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코스-코스맥스-모다모다 성공사례
지난 달 4일, 서울시가 ‘글로벌 뷰티산업 허브, 서울’ 기본 계획을 마련하고 2026년까지 204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기존 패션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된 뷰티 산업을 적극 육성해 K뷰티의 선도 도시로 도약하겠다는 그림이다. 덕분에 업계에서도 뉴스에서도 K뷰티 얘기가 끊이질 않고 있다.
이쯤에서 얼마 전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좋은 기회로 겨우내 경기대학교 김기흥 명예교수님과 ‘K뷰티와 문화사업 활성화를 위한 융복합 오픈 메타버스 기획’에 참여하게 됐다. 충북지역을 활성화하고 그들이 가진 자원과 문화를 기반으로 K뷰티의 융복합시스템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정식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K뷰티가 무엇인가’에 관한 토론이 진행됐다. 하지만 아무도 K뷰티에 대해 정확히 정의하지 못했다. 정의는 커녕, 그 이미지조차 모호했다.
과거 K뷰티가 활성화되던 시절, 미국 세포라에서 한복을 입은 사람이 마스크팩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고 난 기가 막혔다. 이게 K뷰티일까? 여기서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K뷰티는 무엇이며, 어떤 메리트가 있는지 말이다.
정부가 K뷰티를 추진 과제로 삼고 매스컴에서 용어를 마구잡이로 사용하면서도 그 이미지조차 규정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나는 장래가 없다고 믿는다. 사드 배치 이전에 뷰티 시장이 활발했을 때는 K뷰티의 이미지가 한류와 문화 그리고 제품 콘텐츠까지 확장되는 개념이었지만, 한한령이 내려진 후 K뷰티라고 불렸던 그 키워드는 종말을 맞이한 것이다.
K뷰티의 대표주자로 꼽히던 아모레퍼시픽 등의 한국 화장품 기업이 최근 중국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도 중국 규제 강화와 국수주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실제로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은 “K뷰티의 급성장기가 지나고 정체기에 돌입했다”며 “그 어느 때보다 내적 역량 강화를 기반으로 외적 성장을 꾀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Made in Korea’면 K뷰티인가?
한국 연예인이 모델이면 K뷰티인가?
한복을 입고 홍보하면 K뷰티인가?
이젠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국경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나라의 지배와 통치력도 존재하지만, 지금은 플랫폼이 나라를 대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웹드라마 ‘오징어 게임’ 또한 예외는 아니다. KBS에서는 왜 우리 틀에 갇혀 이런 걸 못 만드느냐고 논리 없이 주장하는 뉴스를 보게 됐다. 전 세계 인구는 약 78억 명이고 넷플릭스의 시청자는 약 8억 명이다. 우리나라 5,000만 인구의 16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이미 짜인 판에서 좋은 콘텐츠가 나오면 당연히 퍼질 수밖에 없다. 국경의 지배력이 줄어든 것이다.
관점을 바꿔서 생각해보겠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말레이시아와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면 말레이시아 전자인가? 중국 전자인가?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삼성전자 제품에 대한 브랜드 벨류다. 그렇다면 왜 뷰티는 해당되지 않는 걸까? 난 머지않아 뷰티도 그렇게 될 거라 예상한다.
2019년 화장품 제조사 엔코스 홍성훈 대표님이 중국 상하이 공장을 설립해 학습차 방문한 적이 있다. 뷰티 대표 인플루언서 민가든과 셀러브리티 레깅스 요가복 브랜드로 유명한 카인다미 김도연 대표가 동행했다. 감사하게도 엔코스 대표님이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항공, 숙박, 식비를 전액 지원해주셨다.
당시 엔코스는 중국 유명 여배우 판빙빙이 론칭한 브랜드 판뷰티의 마스크팩을 론칭하며 엄청난 이슈를 끌고 있었다. 엔코스가 대한민국을 넘어 중국까지 공장을 확장한 이유 중 하나는 로컬라이제이션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회사가 중국 화장품 수출에 큰 기여를 한 데는 잘 이뤄진 현지화의 역할이 컸다.
이로써 엔코스는 국내에 국한되지 않고 중국에서도 한국 공장과 똑같이 높은 퀄리티의 제조가 가능해졌다. 국경 없는 제조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결국 그의 선견지명은 그대로 들어맞아 지속 성장을 이뤘고, 엔코스 상하이 공장은 지금도 안정적으로 운영 중에 있다.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지난해 클럽하우스에서 코스맥스 김이삭 팀장과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코스맥스가 가진 차별성은 전 세계 어디서나 같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설계돼있다는 것이다. 미국, 중국, 유럽 등 다양한 나라에서 같은 제품을 동일한 퀄리티로 제조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코스맥스는 다른 제조사와 달리 로컬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돼 이러한 결과가 가능했다.
그럼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까?
그렇다. K뷰티에서 K를 떼는 것이다.
이미 시도하고 있는 브랜드들도 있다. 일례로 일본 공장에서 제조해 ‘Made in Japan’이라고 적혀있는 제품이 있다. 하지만 그 제품은 우리나라 브랜드이고 제조만 일본에서 한 것이다.
과연 K뷰티가 한류에 편승해 성공을 거둘지 아니면 ‘K’라는 글자에 발목 잡혀 스스로 틀에 가두고 있는 게 아닌지 진심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뷰스컴퍼니의 성공 사례 중 하나인 브랜드 모다모다도 미국 킥스타터에서 론칭해 오히려 해외 성공사례를 가지고 국내에 기반을 만들어 탄탄하게 클 수 있었다.
재차 강조하지만, 브랜드 로얄티를 키워야 한다. 브랜드는 재구매가 일어나야 하며, 이를 위해 기존의 고객에 더 힘을 쏟는 파레토법칙을 명심해야 한다. 마케팅의 기본 원리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본질에 집중하라.
박진호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