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아이덴티티 시각화의 중요성
프랑스 자연주의 브랜드로 어느새 우리에게 친숙한 브랜드가 된 록시땅.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들 역시 한국 시장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SNS가 활발하게 나아가던 시절, 공식 SNS 계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 갈피를 잡지 못한 것이다.
이에 록시땅은 당시 보타닉힐보(현 바이오힐보)와 유세린의 SNS 채널 설계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던 우리 회사에 마케팅 대행을 요청했고, 함께 록시땅 프로젝트를 만들어나갔다.
기대와 달리 비슷한 케이스라고 해서 무조건 잘되는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국내 브랜드와 달리 그들만의 철학이 확고했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록시땅의 화장품은 프로방스에서 자라나는 다양한 꽃과 허브를 이용해 만드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색감과 빛을 표현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여 우리는 방향을 틀어 ‘선물’로 키워드를 잡았다. ‘받는 사람’에 집중된 선물 시장에서 ‘주는 사람’으로 타깃을 바꿔 선물을 떠올리면 록시땅이 연상되도록 마케팅했다.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워낙 핸드크림으로 유명하다 보니 핸드크림 전용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소비자의 뇌리에 박힌 것이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전체매출의 70%를 차지할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물론 브랜드가 카테고리 킬러를 가진 것은 분명한 장점이지만, 너무 강한 이미지는 오히려 타 카테고리 확장과 시장확대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록시땅=핸드크림’의 상황을 타파하고, 보다 다양한 제품에 대한 만족 리뷰 보완이 시급했다. 메디힐이 마녀공장을 인수한 것도 마스크팩 전문 1등 회사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로 예상한다.
기존에 SNS와 바이럴 위주의 마케팅을 진행했던 내게는 이러한 고민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동안은 뷰티 업계가 입소문 즉 바이럴로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브랜드의 철학과 감동을 이미지로 표현하고 카테고리를 확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한창 이러한 고민을 거듭하며 록시땅 프로젝트를 이어가던 중 에르보리앙의 창업자인 카탈린 베레니 대표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 에르보리앙은 록시땅의 계열사인 글로벌 스킨케어 브랜드로, 그는 빠르게 발전하는 대한민국의 뷰티 인사이트가 듣고 싶다며 영어가 가능한 크리에이터를 찾고 있었다. 수준급의 영어 실력을 보유한 크리에이터를 찾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으나 결국은 뭉캉 MK Beauty 님 연결에 성공했고, 우리는 점심 식사 자리를 가졌다.
에르보리앙은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낮지만, 한국의 자연에서 찾은 허브 성분에 프랑스의 감각이 더해져 탄생했다. 전 세계 26개국의 세포라와 백화점 등에 입점했으며, 특히 대표 제품인 진셍 비비크림은 프랑스 세포라 TOP10 안에 들 정도로 유명하다고 한다.
사실 생소했다. 진셍? 진셍은 인삼의 중국 발음을 영어식으로 표기한 것인데, 인삼을 얼굴에 바른다고? 당시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의 특산물인 인삼을 바르는 게 K뷰티의 일부분이라고 인식한 듯하다. K뷰티를 바라보는 인식이 이렇게 다르다니, 그 괴리감은 내 예상보다 훨씬 컸다. 누가 그 괴리감을 줄여주냐의 문제였다.
얼마 후 본인의 출신을 소개할 때 쓰는 어문을 브랜드명으로 활용한 아임프롬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아임프롬은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정개마을의 무화과 라인, 경상남도 지리산 함양 월평마을의 허니라인 등 대자연을 주제로 작물 재배에서부터 제품을 만들어 출고하기까지의 스토리라인을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원물마케팅이 유행하던 2018년, 소비자와 ‘천연 원물’로 소통해 마켓 포지셔닝에 성공한 것이다. 이 얼마나 직관적인가! 화장품의 본질과 이미지를 제대로 활용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아누아도 좋은 사례다. 그동안 어성초라는 원물 자체로 포지셔닝한 브랜드가 없었는데, 약모밀(어성초) 추출물 77% 함유라는 직관적인 키워드로 그 틈을 잘 파고 들었다. 대표 제품인 어성초 77토너는 올리브영 입점 한 달 만에 판매 베스트 부문 1위를 차지하며 네 번의 완판을 일으켰을 정도.
결국은 자극적이고 폭발적인 SNS 마케팅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브랜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록시땅만 봐도 프랑스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유산의 일부분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국내 뷰티 브랜드들은 그러지 못한 게 현실이다. 브랜드에 스토리가 필요한 이유다. 아이덴티티를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와 마케팅전략을 같이 가져가야 지속가능한 브랜드에 한걸음 가까워질 수 있다.
박진호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