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를 관통하는 콘텐츠 트렌드 활용법
한국인도 당황하는 속도
쿠팡 OTT 서비스 플랫폼 <쿠팡플레이>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사용자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시리즈가 있습니다. 100분에 가까운 축구 경기를 1분 남짓의 하이라이트로 짧게 편집한 영상인데, 한 번에 핵심을 파악할 수 있어서 높은 조회수를 자랑합니다. 무얼 해도 빠르게, 뭐든지 빨리 처리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제대로 공략했다는 반응이 다수입니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한국인의 정서로 해석할 만한 맥락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소셜 미디어 트렌드가 그것과 맞물렸다고 할 수 있겠네요. 주요 소셜 미디어로 꼽히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그리고 일찍이 대세에 합류한 틱톡까지. 지금의 소셜 미디어 트렌드는 짧고 강력한 ‘숏폼’(Short-form, 1분가량의 짧은 영상)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 중심에 선 MZ세대의 눈으로 2022년 트렌드를 짚고, 이를 사회·가치관·관계·콘텐츠·소비라는 5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분석해 보겠습니다.
1. 사회
숏로그(Short-log)
‘숏폼’과 ‘블로그’의 합성어로, 자신의 일상과 인생을 압축된 분량에 담아내는 콘텐츠 트렌드를 가리킨다. 미디어 발전과 활용 방식의 다양화로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영상을 제작하게 되면서 생겨난 현상을 뜻한다.
일상을 기록하는 ‘OO 다이어리’
요즘 Z세대와 알파세대는 영상으로 일상을 기록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 촬영 버튼을 누르고 보는 이들의 콘텐츠에는 개인의 특수성보단 사회 집단의 문화가 고스란히 투영됩니다. 10대를 가장 쉽고 빠르게 파악하고 싶다면?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브이로그’ 해시태그를 검색해 보면 됩니다. 유튜브 속 20분 분량의 가로형 브이로그와 달리 15초부터 3분으로 짧은 호흡의 세로형 브이로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숏로그에는 아주 재미있는 규칙이 몇 가지 있는데요. 바로 학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일상을 다룬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학교를 전제로 한 줄거리가 주를 이룹니다. 필기나 급식표가 주요 소품이자 컷으로 등장하고, 등교와 하교가 시작과 끝을 상징합니다.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 ‘백신후기’, ‘화이자후기’ 등 시의성 있는 소재가 매번 업데이트되고요. 문구 전문점인 아트박스나 생활용품점인 다이소를 방문하는 일도 극을 이끄는 서사가 됩니다. 아직 경제력이나 시간적인 자율성이 여유롭지 않으니 진입장벽이 낮은 곳을 촬영지로 헌팅한 셈이죠.
음원을 접목한 챌린지 형태의 장르도 있습니다. ‘#셀프케어브이로그’는 가수 미노이 음원 ‘Busy guy’에 맞춰 전개됩니다. ‘눈을 뜬담 기지개를 쭉 편담 화장실에 간담’이라는 가사를 따라 브이로그를 촬영하는 방식인데요. 일종의 POV(Point Of View, 카메라 시선에 맞춘 설정극)라는 점에서 여타 브이로그와는 차별점이 있죠. 어차피 찍는 브이로그라면 조금이라도 더 특색 있고 재미있게 만들겠다는 의도가 읽힙니다.
프로필이 필요 없는 ‘OO 설명서’
사용자에게는 단순히 취향이나 취미를 넘어 자신의 역사와 가치를 공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래서 숏로그는 일상을 기록하는 현상에서 일생을 담아 가는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과거를 회고하고, 미래를 설계해가는 것. 전자는 ‘#10초얼굴짤’ 또는 ‘#10초인생짤’이라 불리는 해시태그 챌린지가 대표적인데요. 살면서 가장 기억하고픈 5장의 사진을 묶어 완성한 10초 분량의 영상을 의미합니다. Z세대를 중심으로 틱톡에서 시작된 열풍은 웹툰 작가 기안84와 배우 성훈 등 유명인의 참여로 인스타그램 릴스로 퍼졌습니다. 특히 유년기, 성장기, 성인의 과정을 모두 거친 밀레니얼 후기에게 향수를 일으키고, 밀레니얼 전기의 경우 자식의 사진을 자신의 유년기 대신 배치하며 공감을 나눴죠.
후자의 경우는 조금 더 체계적입니다. MZ세대는 전문성도 짧은 호흡의 영상으로 기른다는 사실 아셨나요? 이들은 특정 정보를 얻기 위해 오프라인을 배회하는 대신 소셜 미디어 검색창을 켭니다. 기성세대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주택, 금융이라든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코딩, 일러스트 등의 기술도 영상 몇 편이면 금세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거죠. 접근성, 효율성, 활용성, 가성비를 모두 고려한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틱톡에는 ‘#틱톡교실’, ‘#180초틱톡쌤’ 등의 해시태그가 활성화됐으며, 조직적으로 교육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채널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틱톡이 미국에서 시범 운영한 ‘틱톡 레쥬메’(Tiktok Resume) 서비스는 그 연장선에 있는데요. 채용 창구로 숏폼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시도였습니다. 글로벌 레스토랑 체인 치폴레(Chipotle), 미국 유통 업체 타깃(Target), 미국 프로레슬링 단체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 등을 포함한 총 32개 브랜드가 참가했는데요. 이력서를 서류가 아닌 영상으로 제출하는 형태로, 구직자의 센스나 경력을 한 번에 어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죠. 기업 또한 지원자에게 빠르게 노출될 수 있음은 물론이고, 화제성과 대세감 형성이라는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고요. 해당 서비스는 시범 운행 후 종료되었지만, 숏폼 플랫폼이 사회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2. 가치관
나노액티언스(Nano Actiens)
공동체보다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나노사회. 이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됨에 따라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개인이 늘어났다. 특히 콘텐츠를 쉽게 제작하고 유통할 수 있는 숏폼 플랫폼에서 뚜렷한 현상. 이를 ‘행동하는 개인’을 뜻하는 나노 액티언스로 정의한다.
프로슈머(Prousumer)형 나노인플루언서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는 MZ세대를 찾을 수 있을까요? 모든 개인이 자신의 채널에서만큼은 영향력을 전파하는 인플루언서로 살고 있습니다. 인플루언서는 규모에 따라 메가, 매크로, 마이크로라는 단위로 나뉘는데, 팔로워가 수백 정도인 개인 사용자에게도 ‘나노 인플루언서’라는 명칭을 붙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소속사나 제작사 없이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프로슈머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할 수 있는 숏폼의 성장이 있기에 가능한 변화였습니다.
메가 인플루언서 <땡깡>은 숏폼에서 프로슈머의 길을 개척한 장본인입니다. 아이돌 댄스 커버가 주특기로 무대 의상 뺨치는 화려한 의상이나 음악방송을 방불케 하는 카메라워킹을 자랑하는데요. 실제로 한 방송에서 모든 제작 과정을 본인과 친동생이 소화한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습니다. 넘치는 끼와 타고난 센스로 수십만 명의 팔로워를 사로잡아, 현재는 아이돌 신곡 홍보의 관문으로 통하고 있고요. 땡깡과 같은 메가 인플루언서가 댄스커버 형태의 콘텐츠를 장르화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나노 인플루언서가 따라잡기엔 간극이 벌어져 버렸습니다.
틱톡의 경우 한주에 특정 콘텐츠가 한꺼번에 양산될 수 있도록 주간 챌린지를 운영하는데, 이때 이미 유명한 메가 인플루언서가 피드를 점령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콘텐츠를 신나게 만들어낼 동력이 사라진 나노 인플루언서는 노선을 틉니다. 경쟁자에겐 없는 아마추어 특유의 로우-퀄리티(Low-quality) 콘텐츠가 줄 수 있는 재미에 주목합니다. 평범함을 무기로 하고 엉성함을 에지(edge)로 가져가 소소한 공감대를 자극하는 거죠. 누가 봐도 실패에 가까운 전개를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은 ‘#망한사진전’(의도와 달리 엉성하게 찍힌 사진을 모아 10초가량의 영상으로 편집)과 같은 새로운 콘텐츠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라는 소재의 확장성
프로슈머는 ‘나’라는 소재를 매우 잘 활용합니다. 실물로 출연하지 않아도 아바타나 필터를 통해 다양하게 노출될 수 있거든요. 최근에는 SM엔터테인먼트 아이돌 에스파처럼 다른 세계관을 전제로 ‘아이'(ae) 버전의 자신을 둔 이들도 많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만든 미모티콘이나 네이버제트가 운영하는 플랫폼 제페토로 3D 아바타를 만들어 콘텐츠를 제작합니다. 기성세대 싸이월드 아바타와 달리 현실의 규격을 벗어나 성별, 신체 조건, 패션 등에서 변화를 시도합니다. ‘원하는 대로’가 주는 자유로움을 놀이로 즐길 줄 아는 세대니까요.
아바타가 가상의 세계관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라면, 존재하지는 않지만 상상할 수 있는 ‘역할 속 나’도 있습니다. 서울시 OO구 OO아파트에 사는 고등학생 대신 미국 하이틴 영화에 어울릴 법한 캐릭터에 자신을 대입하는 거죠. 이는 앞서 언급한 POV의 한 형태로, 비일상적이고 극적인 현실에 자신을 이입해서 연기하는 콘텐츠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해외 인플루언서 Alyssa Mckay의 영상 ‘the rich girl meets the new girl’은 동명의 음원을 배경으로 하는 1인극인데요. 여왕벌 놀이를 하는 부자 여학생이 전학생을 경계하는 내용을 유쾌하게 풀어냈습니다. 국내에서 ‘부자들만 다닐 수 있는 엘리트 학교에 전학생이 왔다’라는 시리즈로 확산, 다양한 2차 콘텐츠를 양산했습니다.
이런 형태의 POV는 ‘#연기‘, ‘#상황극‘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로맨스, 스릴러,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데요. 하나같이 비일상적이고 극적인 상황을 가정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구도 채우고, 현실에서 못 느꼈던 해방감과 카타르시스도 즐기는 거죠. 이 같은 몰입은 보는 사람까지 동참할 정도의 흡인력을 발휘, 활발한 인터랙션을 일으킵니다.
➡ 2022년 소셜 미디어 키워드 5 (관계·콘텐츠·소비)로 이어집니다
The SMC Group 공식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