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경제 ‘메타노믹스’ 시대의 도래
최근 막을 내린 <CES 2022>의 주요 주제는 ‘모빌리티’, ‘IOT’, ‘실감기술(XR), ‘5G와 AI’로 요약할 수 있다. 전기차, 자율주행차는 진화를 거듭한 끝에 플랫폼으로 부상할 준비를 마쳤고, 가전 분야는 로봇과 OLED 디스플레이의 강세 속에 유례 없는 호황을 구가하며 사물인터넷 시대의 완성이 머지않았음을 보여주었다. 그런가 하면 AR과 VR을 비롯한 실감기술 디바이스는 비대면 시대를 맞아 ‘몰입’과 ‘실재감’을 선사할 필수 하드웨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여기에 기술적 완성도가 이미 높아진 5G와 AI는 ‘연결(Connectivity)’과 ‘데이터 자산’ 시대를 구현하는 필수 인프라로서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
CES 2022의 주제들은 ‘메타버스’로 귀결된다. 2021년, 우리는 연일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메타버스 기사와 자료들을 접했다. 광풍에 가까웠던 메타버스 열풍은 2022년에 더욱 심해질 것 같다. 굳이 CES의 내용을 복기하지 않아도, 체감상 느껴지는 메타버스에 대한 열기는 활화산의 용암처럼 뜨겁다 못해 폭발할 기세다.
많은 이들이 ‘메타버스’를 스마트폰을 대체할 차세대 플랫폼 또는 인터넷 생태계를 대체하는 차세대 혁신(innovation)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2016년 ‘알파고’와 ‘포켓몬고’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래 불과 5년 남짓 지났을 뿐인데, 현재 안면인식, VR, AR, 3D, AI, 블록체인, 가상 화폐 등의 기술 수준은 5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다. 메타버스를 제대로 구현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 거의 다 갖추어진 것이다.
메타버스는 ‘공간’과 ‘비즈니스’에 대한 기존 산업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혁신 동인답게 공간이 선사하는 ‘몰입감’을 통해 개인의 경험을 개선시킨다. “실체가 불분명하다“ 또는 “용어만 새롭게 붙인 마케팅의 승리일 뿐”, “인터넷(가상환경)과 다를 게 없다” 같은 회의적 시각들도 존재하지만, 분야를 불문하고 메타버스 환경에 뛰어드는 기업들의 러시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특히 빅테크 기업들의 참전은 의미심장하다. 대표적으로 2021년 10월 사명까지 바꾼 ‘메타(구 페이스북)’와, 메시(Mesh) 기반으로 홀로버스(Holoverse)를 구현하려는 ‘MS’는, 각각 B2C와 B2B 대상의 메타버스 생태계 구축에 모든 전력을 쏟아 붓는 형국이다. 이들의 움직임은 단순히 메타버스 기술의 발전을 넘어, 대규모 유저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 및 그에 따른 진정한 ‘메타버스 경제 생태계’를 조성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은다. 본격적인 ‘메타노믹스(Metanomics)’ 시대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메타버스 경제를 뜻하는 ‘메타노믹스’는 가상공간에서 NFT와 암호화폐를 통해 디지털 상품의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지면서 파생된 용어다. 비대면 생활의 장기화로 인해 현실 경제는 불황이 이어졌지만 가상 세계는 활발한 디지털 거래를 주도하는 다양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현실세계와 상관없이 자생적인 경제 체계가 나날이 증가하는 중이다. 이렇듯 대형 글로벌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메타버스 시장에 뛰어든 이상, 앞으로 메타노믹스는 현실세계까지 아우르는 표준 경제 체계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메타버스 생태계가 이제 막 성장하는 시점에서 메타노믹스 체제의 대중화를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들은 무엇일까? 세 가지 측면에서 메타노믹스 구현을 위한 기업들의 과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1. 5G-플랫폼–디바이스–서비스–콘텐츠로 이어지는 한 개방형 시스템의 확립
메타버스가 인류의 대중적인 미래형 활동 공간이 되기 위한 혁신 동력을 유지하려면 기반 기술부터 플랫폼, 하드웨어, 서비스, 콘텐츠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개방형 시스템’이 확립되어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기업들은 기반기술–플랫폼–하드웨어(디바이스)-서비스–콘텐츠의 가치 사슬 구조에 올라타면서 비즈니스를 수행한다. 이때 플랫폼은 디바이스/서비스/콘텐츠를 담아낼 수 있는 ‘대형 플랫폼’을 뜻하며, 디바이스, 서비스, 콘텐츠는 대형 플랫폼 위에 올라타는 ‘서브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맡는다.
구체적으로는 원천기술의 개발/발전이 전제되어야 하고, 그 위에서 온라인 기반의 플랫폼들이 등장하며 네트워크 효과가 생성된다. 동시에 하드웨어의 발전도 진행되는데, 이러한 하드웨어는 구글과 삼성처럼 디지털 플랫폼과 연동되거나, 또는 애플처럼 자체적인 생태계를 조성하며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를 형성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대개 플랫폼과 디바이스가 결합된 공간이 온/오프라인을 포함하는 확장 공간이었고, 이 공간 위에서 다양한 서비스 사업자들이 등장했으며, 이러한 서비스를 프로모션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콘텐츠가 등장하거나 또는 콘텐츠 자체가 독립적인 서비스로 작용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이 5가지 요인들은 제휴 및 협력 관계를 통해 영향을 서로 주고받으며 거대한 디지털 생태계를 구성해간다. 따라서 생태계 형성을 위해서는 ‘개방’과 ‘다양화’를 통한 시너지 창출이 필수다. 이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아래와 같다.
2010년대 전후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1세대 메타버스 플랫폼 ‘세컨드라이프’는 4D 기반의 가상 환경과 아바타 경제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니지만, 반짝 인기에 머물다 시들해졌다. 이는 당시 5G, AI 등 기반기술 수준도 초기 단계인데다, 플랫폼-디바이스-서비스로 연결되는 확장성을 구현하지 못한 채 콘텐츠 제공에만 집중했던 것도 원인으로 볼 수 있다. 플랫폼-디바이스-서비스의 구조는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그만큼 콘텐츠 개발에 비해 장기적이고 대규모의 투자가 필요하기에 제휴와 협력이 중요하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급부상한 ‘로블록스’와 ‘제페토’는 현재 세컨드 라이프의 전철을 밟느냐 또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성하는 혁신 플레이어로 살아남느냐의 기로에 있다. 지금까지 이들 플랫폼들이 주로 주력했던 것은 MZ세대를 겨냥한 ‘콘텐츠 개발 및 제휴’였고, 이는 갑작스러운 비대면 생활권에서 ‘소통’과 ‘연결’의 경험을 원했던 젊은 세대들의 폭발적 지지를 얻으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이들 기업은 2020년~21년에 걸쳐 각각 뉴욕 나스닥 상장과 2억 명의 유저 확보 등 대표적인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부상했지만, 이는 메타버스 초기 시장에 뛰어든 ‘퍼스트 무버(1st Mover)’라는 이점도 있었다.
수많은 대체 플랫폼과 콘텐츠 기업들이 대거 참전하기 시작한 이상, 이제 메타버스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는 콘텐츠 분야를 넘어 서비스와 하드웨어, 그리고 이들 사업자들이 올라탈 수 있는 통합 플랫폼(포털, 소셜, 커머스)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다행히 금융, 의료, 유통, 교육, 패션, 제조, 부동산, 여행 등 일반 산업군의 메타버스 비즈니스 추진 덕분에 ‘서비스 영역’이 확대되고 있고, AR과 VR의 ‘실감기술 디바이스’도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빠르게 대중화되고 있다.
또한 메타와 MS는 각각 B2C와 B2B 시장을 집중 공략하며 기술, 서비스, 하드웨어를 포괄하는 대형 메타버스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여기에 다양한 콘텐츠 플랫폼들의 등장과 ‘NFT’ 및 ‘암호화폐’ 거래 시스템도 단기간에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기술-플랫폼-하드웨어-서비스-콘텐츠 영역을 담당하는 기업들의 활발한 제휴와 협력을 기대해볼 만하다.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협력하는 개방형 전략은 메타노믹스 경제 체제의 구현을 앞당기는 중요 요인이 될 것이다.
2. 가상 상품(디지털 제품)의 활용성 확장 방안 모색
현재 메타노믹스 경제를 이끄는 집단은 크리에이터들이다.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는 이들의 다양한 디지털 창작품들이 NFT와 암호화폐로 거래되는 사례가 자주 나타난다. 현재 약 25억 명의 전 세계인들이 휴대폰과 콘솔, 노트북, 데스크톱, VR 헤드셋으로 가상환경에서 상호작용 하며 거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현실 세계의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엄청난 규모다.
충분한 거래량과 거래규모에도 불구하고 가상경제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미미한 원인은 가상제품의 활발한 거래량에 비해 ‘활용성’은 미흡하다는 점에 있다. 가상의 상품이 주로 특정 집단 내에서 자신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목적에서 거래되다보니, ‘과시용’ 외에는 특별한 용도가 없는 것이 한계로 작용하는 것이다. 가령 구찌나 샤넬 같은 명품 브랜드의 디지털 제품을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구매했지만, 그것이 아바타를 장식하는 것 이상으로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면 타깃의 확장성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메타노믹스 구현을 위해서는 가상 상품의 활용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별 메타버스 플랫폼은 자체적인 경제구조를 형성함과 동시에, 다른 메타버스 플랫폼 및 현실 경제와도 유기적인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2021년 중반 ‘제페토’에 입점한 CU와 이디야의 사례는 O2O 전략의 일환으로 메타버스 환경을 활용한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가상공간에서의 거래가 그 자체로 실재감과 몰입감을 제공하며 소비자 경험을 혁신시킴과 동시에, 현실 공간에서의 거래와 동일하게 취급된다는 점에서 보다 발전된 메타노믹스를 구현한다. 여기에 메타버스 플랫폼간의 제휴를 통한 데이터 연동이 가능해진다면, 제페토에서 구매한 제품이 로블록스에서도, 또는 현실에서도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활용될 수 있는 사례들이 늘어날 것이다.
3. 실감기술(XR) 및 비주얼 AI를 활용하여 고도화된 ‘개인화’ 구현
‘개인화’는 아날로그 시절부터 존재했던 개념이지만, 디지털 시대의 ‘개인화’는 유저의 행동 데이터 중심으로 진행되는 특징을 지닌다. 온라인 공간에 누적된 무수한 유저 데이터들은 기업이 보다 효율적인 ‘개인화’를 구현할 수 있게 하는 자산이 된다. 인공지능(AI)의 발전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다양한 ‘개인화’ 마케팅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현실과 가상이 융합되는 메타버스 공간에서는 개인화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차별화된 경험을 원하는 고객의 바람과 달리, 기업 입장에서는 온라인으로 브랜드에 접근하는 고객 수가 수천만 명에서 수십억 명에 달하기 때문에 1대 1 커뮤니케이션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AI와 빅데이터 기술의 발전 덕분에 기업들의 맞춤형 서비스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개인화는 ‘고객의 취향을 파악’, ‘고객의 니즈를 예측’, ‘수시로 변하는 고객 요구에 빠르게 대응’, ‘고객이 원하는 결과물을 추천’, ‘사용 편의성을 개선’하는 5가지 조건을 충족할 때 이루어진다.
이러한 ‘개인화’는 메타버스 시대를 맞아 더욱 고도화되는 중이다. 2년 넘게 이어지는 비대면 생활로 대중이 느끼는 고립감은 극도에 달한 상태에서, 실재감을 높이는 가상 및 증강현실은 그 자체로 고도화된 ‘개인화’를 위한 새로운 솔루션이 될 수 있다. 패션과 가구의 메타버스 시장에서는 증강현실을 활용한 맞춤형 쇼핑 서비스 제공이 한창이다. 가상 디자인, 가상 피팅, 가상 쇼룸, 가상 메이크업 시연 등을 통해 매장 방문 없이도 현실과 동일한, 그러면서도 편의성은 높아진 쇼핑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나이키는 AR을 활용하여 정확한 발 사이즈를 측정하고 이에 맞는 정확한 사이즈의 신발을 추천한다. 이케아와 아마존은 자사 제품을 가상으로 테스트 및 데코레이션 할 수 있는 실감 기술을 제공하여 고객의 구매 실패율을 확연히 낮췄다.
비주얼 인공지능(Visual AI) 기술은 그동안 검색 분야에서 활용됐다. 비쥬얼 AI 검색은 텍스트 검색에 비해 정교하고 높은 정확도를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제품별 상세 메타데이터를 자동으로 생성하고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미국 ASF의 분류처럼 메타버스 환경은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미러월드(Mirror World), 라이프로깅(Life-logging)의 4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이 중 주로 텍스트 데이터가 활용되는 라이프로깅을 제외한 3가지 유형은 ‘이미지’ 또는 ‘영상’ 기반의 데이터가 메인을 이룬다. 비주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보다 무거운 데이터들이 쌓이는 메타버스 환경에 적용되기에 적합하다.
MS의 홀로렌즈나 구글의 3차원 영상대화 ‘스타라인’은 상대방이 ‘실제 크기 그대로’, ‘만져질 듯 생생한 입체로’ 등장하는 초고도화된 메타버스 기술이다. 이는 고해상도와 디스플레이, 실시간 압축/전송 기술. ML, 공간형 오디오 등의 총체적 결과물로, 영상 기반이기 때문에 누적 및 실시간 데이터의 양과 무게가 높기 때문에 비주얼 AI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개인들은 메타버스 환경에서 현실과 동일한 실재감을 경험함과 동시에, 영상 또는 이미지 빅데이터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고도화된 개인화를 체험할 수 있다.
나가며
아직은 개념적 정립과 실체가 모호하지만, 메타버스는 인류의 미래 생활을 새롭게 정립시키는 혁신의 동력답게 시장 전망이 상당히 밝은 편이다. PwC는 2025년 글로벌 메타버스 시장 규모를 4,764억 달러(547조 3836억 원), 2030년에는 1조 7500억 달러(2천 1조원) 규모가 된다고 전망한 바 있다. 메타버스는 발전과정에서 때로는 독자적으로, 때로는 현실경제와 융합되는 등 산업, 기술, 제품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독특한 ‘메타노믹스’를 구축한다. 가상세계에서 획득한 거래 소득과 실물화폐와의 자유로운 환전 시스템이 수립되면 현실 경제와 가상 경제의 융합이 촉진될 수 있다.
따라서 플랫폼-서비스-디바이스-콘텐츠 사업자들의 유기적 연결을 통한 시너지 창출은 안정적 메타노믹스 구현을 위한 필수 과제가 된다. 또한 가상 상품의 가치가 현실에서도 반영될 수 있도록 가상 제품 활용의 확장성을 모색하는 것과, 이미지, 영상을 포함한 개인들의 수많은 행동데이터를 기반으로 보다 고도화된 개인화를 추진하여 개인들의 메타버스 경험을 혁신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메타버스로 ‘가상세계’라는 또 다른 경제활동 공간이 열린 만큼, 이제는 더욱 풍요롭고 다양한 경제 생태계로 확장/발전시키기 위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참고자료>
- 유진희(2021.10). <메타버스 시대, 실감기술을 활용한 패션산업 흐름과 전망>, 인사이트리포트 vol.3, 플래티어.
- 유진희(2021.6). <메타버스, 비즈니스 ‘확장’과 ‘혁신’을 여는 공간>, 문화관광 6월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유진희(피아비키)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