확한 이유를 모르는 상황이지만 팀원이 문제 제기를 했으니 티타임을 하며 경영진에게 보고한다. 경영진은 이유도 모른 채 콘텐츠를 교체하기는 힘들다는 입장을 내놓는다. 그렇게 수정 없이 게시물을 유지하기로 의사결정된 콘텐츠는 결국 방치되다가 고객에게 발견되어 공개적으로 풍파를 맞는다.
이 이야기를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작은 기업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문제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문제점은 박팀장이 김대리가 발행하는 콘텐츠에 부적절한 표현이나 언사가 들어갔는지 확인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두 번째 문제점은 신입사원인 이주임이 박팀장에게 보고했을 때 보고에 필요한 정보가 명확하게 전달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 번째 문제점은 박팀장이 뭐가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경영진에게 의사결정만 받으러 갔다는 점이다. 평면적인 이야기로 보자니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일상에서 있을 법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어떤 것이 필요할까?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정하자
각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직책의 역할과 책임을 구분하는 것이다. 회사 내에서 역할과 책임이란 각각의 직책에 맞게 역할이 부여되는 것을 의미한다. 팀장에겐 팀장의 일이 있고, 직원에게는 직원의 일이 있다. 직책은 사람의 계급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 직책이 맡는 일을 의미한다. 각 직책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과 책임을 구분해보자면 ‘보고에 대한 피드백‘의 역할과 ‘의사결정의 근거를 제공하는 역할‘이 있다.
위의 상황으로 돌아가서 회사에서 했어야 하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박팀장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면 그는 가장 먼저 김대리의 콘텐츠에 대한 문제가 없었는지 검토했어야 한다. 외부 채널에 배포되는 콘텐츠는 한 번 발행하면 수정이나 재배포가 어렵기 때문에 더욱 각별히 신경 써서 발행할 필요가 있다. 발행이 된 이상 문제가 있을 때 널리 퍼지는 것은 한 순간의 일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그는 이주임이 전달한 내용에 대해 정확히 어떤 점이 문제인지 정보를 요청하는 피드백이 있어야 한다. 신입 사원이 문제점을 발견해서 보고한 것은 좋다. 그러나 마음만 급하고 정보를 들고 오지 못했다면 이주임에게 어떤 단어가 문제이고 어떤 점에서 리스크가 발생할 요인이 있는지 참고할 수 있는 자료를 요청해야 한다. 특히 특정 단어가 문제가 된다면 그 단어가 사용되는 사례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는 사례 정보를 요청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경영진에게 보고하기 전 그는 ‘무엇’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되는지를 명확히 정해서 가야 한다. 스타트업에서는 의외로 가벼운 분위기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있다. 티타임을 가지면서 스몰톡을 이야기하듯 툭 던지는 이야기를 통해서는, 당연히 들고 온 이야기만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다. 또 가볍게 던진 말에 경영진은 당연히 별일 아닌가보다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어느 의사결정 직급이든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 같은 주제이더라도 제공되는 정보에 따라 의사결정의 결과가 달라진다. 특히 이미 결정이 난 사안이더라도, 상황이 변하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 기존의 의사결정을 뒤집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좋은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직급에 상관 없이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포함하여 보고할 필요가 있다.
R&R이 리스크 관리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
각자의 역할에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포함하여 보고하는 책임‘을 부여하면 근거를 갖추고 보고하는 좋은 문화가 자연스레 형성된다. 단순한 것 같지만 회사 내에서 잘 지켜지면 모든 의사결정이 근거에 입각하여 이루어지게 된다. 회사가 작을 수록 주관적인 기준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문화는 특히 더 중요하다. 기업 초기에 이런 문화가 형성이 되면 새로운 직원이 입사하더라도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 문화는 리스크 관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직원들은 항상 회사의 의사결정에 대한 의문이 있다. 그 의문은 좋은 방향일 수도 있고 나쁜 방향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원이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저 받아들인다. 그러나 근거 있는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조직은 why가 명확하기 때문에 의문이 적어진다. 또 의사결정에 이의가 있는 경우 기존 근거에 입각하여 반대 주장과 근거를 제기할 수도 있다. 이런 조직 문화는 기업이 성장할 때 다방면의 정보를 자연스럽게 취득할 수 있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많은 정보는 결국 리스크가 적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결국 좋은 의사결정은 근거가 있는 의사결정이다. 각자가 수행하는 일에 근거를 갖추며 일을 하는 문화를 갖춘다면 다른 기업이 갖지 못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또 why를 알고 일하는 직원들은 자연스레 리스크를 관리하게 된다. 이런 문화의 핵심은 why를 묻고 이의를 제기하는 직원들과 책임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회사의 태도이다. 회사가 적극적으로 그들의 입장을 반영하여 의사결정을 내린다면, 조직 내의 대부분이 의사결정을 이해하고 동의하게 되며 조직의 역량은 더욱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열심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