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개발자는 어떻게 면접을 볼까
“저희 회사는 현재 00팀에 함께 할 개발자를 찾고 있습니다. 지현 님의 이력서를 보고 이 포지션에 잘 맞을 것 같아 연락드렸는데요, 전화를 통해 조금 더 자세한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이력서를 구직 플랫폼에 올린 다음 날, 하루에만 여섯 개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나와 면접을 진행하고 싶다는 채용 담당자의 연락이었다. 다음날은 몇 개 회사에서 추가로 메시지를 받았다. 그렇게 며칠간 계속 새로운 회사의 메시지가 쌓여 갔다. 불과 지난 주만 해도 혼자 막막해하며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던 내가 며칠 만에 여러 회사의 면접을 동시에 진행하는 입장이 되었다. 런던에 개발자 수요가 높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직 채용이 된 것도 아닌데 괜히 들떠서 ‘역시 런던에 온 건 탁월한 선택이었어’ 하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기쁜 마음을 잠시 가라앉히고 채용 담당자 한 명 한 명에게 답장을 했다. 1단계 면접은 채용 담당자와의 짧은 전화 미팅이다. 이 시간에 지원자는 본인의 경력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하고, 채용 담당자는 모집 중인 직무 및 회사를 소개한다. 이력서에 다 적지 못한 얘기에 대해 보다 자세한 설명을 요청하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이 단계를 통해 채용 담당자는 지원자가 회사에서 모집 중인 직무에 알맞은 사람인지 파악하고, 지원자는 이 회사와 직무가 본인이 원하는 방향과 잘 맞는지 판단한다.
1단계 면접은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기술을 사용했는지, 그리고 다음 회사에서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간단한 면접 질문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 무리 없이 대답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회사의 취업 비자 지원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있어서 향후 2년간은 별도의 비자 지원 없이 근무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채용 담당자가 이를 반기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 취업 비자를 지원할 때는 꽤 큰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데, 2년간 회사에서 검증된 직원이라면 보다 자신 있게 지원을 결정할 수 있을 테니까. 반면에 나는 워킹홀리데이가 끝나고 취업 비자를 지원받는 시나리오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경력을 쌓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당장 2년 동안 일할 회사를 찾으면 그만이었다.
나의 느낌대로 1단계 면접은 대부분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이때부터 기술 면접이 시작되는데, 2단계 면접은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1. 한 시간 내외의 실시간 코딩 면접
면접관과 영상 통화를 하며 실시간으로 면접관이 내는 문제를 코드로 구현하는 방식.
2. 시간제한이 있는 온라인 코딩 시험
면접관이 지켜보는 건 아니지만 시험 시작 버튼을 누르면 제한 시간 카운팅이 시작되어 그 시간 안에 문제를 푸는 방식(보통 1-2시간). 다 풀지 못하고 시간이 만료되면 그 상태로 시험이 제출된다.
3. 일주일 안에 제출해야 하는 코딩 과제
코드로 구현해야 하는 기능 목록이 과제로 제시되고, 일주일 정도의 제한 기간 안에 코드를 작성해서 보내면 면접관이 평가하는 방식. 앞의 두 방식에 비해 비교적으로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지지만, 그만큼 작성해야 할 코드도 많고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다.
이 세 가지 방식의 공통점은 시간 제한이 있다는 점이다. 실제 회사에서 업무를 할 때는 이렇게 한 시간 단위로 시간을 제한받고 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면접은 연차가 높은 개발자에게도 별도의 연습 없이는 쉽지 않은데, 하물며 이직 준비 한 번 안 해본 4년 차 개발자에게 이런 면접이 쉬울 리가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면접의 난이도도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평소 일할 때 쓰는 코드의 레벨이 간단한 산수 수준이라면, 면접 문제는 미적분 수준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미적분 수준의 문제를 풀려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자니 식은땀이 다 흘렀다. 면접 문제가 이렇게 어려운 줄 알았더라면 한국에서부터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을 텐데 그것도 모르고 지금껏 놀기만 한 지난 날들이 후회됐다.
“저희 회사 면접을 위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팀 내에서 진지하게 고려해본 결과, 아쉽게도 이번에는 다음 단계로 진행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첫 불합격 메일을 받았다. 준비가 미흡했던 나에게 당연한 결과였으나 마음 한편에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나에게는 아직 많은 면접이 남아 있었다. 여러 면접을 몰아서 진행하는 게 버거웠지만, 이 버거움 뒤에는 ‘이 중에 하나는 합격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었다. 그 작은 기대가 큰 위안이 됐다. 씁쓸한 마음을 애써 털어내고 다음 면접을 준비했다. 이후에 얼마나 더 많은 불합격 메일을 받게 될지 이때는 몰랐다.
엄지현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