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법인을 지주회사로 만드는 절차인 플립(Flip)을 하기 위한 비용과 비용 대비 실효성을 비교하면서 고민을 하는 스타트업 대표분들이 굉장히 많고 관련하여 문의도 많이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여러 매체에서 “플립은 도박“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기사들이 쏟아지고 인터넷과 유튜브에서는 여러 전문가들이 각기 다른 주장을 하며 플립의 실익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따라서 플립을 고려하시는 많은 분들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리 아픈 고민을 하고 계실 것 같다.
최근에 유튜브를 통해 한 유명한 VC 분이 플립과 관련하여 설명을 해 주시면서, 떡 줄 놈은 꿈도 안 꾸는데 미리부터 김칫국을 마실 준비를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는 표현을 하신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위 말의 의미는 현재는 서비스 개발과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고 미국 시장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인 서비스나 제품을 개발하고 난 후에 플립을 준비해도 충분하며, 미리부터 플립을 하면 미국시장에서의 성공이 보장될 것 같은 장밋빛 환상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플립은 VC 투자자들에게 등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하는 타이밍에 가서 하는 것이 가장 좋으며, 그 때 부담해야 하는 세금은 어느 정도 서비스가 성공한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니 기분 좋게 맞아도 되지 않겠냐는 취지의 의견이었다.
필자 역시 충분히 공감이 되는 내용이나 그럼에도 몇 가지 추가적으로 고려하였으면 하는 사항이 있다.
1. 결국은 비용의 기대값 싸움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초반 2~3년을 넘기지 못하고 망하는 곳이 대부분이므로 미리부터 플립 비용을 부담하며 미국에 본사를 만들어 놓고 불필요한 운영비가 세어나가게 할 이유가 없으니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나서 플립을 진행해도 충분하다는 의견이 있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해당 스타트업이 성공할 가능성과 성공하고 나서 플립을 하였을 때 발생할 세금의 예상 금액을 곱해서 나온 금액의 기대값이 사업 초기에 플립을 진행할 때 발생할 플립 비용 대비 높다면, 사업 초반에 플립을 진행하는 것이 충분한 실익이 있다는 논리로 반박할 수 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스타트업 A의 서비스가 한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확률을 5% 정도로 가정해 보자. 서비스 런칭 뒤 약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스타트업 A는 많은 유저들을 끌어모으면서 매출도 많이 발생하기 시작하였고 여러 라운드의 투자를 받으면서 밸류에이션은 수백억 수준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미국시장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서비스라 생각하여 미국에 법인을 세우고 플립을 준비하기로 하였는데 창업자들의 주식 양도 차익이 대략 20억 정도로 계산되었다. 여기서 계산하기 쉽게 비상장 주식의 양도세율을 20%라고 가정할 때, 양도세는 대략 4억(20억 x 20%) 정도로 예상할 수 있겠다. 그러면 여기서 위 스타트업 A가 성공할 확률 5%를 다시 곱한다면 한국 시장에서 성공 후 플립 진행 시 발생이 예상되는 비용의 기대값은 2천만원(4억 x 5%) 정도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만약 스타트업 A가 성공하기 이전인 사업 극초반에 미국으로 플립을 진행한다고 하였을 때 발생되는 플립 비용의 총액이 2천만 원보다 훨씬 크다면, 미리부터 플립을 하는 것은 결코 합리적인 결정이 아닌 반면에 2천만 원보다 적다면 플립을 미리 진행하는 것이 나쁘지 않은 결정일 수 있다. 물론 초반에 발생할 플립 비용에서는 주식의 양도 차익 부분은 거의 0에 가까울 것으로 보이고, 비용의 대부분은 한국과 미국의 법무비용 및 CPA 비용, 법인 설립 이후에 미국법인을 운영하면서 매년 조금씩 발생되는 운영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하여 우리 회사의 성공 가능성이 몇 % 정도로 예상되는지, 물론 이 수치를 누가 확신을 가지고 예상할 수 있겠냐만은 정말 본인의 서비스와 제품에 자신이 있고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면 위 수치는 충분히 50% 이상으로도 계산할 수 있는 변수라고 생각한다. 또한 주식의 양도 차익도 플립을 어느 시점에서 하는지를 창업자들이 선택함으로써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보통 어느 정도 사업의 성공을 이룬 기업이라면, 상증세법 상의 주식가치 평가방식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지분의 대부분을 가진 창업자들의 주식 가치가 수십억 원대로 평가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위 성공 가능성 변수와 성공하였을 때의 양도세 변수가 높아진다면 그 기대값이라는 것이 수억 원 수준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고, 이런 경우에는 플립 비용과 비교하였을 때 전자가 훨씬 높을 수 있다.
2. 어느 단계를 지나면 플립은 비용을 떠나서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위에서 열심히 기대값을 계산하여 일단은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이 우선이고 나중에 플립을 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하더라도, 막상 성공을 거두고 플립을 하려고 했더니 끝내 주주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여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모태 펀드의 투자를 받은 기업들은 미국 법인으로 플립을 하기 전에 해당 투자자들을 정리할 수밖에 없는데 위 투자자들의 동의를 개별적으로 구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개인 엔젤 투자자들이 주주로 포함된 경우에도 간혹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데, 굳이 세금이나 제도에 대하여 잘 알지도 못하는 미국 법인의 주주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아 플립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한국 시장에서 더 큰 성장을 통해 조금 더 오래 주식을 보유할 경우에는 보다 많은 양도 차익이 기대되는데, 현 시점에서 회사가 플립을 하겠답시고 내 지분을 정리해주겠다는 것에 동의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왜 한 가정의 가장도, 딸린 식구들이 많아지면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쉽게 모험을 하지 못하듯이 기업도 마찬가지로 주주들이 많아지고 그 구성이 복잡해질 수록 그 주주들 및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기란 매우 어렵고 굳이 모험적인 플립에 대한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3. 모든 가능성을 두드리면서 안전하게 가기엔 현 스타트업 생태계는 너무 빨리 급변하고 예측성이 떨어진다.
한 VC 분이 말씀하신 문구 중에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내용 중 하나가 “아무리 구멍 난 보트여도 열라게(?) 노를 저으면 앞으로 갈 수 있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모든 가능성을 체크하고 안전하게 돌 다리를 두드려가면서 가기엔 옆의 경쟁자들이 너무 빠르게 노를 저어서 가고 있는 곳이 스타트업 생태계의 현주소이다. 따라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고 시장에 나갈 생각보다는 불완전성에서 오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물론 즉흥적으로 무모하게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라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그러나 그 아무리 잘난 사람도 모든 가능성을 예측할 수는 없고 매번 모든 비용을 계산하여 그 기대값이 가장 좋은 쪽으로 움직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개인적으로는 플립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몇 년 이상 고민만 하다 보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한다. 모든 스타트업들에게 플립을 적극 권장하는 입장은 전혀 아니지만, 플립을 해서 미국 시장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둘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는 기업들이 각종 기사나 인터넷 글에서 부정적으로 쓰인 플립 실패 사례만 곱씹으면서 마냥 결정을 미루는 것도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도대체 언제가 플립의 베스트 타이밍인가요?”라는 질문에 아무도 정답을 말해주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대표 본인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이 정답일 수 있고 어떤 방향으로든 결심이 섰다면 과감하게 추진해볼 것을 권한다.
성기원 변호사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