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제작이나 마케팅 계획 수립을 위해 광고주를 만나게 되면 보통 이런 질문을 한다. ‘이 제품의 USP가 뭔가요?‘ 하는 것이다. (USP : Unique Selling Proposition 또는 Unique Selling Point) 그럼 광고주는 또 자랑스럽게 광고에 꼭~ 들어갔으면 하는 포인트들을 열거한다.
사실 난 이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답도 맘에 안 들긴 마찬가지, 당최 저게 왜 강점인지를..) 그냥 기분 탓일수도 있지만, 마치 ‘마케팅 포인트는 광고주가 잡으시고, 작품은 우리가 알아서 만든다’는 장인 정신, 예술가적 자부심 같은 게 녹아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과거엔 그랬다. 제조사는 제품 잘 만들고, 광고 회사는 크리에이티브 잘 녹여내면 OK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은 전반적으로 평준화됐고, 우리가 강점이라고 믿는 것을 소비자 역시 그렇게 받아들일까?
결국 중요한 건 소비자다. 영화나 음악, 문학 같은 분야에선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에 고민이라는 얘기도 많이 들리지만, 마케팅엔 그런 거 없다. 오직 대중성이다..
우리에게 정작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왜 ‘샤워기 필터’를 사야 하지?
요즘엔 집집마다 샤워기에 필터가 다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엔 먹는 물도 아닌데 샤워기에 무슨 필터냐 싶었지만, 시장은 바뀐다. 그러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요즘은 현빈이 TV에 나와 필터 샤워기 광고를 하는데, 딱히 필터를 강조하지 않는다. 마치 원래부터 샤워기엔 정수 기능이 있었던 것만 같다.
바로 그 브랜드, 바디럽 퓨어썸은 초창기에 한강물을 바로 정제해서 샤워하는 실험 영상으로 엄청난 히트를 쳤다. (영상 링크) 그간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수돗물은 한강에서 오는 거였어!)을 상기시키고, 한강은 맑고 깨끗한 아리수(!)가 아니란 걸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그 뒤 수돗물과 관련한 여러 사건 사고가 도움이 되었고..
‘칫솔’을 고르는 기준은 뭘까?
보통 칫솔을 살 때 소비자는 뭘 보게 될까? 브랜드? 부드러운 모? 듀얼 액션으로 입안 구석구석 닦이는? 1+1? 하지만 전혀 다른 접근을 한 회사도 있다. 우리는 흔히 기능이나 가격으로 승부하거나, 소비자가 믿고 찾는 브랜드가 되어 습관적으로 구매하길 원한다.
월간칫솔은 ‘칫솔을 언제 바꿔야 하나?!’에 초점을 맞췄다. (제품 링크) 이 칫솔에는 1월, 2월 식으로 사용할 시기가 각인되어 있으며, 매달 새로운 칫솔을 쓸 수 있도록 1년 치를 배송한다. 사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제품을 빨리 바꿔주면 좋기 때문에 이런 시도는 그 전에도 있었다. 공기청정기의 필터 교체 알람이라든가, 면도기 날 부분의 색이 변한다든가 하는..
하지만 월간칫솔처럼 네이밍에서 디자인, 마케팅까지 이 아이디어에 집중한 사례는 없었다. 누구도 칫솔의 메인 USP가 언제 버려야 하는가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당연하지!)
USP에 집중하면,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제품의 속성 안에서 ‘어떻게 개선할까’라는 틀 안에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소비자의 심리 어디엔가 잠재되어 있는 또 다른 구매 동기를 공략하면 전혀 다른 차원에서 경쟁할 수 있다.
위 두 브랜드의 공통점은 위생, 건강이다. 이러한 카테고리에서는 ‘위협’ 요소가 먹힌다. 바디럽의 또 다른 히트 상품인 마약 베개는 베갯속 세균에 집중했다. 정수기 시장의 후발 주자인 쿠쿠에선 100도 끓는 물 정수기를 출시했고, LG 스탠바이 미는 이동식 TV다. 정수기가 필터를, TV가 화질을 강조하던 시대는 지났다.
누군가는 USP나 Motivation이나 뭐가 다르냐, 하겠지만.. USP는 파는 것이고, Motivation은 소비자가 사게끔 만들고, 또 공유하게 만들 코드다.
Ryan Choi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