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많이 없어졌지만, 과거 ‘브랜드 매니저(Brnad Manager)’라는 직함을 가진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하는 일은 마케터에 가깝다) 당시 각 회사들은 브랜드에 숭고한 의미를 부여했죠. 광고회사 입장으로 미팅을 가면 이런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게 우리 브랜드에 맞다고 생각하세요?
나중에 입수한 그 회사들의 ‘브랜드 플레이북’(혹시 우리 회사에도 이런 게 있나 살펴 보세요)을 보면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단어들이 많이 등장하죠. ‘premium, not luxury’ ‘feelgood’ ‘joyful’… 쉽게 말해 이런 브랜드는 지키는 브랜드입니다. 우리의 브랜드 정체성이 언제 어느 곳에서든 동질감 있게 전달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흔히 브랜딩을 한다고 하면, 우리 회사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표현될 수 있나.. 를 찾아내서 그걸 로고, 색상, 폰트, 명함, 굿즈, 광고 등에 일관되게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외부 에이전시에 ‘우리 브랜딩 좀 하고 싶다’ 라고 말해도 이런 단계를 거칠 거예요)
하지만 우린 흔히 ‘브랜딩’과 ‘브랜드 마케팅’을 혼동하게 됩니다. 비유를 하자면, 어떤 가수가 어느 정도 성공 후에(성공 못했어도 못할 건 없지만..) 이젠 내가 하고 싶은 나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건 ‘브랜딩’이고, 대중의 성향을 분석해서 내 스타일을 만들면 ‘브랜드 마케팅’인 거죠. 따라서 브랜딩과 마케팅은 다소 다른 문제가 되는데, 브랜딩을 하면 소비자들이 더 좋아하는 브랜드가 될 것으로 믿는 경우가 많아요. (더 싫어하게 될 수도 있고..)
구글의 경우를 보죠. 예전에 ‘구글 두들(Google Doodle)’을 처음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 제가 가지고 있던 경직된 ‘브랜딩’과는 너무나 다른 행보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로고나 심벌로 장난(?)을 치다니,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요?! (그런 구글의 현재 브랜드 가치는 세계 4위죠)
그렇다고 구글이 브랜드 자산을 관리하는 데에 소홀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래와 같이 Gmail이나, 크롬, 헤이 구글 등을 보면 우린 구글과 연계된 서비스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죠.
구글은 저런 로고의 색상과 폰트 등을 정립하는 데만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였습니다. 그럼에도 왜 스스로 그런 아이덴티티를 손상(?)시키는 마케팅을 하는 걸까요?
Social Consensus : SNS 상에서 공감되는 가치
잠깐 프로야구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최근 야구계에서 많이 나오는 얘기가 유튜버 등이 영상을 활용할 수 있게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SNS 상에 야구 리뷰 콘텐츠가 재생산되지 않으니 MZ 세대를 유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거죠. 현재는 네이버나 카카오 등 온라인 중계권을 구매한 사업자만이 영상을 활용할 수 있거든요..
영화 쪽은 상황이 좀 다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영화 리뷰 영상에 대해 관대한 편인데, 일본 같은 경우 저작권 이슈 때문에 크리에이터들이 리뷰 영상을 만들지 못하죠. 우리의 경우, 영화뿐 아니라 K-Pop이나 K-Drama도 저작권을 풀어 적극 확산시킨 경우였습니다. 싸이나, BTS, 킹덤이나 오징어 게임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생각해 보죠. 유튜버들의 적극적인 리액션 영상 없이 그럴 수 있었을까요?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오리지널의 가치, 즉 앞서 언급한 ‘지키는 브랜드’도 중요하지만, SNS 상에서 통할 수 있는 감성이 중요함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위의 구글 사례에 접목해보면, 프로야구는 오직 정제된 구글 로고만으로 승부했다면, 영화나 음악에선 다양한 구글 두들을 통해 확산된 셈이죠.
저는 이런 소셜 채널 내에 형성된 소비자 감성을 소셜 컨센서스(Social Consensus)라 부릅니다. 예전엔 레거시 미디어가 메인스트림이었다면, 이제 이 ‘소셜 컨센서스’가 그 역할을 대신하죠.
* 소셜 컨센서스 : 소셜 채널 내에서 유저들이 공감하고 확산시킬 수 있는 가치다. 때로 우리는 SNS에서 핫하기 때문에, 또는 SNS에 올리기 위해 무엇을 한다. 개인의 호불호와도 다르다.
시몬스의 예를 보죠. 시몬스의 광고엔 침대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체 뭘 광고하는 건가?).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에도 침대가 없죠. 심지어 부산에서 유행한다는 수제버거를 가져와 팔기도 합니다. 햄버거랑 침대랑 무슨 관계가 있죠? 왜 돈을 써서 이런 마케팅을 해야 하나요?
답은 쉽습니다. 침대 만으로는 소셜 컨센서스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침대를 광고하는 것보다, 소셜 컨센서스를 브랜드로 끌어 오는 것이 효율적이라 판단한 것이죠. (이에 대해서는 ‘시몬스’ 브랜드의 플랫폼화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조만간 따로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우리 브랜드의 ‘무엇’이 소셜 컨센서스와 부합할까?
곰표의 경우 ‘로고’와 ‘심벌’이 소셜 컨센서스와 궁합이 맞았죠. 곰표 밀가루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지구화학'(색연필 브랜드다)은 화장품 브랜드인 마몽드와 콜라보를 통해 컬러밤을 내놓은 적이 있는데요. 컬러밤을 구매한 분들 대부분이 학창 시절 이후 색연필을 본 적도, 살 일도 없었겠지만.. 마몽드 콜라보에서 활용할 가치로는 충분했습니다.
위의 경우들처럼, SNS 상에서 통하는 우리 브랜드의 무기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와는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브랜드와 구분할, 그 브랜드만의 명확한 차별성을 가진 요소라는 점에서 브랜드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그것이 핵심 강점과는 관계 없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는, 그리고 SNS 상에 소비하기 좋은 ‘브랜드 이미지‘가 오히려 먹힙니다.
*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브랜드 이미지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알리고 싶은 정체성이라면, 브랜드 이미지는 소비자가 브랜드에 갖고 있는 이미지를 말한다. 둘은 같을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를 수도 있다. |
우리 브랜드의 가치를 파악하는 노력은 하되, 소비자에게도 그 가치만을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소비자들이 갖고 있는 브랜드 이미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소셜 컨센서스와 결합하는 노력이 중요하죠. (전자를 무리하게 추진하면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 브랜드 하면 소비자가 떠올릴 대표적인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만약 그런 게 없다면 지금까지 브랜딩은 잘못된 겁니다. 아니, 적어도 Social friendly 하진 않은 거죠..
앞서 언급한 구글이나, 시몬스의 경우 이미 잘 구축된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이미지가 있기에 다양한 변형이나 콜라보를 통해 시너지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맞는 얘기죠.
그렇기에 우리 스스로가 우리 브랜드에 대한 명확한 이미지 수립이 중요합니다. 깊이 숨겨진 플레이북에서나 확인할 수 있는 (대행사조차 잘 모르는) 형이상학적인 이미지로는 곤란합니다.
Ryan Choi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