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받지 못하던 입장에서 선택해야 하는 입장으로
“면접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현 님이 저희 팀과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되어 최종 합격을 안내 드립니다.”
장장 세 달간의 백수 생활 끝에 첫 오퍼를 받은 지 이틀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다른 회사에서 두 번째 오퍼를 받게 된 것이다. 첫 합격의 기쁨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바로 다음 오퍼를 받게 되다니 이게 웬 겹경사인가. 지금껏 탈락 소식만 연달아 듣다가 이렇게 합격 소식을 연달아 들으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그렇게 48시간 안에 선택받지 못하던 입장에서 선택해야 하는 입장으로 180도 상황이 뒤집혔다.
영국 직장 선택 시 고려할 점
앞으로 다니게 될 직장을 선택하는 건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여러 옵션 중 한 회사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라면, 각 오퍼를 비교하는 테이블을 만들어 보는 방법을 추천한다.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여러 요소를 테이블 형태로 나열해 보면, 각 오퍼의 장단점이 한눈에 보여서 보다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때까지 여러 면접 단계에서 얻은 정보와 오퍼 레터(Offer Letter)에 나와 있는 연봉 및 복지 정보를 합치면 꽤 유용한 비교 테이블을 완성할 수 있다.
기본 정보
회사에 대한 기본 정보와 연봉 및 기타 복지 정보를 적어본다.
- 프로덕트: 각 회사에서 만드는 프로덕트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더불어 내가 생각할 때 이 프로덕트가 얼마나 전망 있어 보이는지 적어보자.
- 회사 규모 (직원수), 팀 구성: 회사 전체 직원수는 몇 명인지 찾아보고, 내가 일하게 될 팀에는 몇 명의 팀원이 있으며 어떤 직군들이 함께 협업하는지 확인해두자.
- 연봉, 보너스, 스톡 옵션: 연봉뿐 아니라 보너스와 스톡 옵션 같은 추가 보상도 꼼꼼히 확인하는 게 좋다.
- 사무실 위치: 사무실 위치는 시내와 가까운지, 집에서 출퇴근하기 좋은 위치인지 미리 알아보자.
- 휴가 개수: 회사마다 제공하는 연차 개수가 조금씩 다르며, 생일 휴가나 연말 휴가 등 추가 연차를 주기도 한다.
- 건강 보험 제공 범위: 대부분의 회사에서 건강 보험이 제공되는데, 보험으로 커버되는 범위는 다 제각각이므로 미리 확인해 두는 게 좋다.
- 교육 예산: 보통 팀 단위 또는 개인 단위로 교육 예산이 잡혀 있는데, 이 예산이 얼마인지에 따라 회사에서 교육을 얼마나 지원하는지 알 수 있다.
- 기타 복지: 이외에도 무료 점심 제공, 운동 비용 제공 등 크고 작은 복지가 있다.
기술 스택
각 회사에서 어떤 기술 스택을 사용하는지 적어보고, 내가 배우고 싶은 기술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파악해본다.
총평
위 정보를 모두 종합해 각 회사의 장점과 단점을 나열해본다. 어느 한쪽에 눈에 띄는 장점이 있는지, 내가 타협할 수 없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진 않은지 살펴보면 최종 판단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오퍼 비교 테이블에 담기지 않는 차이
둘 중 어느 회사에 갈까? 행복한 고민의 시간이었다. 그간 고생해서 얻어낸 소중한 기회인 만큼 신중하게 고민해서 잘 선택하고 싶었다. 그런데 꼼꼼히 오퍼 비교 테이블을 작성하고, 여러 정보를 총합해서 장단점을 나열했는데도 최종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두 회사 모두 비슷한 연봉과 복지를 제시했고, 업무는 각각 다른 이유로 양쪽 다 흥미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오퍼 비교 테이블을 이렇게 상세하게 적고 나서도 선택하기 어려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오퍼 비교 테이블에 적는 내용은 대체로 객관적인 정보다. 그러나 쉽게 숫자로 정의할 수 없는 주관적인 느낌이 있는데, 바로 사람에 대한 인상이다. 지원자는 서류 통과에서 최종 오퍼까지 여러 단계의 면접을 보면서 꽤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여기서 만나는 면접관은 이미 그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직원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앞으로 함께 일하게 될 잠재적 동료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들이 주는 인상은 지원자의 최종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때로는 이 주관적인 느낌이 어떠한 객관적인 정보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나 또한 면접 경험에 기반해 최종 결정을 내렸다. 오퍼 비교 테이블에 담긴 정보에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면접 경험 면에서는 두드러진 차이가 있었다. 면접에서 본 A사의 팀원들은 약간 어둡고 까다로워 보였던 반면, B사의 팀원들은 모두 친절하고 활력이 넘쳐 보였다. 내가 마지막에 B사에 더 끌렸던 이유는 이 인상 때문이었다. 고작 몇 시간밖에 안 되는 면접에서 겪은 느낌으로 뭘 얼마나 알 수 있겠냐마는, 그 몇 시간도 안 되는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받지 못한다면 온종일 함께 일할 때 즐거울 리 없다고 생각했다.
면접은 단방향이 아닌 양방향 평가 과정이다. 면접관만 일방적으로 지원자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지원자도 면접 경험에 기반해 회사를 평가한다. 아무리 회사의 조건이 좋다고 해도 면접관이 하나같이 무례하다면 누가 그 회사에서 일하고 싶겠는가? 면접관이 주는 인상은 회사 전체에 대한 인식을 좌우하기 때문에, 회사는 훌륭한 연봉과 복지뿐 아니라 좋은 면접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
긴 고민 끝에 결국 B사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채용 담당자의 메일 내용처럼 내가 정말 이 팀과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오퍼를 수락하는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냐는 채용 담당자의 질문에 바로 다음 주부터 일하겠다고 답했다. 지긋지긋한 백수 생활에서 벗어나 하루라도 일찍 출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몇 달 전만 해도 이렇게 회사에 가고 싶어질 줄은 몰랐는데, 그저 지겹기만 했던 출근이 이토록 기다려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런던에 온 지 세 달 만에 채용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드디어 나도 여기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들떠서 영국 기업 문화는 어떤 느낌일지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동료들끼리 격식 없이 친구처럼 지내는 자유로운 문화? 말단 직원도 편하게 의견을 낼 수 있는 수평적인 문화? 개인의 역량 개발을 존중해주는 발전적인 문화? 이 모든 게 그저 환상 속의 이야기인지 실제 영국 회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인지 직접 확인할 날이 머지않았다.
월요병 정도는 가볍게 날려 버릴 특급 설렘에 출근 전날은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잠 못 드는 밤 내 방 침대에 누워 다짐했다. 영국에서 일하는 것도 일상이 되면 언젠가는 익숙해지고 따분해지겠지만, 지금의 감격스러운 기분을, 그리고 이걸 얻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을 절대 잊지 않으리라고. 내 런던 생활의 새로운 챕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엄지현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