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하는 동료 모두가 나의 평가자
한국에서의 성과 평가는 보통 위에서 아래로 단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연 단위, 또는 반기 단위로 개인 목표를 세운 뒤 연말이 되면 직속 상사가 나의 목표 달성률을 평가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직접 상사나 다른 동료의 성과를 평가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성과급이 지급되고, 승진이 결정되며, 회사의 사정이 어려운 경우에는 성과가 안 좋은 직원이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만큼 상사의 평가가 중요했기에 상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반면에 영국에서의 성과 평가는 360도로 이루어진다. 직속 상사뿐 아니라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 모두가 평가자인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평가자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데, 자주 협업하는 동료들 위주로 피드백을 요청하면 된다. 다방면으로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서는 다양한 직무의 동료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좋다. 개발자의 경우 동료 개발자뿐 아니라 자주 협업하는 기획자, 디자이너, 테스터 등의 동료들에게 피드백을 받으면 협업 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상사 역시 나에게 성과 평가를 받는다. 리더로서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에 기반해 피드백을 받는데, 이는 그의 상관이 보게 되며 어느 정도 고과에 반영되기도 한다. 즉, 나와 상사가 같은 방식으로 성과 평가를 받는 것이다. 이처럼 성과 평가가 단방향이 아닌 양방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와 상사는 상하관계가 아닌 동등한 입장이 된다. 물론 여전히 상사의 평가는 중요하지만, 그만큼 상사에게도 나의 평가가 중요하다.
동료 평가 진행 방식
동료 평가는 보통 1년, 또는 6개월에 한 번 익명의 서베이를 통해 진행된다. 자세한 평가 방식은 회사마다 다른데, 내가 경험했던 동료 평가는 여러 항목 중 해당 동료의 강점과 개선점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여러 동료들의 피드백을 통합한 결과를 보면 대다수가 강점으로 꼽은 항목과 개선점으로 꼽은 항목이 한눈에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본인이 잘하고 있는 부분과 개선해야 할 부분을 판단하도록 돕는 것이 동료 평가의 주목적이다.
평가 항목 예시:
- 기술적 역량
- 문제 해결 능력
- 협업 능력
- 커뮤니케이션
- 전략 설계 능력
- 배움에 대한 열정
- 교육 및 인재 양성
- 리더십
동료의 강점과 개선점 항목을 선정할 때는 이를 선택한 이유를 함께 적어주는 것이 좋다. 이때 추상적인 이유를 대기보다는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훨씬 도움이 되고 납득하기도 쉽다. 예를 들어 정보 공유를 잘 안 하는 동료를 평가할 때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개선점으로 꼽는다면, “정보 공유가 부족하다”라고 적기보다는 어떤 경우에 그런 점이 부각되었는지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주는 게 좋다. 피드백을 받는 입장에서는 사소한 코멘트도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쉬운데, 피드백이 구체적일수록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수월해진다.
나의 첫 동료 평가
이런 평가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에게 첫 동료 평가는 무척이나 떨리는 일이었다. 동료들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했을지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결과를 보기가 두려웠다. 기술적으로 아직 많이 배우고 있는 단계라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지적받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결과를 펼쳐 보았다.
강점 “새로운 기술 스택을 배우고 있음에도 좋은 코드를 빠르게 작성한다.” “한 번 시작한 일은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해내며, 문제가 있을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소통한다.” |
결과는 예상외로 굉장히 긍정적이었다. 특히 내가 걱정했던 기술적인 부분은 오히려 아주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 강점 항목이 개선점에 비해 훨씬 많았는데, 이를 보며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부단히 노력했던 시간이 좋은 성과로 이어진 것 같아 보람찼다.
개선점 “좋은 아이디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회의에서 조용한 편인 것 같다. 회의에서 좀 더 의견을 냈으면 좋겠다.” “비현실적인 요구 사항이 있을 때 야근을 해서라도 다 해내는 경향이 있는데, 이럴 때는 어느 정도 쳐내는 게 낫다.” |
개선점에는 의외의 의견들이 있었는데, 그중에도 무리해서 일하지 말라는 코멘트가 인상 깊었다. 한국 회사였다면 오히려 칭찬 받았을 ‘예스맨’의 태도가 영국 회사에서는 개선할 점으로 꼽혔다. 내가 무리해서 일을 하면 번아웃이 올까 걱정하는 동료도 있었고, 같이 일하는 팀원들에게 부담이 된다고 얘기한 동료도 있었다. 비현실적인 요구 사항이 있을 때는 차라리 솔직하게 얘기해 납기 일정을 조정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이걸 보며 영국에서는 ‘예스맨’의 태도가 무조건 좋은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동료 평가 그 이후
동료 평가 이후에는 상사와 함께 평과 결과를 분석한다. 이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고 반영할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강점을 더 강화하는 것에 집중할 수도 있고, 개선점을 향상하는 것에 집중할 수도 있다. 물론 개선점이 반드시 반영해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라면 무시해서는 안되지만, 동료의 피드백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기 때문에 이를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다. 해당 피드백이 반영해야 하는 항목인지 아닌지는 상사의 조언을 참고해 스스로 판단하면 된다.
동료 평가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업무 성과와 동료들이 생각하는 나의 업무 성과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는데, 동료 평가 결과를 보면 나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칭찬을 받을 수도,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이때 비판하는 의견이 있더라도 이는 결국 본인의 발전을 위한 피드백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엄지현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