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안 팔리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트렌드가 참 빠르다. 많은 리서치 회사가 자료를 취합하는 순간, 트렌드는 순식간에 변화하고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뷰티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올해의 뷰티 트렌드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개념이 있다면 바로 클린뷰티다. 세계적인 ESG 이슈와 관련해서라도 뷰티 업계가 그린 정책으로 가는 방향은 맞다.
하지만 단기간에 이루기는 쉽지 않다. 이유는 명확하다. 지표가 없다. 어느 한 브랜드가 탄소 배출 감소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우리가 알 수 있나? 없다. 객관화된 지표가 존재하지 않기에 증거가 불명확하고 소비자 또한 브랜드를 신뢰하기 어렵다.
과거에 화장품 리뷰 애플리케이션 ‘화해’가 등장한 상황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한때 뷰티 산업이 급성장하는 시기가 있었다. 수많은 브랜드가 등장했고,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이 브랜드가 ‘잘 했다’와 ‘못 했다’의 근거를 제시하는 기준이 없었다. 그야말로 ‘화장품 홍수’였다. 그때 나타난 게 화해다. 화해는 성분의 기준을 제시했고, 이를 만족해 높은 순위를 달성한 브랜드 제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냈다는 뜻이다. 하지만 클린뷰티는 아직 신뢰의 근거가 불명확하다.
근거를 찾기 위해서는 기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난 포브스의 모더레이터로 활동하며 다양한 업계정보를 습득하고 그걸 기록하며 인사이트를 맞춰나가고 있다.
여기서 깨달은 건 한 분야의 혁신은 다른 인더스트리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거다.
올해 포브스 1월호 인터뷰를 위해 그린랩스 신상훈 대표를 만났다. 그린랩스는 농가의 디지털전환을 견인하겠다는 목표로 설립된 애그테크 스타트업으로 소비자가 받는 순간까지 일어나는 모든 농수산물의 데이터를 기록한다. 이러한 데이터를 보유한 회사는 이곳이 유일하기에 정부와도 긴밀한 협의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예상할 수 있는 현상은 이렇게 기록한 데이터가 정형화되고 앞으로의 기준이 될 확률이 높다는 거다. 예를 들어 우리가 먹는 식품에 칼로리와 영양 성분이 필수적으로 적혀 있는 것처럼 탄소배출량 또한 기준표로 작성돼 명시될 확률이 높다. 그렇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화장품 하나가 출시되면 거기에 탄소배출량이 적혀 있을 것이고, 이 수치가 마케팅 포인트가 돼 각 브랜드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물론 향후 3~5년은 걸릴 얘기지만 말이다.
한마디로 클린뷰티는 선진 시장의 요구이자 미래의 방향성이지 현재로서는 마케팅 포인트라 말하기 어렵다.
클린뷰티를 마케팅 포인트로 써서 성공한 사례를 생각해보자. 많은 브랜드가 뛰어들었지만, 당장 생각나는 건 최초의 비건 색조 디어달리아, 최초의 비건 스킨케어 멜릭서, 최초의 비건 립스틱 아로마티카다. 이 또한 ‘가치 소비’로 소비자를 설득했다기보다는 마케팅 법칙 중 최초의 법칙을 잘 활용한 사례다.
각종 언론과 커뮤니티에서 ESG와 클린뷰티를 떠들어대고 심지어 뷰티 업계 신문에서도 2022년 떠오르는 핫 키워드로 꼽는데 왜 후발 주자들은 성공하지 못했을까? 답은 클린뷰티의 역사에 있다.
해외의 클린뷰티가 우리나라와 가장 다른 게 무엇인지 알고 있나? 바로 할리우드 스타가 선두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사회적 운동을 시작했고, 그 운동에 동참하는 팔로워 또한 많은 상태였다. 이러한 팔로워의 니즈를 반영해 화장품을 만든 것이 클린뷰티다. 즉, 애초에 형성된 팬덤이 구매까지 이어진다는 뜻이다.
현재 ESG는 글로벌 트렌드가 맞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카테고리별로 속도가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 위 이미지 속 데이터를 살펴보면 소비자가 클린뷰티 제품을 구매하는 이유는 ‘피부에 자극이 가지 않을 것 같아서’고, 그렇지 않은 이유는 ‘클린뷰티가 무엇인지 잘 몰라서’로 나타난다.
‘어차피 살 거 이왕이면 이걸로 산다’가 지금의 눈높이인 셈이다. 단적인 예로 생수 시장에서 무라벨 생수가 불티나게 팔리는 현상을 들 수 있다. 클린뷰티 시장이 주춤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화장품은 피부에 직접 닿는 제품이기에 ‘클린’의 기준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구매까지 이어지기 어렵다. 때문에 요즘은 화해의 기준을 내세우기보다 오히려 코슈메슈티컬 시장으로 흘러가고 있다. 올리브영 역시 2030을 잡기 위한 안티에이징과 메디컬에 집중하는 태세다.
클린뷰티가 틀리다는 게 아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2022년도의 방향은 ‘본질로 돌아가라’다. 이미 소비자들은 필요 이상의 많은 화장품에 지쳐 있다. 뷰티의 본질은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클린뷰티를 벗어나 또 다른 소구 포인트를 잡아야 할 필요성이 느껴진다.
박진호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