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야 하는 역할과 기회의 만남을 기다리며
연말입니다.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죠. 한 해를 돌아보며 여러 생각을 하겠지만, 커리어에 대한 생각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올 한 해 어떤 성취와 성장을 했는지, 내년에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심난한 상황이 되기도 하죠.
며칠 전 팀 동료가 진지하게 제게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같이 일하기 부족한가요?”
글쎄요. 자신 없는 표정 속에는 일 년 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말할 거리가 부족해 보인 것도, 어느새 저만큼 나가고 있는 동료의 실력과 비교할 때 초라해 보이는 감정도 모두 녹아있었습니다. 이 질문의 대한 절반의 책임은 제게도 있었습니다. 정말 실력이 부족하다면 무엇이 부족한지 미리 알려주지 않았거나, 실력이 부족하지 않다면 그렇지 않다고 평소에 격려와 방향 제시가 부족했다는 증거니까요.
연봉 협상을 하며, 승진이 잘 되지 않는 것을 보며, 회사에서 책임이 주어지지 않는 것 등으로 보면서 보통 나는 부족한 사람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한동안 연봉이 정체되어 있을 때 산소가 부족한 고원 위에 혼자 남겨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것은 내가 부족해서라기 보다 일시적인 정보 비대칭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역할의 변화를 요구 받습니다
혼자 실무를 하다가 누군가를 리드하는 상황을 맞기도 합니다. 어떤 기능을 맡아서 하다가 전체를 보고 기획을 해야 하는 일을 맡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돈을 벌게 할 일을 기대하며 나를 바라봅니다. 그래서 기존에 하던 대로 새로운 역할의 이름을 하게 되면 일시적으로 부족한 동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다 알 수는 없으니까요. 이럴 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단지 새로운 역할에 자신을 던지면 됩니다. 기존 역할에 만족해서 새 역할을 맡게 되는 대부분의 경우에는 새 역할을 못한다고 해서 조직에서 할 일이 사라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기존에 잘하던 것을 다시 잘하게 하니까요. 중요한 것은 내가 새 역할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을 지나가는 것이죠.
속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성장이 그렇습니다. 누구는 시간이 지나면서 로그식 같은 성장 곡선을 그리기도 하지만 누구는 J-Curve를 그리기도 합니다. 처음이 더디지만 슬로스타터는 결국 어느 순간이 되면 다 이해해 버리고 말죠. 지금 열심히 하는데 더디어 보이는 거라면 나는 어쩌면 다음 계단 앞에 서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 대부분은 노력으로 재능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하는 일 대부분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수동적으로 성장을 그리는 게 아닌 초점을 갖고 능동적으로 학습을 하면서 나에 대한 제약을 스스로 걸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조직은 일하기 좋은 사람과는 거시적 전략 문제가 아니라면 어떤 식으로든 헤어지지 않습니다. 좋은 조직은 돌을 맞물려 쌓은 성처럼 서로가 일정 부분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한 명이 사라진다면 사람마다 그 존재감의 크기는 다르겠지만 일정 조각이 잠시 사라지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면 조직은 당신이 더 성장하길 기다릴 것입니다.
며칠 전 제게 그 질문을 했던 동료는 제 생각으로는 성장 속도에서 일시적인 정체를 겪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게 정말일지 드러나게 되겠죠. 그래서 지금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안 됩니다.
언젠가는 조금 쌓인 내 실력을 발휘할 일을 만날 것이고 그때 나도 몰랐던 실력은 모두가 알게 되는 포트폴리오로 남게 되겠죠. 저도 그 동료의 그 순간을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입니다.
PETER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