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인 그가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평소와 같이 스타트업 관련 기사들을 스크랩하며 정리하던 중이었어요. 유독 눈에 띄는 기사를 발견했는데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사 문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롤렉스 매장은 공기만 판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극심한 품귀 현상을 겪고 있는데 롤렉스를 수급하여 판매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게다가 일반인이 구매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고급시계를 소유하지 않고 순전히 투자 목적으로 공동 소유한다는 발상이 무척 신선했어요. 그래서 해당 바이럴의 원천지인 스타트업의 대표 이메일 주소로 미팅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냈죠.
하지만 3일이 지나도 회신이 없었어요.
‘회사를 찾아가야 하나?’
‘주차장에 잠복하고 있다가 습격 인터뷰를 해야 할까?’
그들을 테이블에 앉힐 수 있는 수천 가지의 경우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어요. 그런 저의 바람을 알았는지 그다음 날 토요일 저녁 대표님이 직접 회신을 주셨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최근 일이 너무 몰려서 회신이 늦었습니다. 사실 작가님이 이전에 쓰신 콘텐츠를 저와 저희 직원들 모두 흥미롭게 읽고 있어 이렇게 제안 주신 것에 너무 놀랐고 감사했어요. 기회가 된다면 저희 사업에 대해서도 한 번쯤 귀 기울여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프리랜서 작가로 전향한 지 1개월 만에 자기소개를 길게 하지 않아도 미팅에 응해주시는 분을 만나서 너무 감격스러웠어요. 그리고 그와의 미팅을 앞두고 그의 이력을 확인하는 데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어요. 사실 그는 스타트업 창업하기 전 언론사 기자와 남성 매거진 에디터로도 근무한 경력이 있었어요.
‘아.. 이거 괜히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거 아냐?’
많은 스타트업 대표님들을 만났지만 이번처럼 언론사 출신의 대표를 대상으로 취재하기는 처음이었어요.
‘그래도 평소 내 글을 재밌게 읽었다고 하니 주름살이 생길지언정 주름 한번 잡아보자.’
그와 미팅을 시작되면서 그러한 우려는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는 예정된 시간을 초과하면서까지 스타트업의 비전과 사업의 방향성에 대해서 자신의 신념과 견해를 피력하였어요. 미팅 내내 그간의 고민과 애환의 흔적이 그의 어투를 포함해 몸짓, 표정 등 비언어적인 요소에서 흥건하게 묻어났어요.
기자로서 사회로의 첫걸음을 떼다
캠퍼스에 온기 대신 열기가 가득했던 어느 여름날이었어요.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이곳저곳 원서를 넣으며 자신의 미래와 커리어의 항로를 기업의 인사담당자와 면접관에게 온전히 맡기고 모두 각자만의 기적을 기다리던 때였어요. 이러한 간절함이 가득한 캠퍼스 내 유독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듯한 예비 졸업생이 있었어요. 그의 앞에는 지원서와 자소서 대신 그날 발행된 조간신문들로 가득했어요.
평소 정치, 사회, 경제 및 사회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일찍이 저널리스트의 길을 가겠다고 결정한 덕분에 속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방향성에 대해서는 확고했어요. 그런 결의 때문이었는지 그는 계획한 대로 언론사에서 기자로 사회생활의 첫 발을 디딜 수 있었죠.
하지만 언론사 내 기자들에게 할당되는 각자의 전문 취재 분야가 그의 폭넓은 관심사를 수용하기엔 너무 제한적이었어요. 뿐만 아니라 당시만 해도 너무나 경직되어 있던 기자들만의 엄격한 문화는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에겐 극복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였어요.
결국 더 자유로운 곳에서 다양한 분야를 다뤄보고 싶다는 속내를 갖고 지내던 찰나, 정기적으로 참석하던 기자들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선배의 권유로 남성 매거진의 피처 에디터로 자리를 옮겼어요. 피처 에디터는 주로 사회적 이슈와 인물 인터뷰, 기획 기사, 칼럼 등을 다루는데 사실상 패션과 뷰티를 제외한 모든 분야를 다루되 ‘How’와 ‘Why’에 초점을 맞추죠.
그곳에서 매달 어김없이 다가오는 마감일을 앞두고 취재하고 원고를 쓰고 탈고를 하는 과정에서 밤을 새우는 게 일과가 되었지만 인쇄소에 방금 찍어낸 따끈따끈한 매거진을 볼 때면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를 안은 것 마냥 뿌듯하고 행복했어요. 그가 바로 후에 바이셀스탠다드를 설립한 신범준 대표였어요.
기자증을 버리고 국회로 가다
남성 매거진 에디터로서의 행복이 무르익어 갈 무렵, 밤을 새워 공들여 만든 기사들이 달이 바뀌면 바로 옛것이 되고 희미해져 가는 과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여전히 심적으로 힘들었죠.
당시는 지금처럼 온라인 매체들이 발달하고 수년 전 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혼신을 다해 기획하고 제작한 잡지 한 권이 그다음 달이면 어느새 광채가 사라지고, 특유의 뻣뻣함과 저항력을 잃어가며 휘발되는 과정이 반복될수록 신범준 대표 안에 허탈감은 커져갔어요. 그러던 중 자신의 잡지가 허름한 카페에서 나뒹구는 모습에 무심코 들어 페이지를 넘기는데 이전에 자신이 작성했던 기사가 그날따라 유독 처량하게 느껴졌어요.
그 기사는 당시의 정치현황에 대해 쓴 글이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죠.
‘좀 더 큰 틀에서 바라보자. 이제까지 외부의 시선으로 정치와 국회를 바라보았다면, 실제로 그 안에 들어가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경험하는 건 어떨까?’
‘우연은 항상 강력하다. 항상 낚시 바늘을 던져두라.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 물고기가 있을 것이다’라는 오비디우스의 말처럼 그 역시 우연히 집어 든 잡지 속 그가 발행한 옛 기사에서 자신의 미래를 비쳐주는 작은 파편을 보았어요. 그때 국회의원의 직무를 보좌하는 보좌관이라는 역할이 눈에 들어왔어요. 직위는 4급 상당 국회 공무원에 해당하지만 국정감사, 선거 등 국가적 이벤트가 열리는 시기가 되면 휴일근무와 야근은 기본이고 국회에서 숙식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여 이상적인 워라밸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정을 주저하지 않았어요.
당시 가장 주목받고 있던 국회의원 한 분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포부가 생겼어요.
그는 기자와 에디터로 일했던 경력을 살려 그분이 정치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될 화법에서부터 패션 스타일 등 더 나아가서는 지지자들이 인지하는 이미지와 기대에 부합하는 정무적인 방향까지 포함한 약 60 여 페이지의 소책자를 제작하여 제출하게 됩니다.
그만의 통찰과 진정성을 담은 소책자로 인해 그는 해외명문대 졸업생들과 현직 변호사를 포함한 쟁쟁한 지원자들을 제치고 국회의원의 보좌진으로 국회에 입성하게 돼요.
국회 노동자의 시선으로 본 여의도
당시 신범준 대표는 국회에서 입법계획이 수립되고 수십 번의 소회의와 심사를 거치고 최종적으로 본회의를 통과해 법으로 제정되고 공포되는 과정을 보며 국내 정세와 경제 흐름이 어떻게 맞물려 흘러가는지를 익히게 돼요.
동시에 여의도 생활의 명과 암도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죠. 누군가는 선망할 수도 있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정작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국회의원들의 모습들처럼요.
“의원님. 요즘 의원들은 너무 단명하는 것 같아요. 이전에 재선은 당연한 거고 다선의원도 충분히 가능했는데 이제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여의도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니 원.”
“그래, 이전에는 국회의장으로 거론되려면 최소 5~6선은 해야 됐는데 지금은 3~4선 의원도 하마평에 오를 정도더군.”
“다음 선거에서 재선 안되면 어떡하지? 그 생각하면 요즘 통 잠이 안 와.”
재선에 대한 불확실성과 임기 내에 처리하기 힘든 과제들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고민은 선거 시기가 다가올수록 더 깊어졌죠. 그렇게 여의도 정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즈음 반가운 지인의 연락을 받게 됩니다
“신 기자, 아니 이제 신범준 보좌관님이라고 해야겠구나. 이번에 청와대를 나가서 창업을 했는데 생각 있으면 같이 할래?”
목소리의 주인공은 언론사 기자를 거쳐 청와대에 몸 담았던 선배로 2013년 당시 위메프 전 상품기획 팀장, 네오위즈게임즈 전 대표와 함께 대중국 관련 스타트업 창업을 구상 중이었어요.
국회를 나와 다시 산업 전선으로
신범준 대표가 계획한 커리어 어젠다에는 사실 스타트업에서의 근무는 없었어요. 하지만 평소 신뢰하는 선배의 요청이고 대외 중국 수출이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했을 때 선배가 추진하는 사업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신범준 대표는 답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어요.
“선배님, 충분히 고민하였고 저도 합류하겠습니다.”
그가 합류한 스타트업은 당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중국 역(逆)직구 사이트로 언론의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뿐 아니라 투자유치 역시 순조로웠어요. 당시 유니콘이라는 개념조차 아직 설익은 시기였는데 당시 기업가치가 무려 3천억 원을 상회했어요.
유통 사이트의 성패는 초창기 시장 선점에 달려 있는 만큼 사이트 정식 개장과 동시에 대대적인 홍보 이벤트를 펼쳤는데 그중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는 중국 인기 여배우가 회사 로고가 박힌 인형을 들고 레드 카펫을 밟은 덕에 상당한 홍보 효과를 누렸어요. 그녀가 바로 탕웨이였어요.
당시 기업의 모토가 ‘우리의 성공은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성공’이었을 정도로 범국가적 경제부흥 혁신사례에 자주 언급되었어요. 해당 역(逆)직구쇼핑몰이 중국 소비자들에게 인기 쇼핑몰로 자리매김하면서 성장세를 몰아 100억 원의 매출을 1,000억 원 이상 키우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으로 사업을 넓혀나갈 계획을 세웠어요.
이처럼 우주의 모든 기운이 해당 기업의 성장을 돕는 듯 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했어요. 바로 대한민국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의 사드보복이었어요. 중국과의 모든 교역이 수도꼭지 잠기듯 전면 중단되면서 매출은 급감했죠. 버티려고 했으나 결국 80명에 육박했던 직원들 중 5명만 남기고 75명의 직원들에게 두 달치 급여와 함께 권고사직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어요.
신범준 대표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기업도 하루아침에 정책적인 이슈로 상황이 급변할 수 있고 또 단기간에 많은 직원들을 채용하는 것은 직원을 위해서도 회사를 위해서도 심사숙고해야 하는 사항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죠. 불과 2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기업의 흥망성쇠를 압축적으로 경험한 것이죠.
비록 재직하던 회사의 비상은 예상하지 못한 외부 요소로 인해 제동이 걸렸지만 그간 신범준 대표가 보여준 전략기획 능력과 대외커뮤니케이션 역량은 물론 ‘중국리포트’ 주간지를 110호까지 발행한 그의 꾸준함을 높게 산 역(逆)직구 플랫폼의 투자자는 그에게 제안을 합니다.
“신 실장님, 저희가 꼭 좀 모시고 싶은데 함께 해보시겠습니까?”
신범준 대표는 자신이 회사에 남더라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역할이 없고 자신의 급여로 인해 회사에 부담을 안겨줄 것 같아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신범준 대표가 합류한 기업은 당시 국내 최대 배우 전문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IR/PR총괄직을 맡게 되었죠. 이후 그는 기업의 대외적 성장에 집중하였고 그 결과 2018년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선 국내 1, 2위를 다투는 대형 엔터테인먼트사에 의해 인수되었어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름 의미 있던 큰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후 그는 차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어요. 대학교 졸업 이후 거의 쉬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그는 젊은 시절 일에 치여 미뤘던 유럽 여행을 다녀오는 등 느긋한 삶을 실행에 옮겼어요.
하지만 안정적이고 여유가 가득한 삶은 예상 외로 그와 잘 맞지 않았어요. 사람은 일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데, 그 역시 자신의 삶의 구심점이던 일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나름의 풍요가 채워지니 외려 상실감과 허탈함이 그를 힘들게 했어요.
그때 신범준 대표는 더 늦기 전에 본래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어요. 성격상 다시 일에 치이겠지만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기로 했어요.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취업이 아닌 ‘내사업’ 즉 창업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39살, 첫 창업에 도전하다
신범준 대표는 처음 도전하는 영역인 만큼 사업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을 받으며 진행하고 싶었어요. 결론적으로 예비창업패키지부터 초기창업패키지, 최근에 선정된 국내 최고 권위의 TIPS 프로그램까지 선정되며 사업에 대한 검증과 필요한 운영자금까지 확보하였어요.
법인 설립 초기에는 세무사였던 친구의 사무실 방 하나를 빌려서 안정적인 사업 운영에 필요한 특허와 상표권을 취득하며 함께 할 구성원을 꾸리기 위해 채용도 열심히 준비했어요. 그래서 하루는 면접을 위해 하루 일정을 전부 비우고 지원자 8명을 면접을 보기로 했죠. 새로운 직원을 맞이할 생각에 설렘을 안고 기다렸는데 그날 한 명도 면접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어요.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자 자신이 지원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자책 아닌 자책하기에 이르렀죠. 이후 입사하는 임직원들에 대한 고마움과 각별함을 가지게 되었어요. 첫 번째로 입사한 직원은 지금까지도 근무 중이고 현재는 12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어요.
방문 당시 사무실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의 표정이 화이트톤의 인테리어보다 더 밝았던 것은 신범준 대표가 임직원들을 살뜰히 챙긴 탓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봅니다.
조각투자 플랫폼 ‘피스’ 출시
사실 신범준 대표는 오랜 기간 콜렉터로 시계와 그림 등 다양한 자산에 꾸준한 투자를 해왔어요. 꼭 물리적인 투자 외에도 그가 쓰고 사용하는 제품이나 소비재가 있다면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정을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의자 중에서 가장 편안한 의자는 뭘까?’
‘스피커 중에서 가장 웅장한 음질을 전달하는 스피커는 뭘까?’
이와 같은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 탐험가처럼 그에게 가장 좋은 것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었지요. 그렇게 하나둘씩 수집한 물건들이 시간이 지나고 보면 상당한 차익이 발생한 것을 보며, 그는 생각하였어요.
‘이렇게 개인적으로 거래를 하면 수익이 100%가 넘게 나는데, 이런 상품들만 모아 놓는다면 그 어떤 투자상품보다 매력적인 금융상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자신이 즐기고 자신 있는 분야를 하는 것이 잘 모르는 사업을 전개하는 것보다 사업으로서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PIECE가 영위하고 있는 영역은 그가 가장 잘 알고 좋아하는 분야 중 하나였던 것이죠.
그래서 그는 시장의 잠재력과 수요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다른 투자 대비 비교적 안전하게 시드머니를 모을 수 있는 현물 조각투자 플랫폼 ‘PIECE’를 고안했어요.
첫 조각투자 대상으로 롤렉스를 선택하다
상품 선정은 전문가의 시장성·수익성 분석과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판매 가격 데이터, 온라인 커뮤니티 매매정보, 국내 딜러숍의 유통 규모, 해외 본사의 생산계획 등 미래가치에 영향을 주는 변수를 기반으로 향후 시세차익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품을 선별해 구성해요.
그중 롤렉스는 정밀성과 성능, 신뢰성을 보장하는 최상급 크로노미터 인증은 물론, 탁월함, 우아함 그리고 품격을 상징하기에 PIECE의 첫 번째 조각투자 상품으로 적격이었어요.
롤렉스는 2002년 한국 법인 ‘한국로렉스’를 설립하고 직접 판매하는데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2019년 매출액은 2,904억 원이었는데 2020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20% 줄어든 2,328억 원이었어요. 구매를 희망하는 소비자가 넘쳐나고 매장에는 재고가 없는데 매출이 줄어든 것이 의아했어요.
그 이유를 상품매입액에서 찾을 수 있었어요. 상품매입액은 2019년 2,304억 원 대비 25%가량 줄어든 1,711억 원이었어요. 늘어나는 수요 대비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니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품귀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했어요.
기술적으로 심미적으로 탁월한 시계를 생산하면서 무리하게 생산량을 늘리지 않는 고집스러운 그들의 경영 방식이 소비자로 하여금 더욱 롤렉스를 소유하고 싶게 만들었죠.
그렇게 PIECE의 첫 번째 조각투자 상품은 롤렉스를 대표하는 최신 모델과 스테디셀러 모델 11점을 ‘PIECE 집합 1호’로 구성하고 2021년 4월 첫 번째 포트폴리오를 공개하였어요. 개시를 앞두고 신범준 대표와 구성원들은 긴장되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보았죠.
“첫 결제 발생했어요!”
그리고 첫 결제 이후에도 결제는 계속 발생했어요.
“대표님, 이러다가 저희 오늘 완판 하는 거 아니죠?”
말이 씨가 된다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결제량은 속도가 붙었고 결국 시작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 목표 금액인 1억 1천8백만 원을 완판하였어요. 그 후 유명 포털에서 새롭고 혁신적인 투자유형으로 리셀테크를 꼽으며 언론들이 PIECE를 집중적으로 다루었어요.
고객들의 앵콜요청이 항의 수준으로 빗발치자 신범준 대표와 구성원들은 밤늦게까지 다음 조각투자모집에 매달린 끝에 다음 조각투자 포트폴리오를 공개하였어요. 이전 건의 호응이 이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바이셀스탠다드 구성원들은 모니터링을 시작하였어요. 그리고 개시한 지 1분 만에 완판이 되었어요.
첫 롤렉스 조각투자, 32% 수익실현을 달성하다
4월에 진행한 첫 조각투자 포트폴리오는 매각과 함께 투자자들에게는 32%라는 높은 수익률을 안겼어요. 은행 예금금리가 최저금리 시대를 맞아 1%를 조금 상회하는 수준인데 1천만 원을 은행에 예금하면 일 년 동안 실제로 가져갈 수 있는 이자수익은 10만 원을 겨우 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롤렉스 조각투자는 32%라는 경이로운 수익률을 1년도 아닌 6개월 만에 달성하며 연으로 따지면 60%가 넘는 수익을 실현하며 주위를 더 놀라게 하였죠.
PIECE는 초저금리 장기화로 목돈 마련이 어려운 2030 세대를 겨냥한 소액으로 누구나 투자를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소액투자 플랫폼으로 기획하였어요. 그런데 새로운 투자처에 늘 관심을 갖는 MZ세대는 물론, 안정적 수익을 기대하는 40~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고객들을 만족시켰다는 점이 조각투자 플랫폼 PIECE의 확장성에 대한 기대를 키웠어요.
바이셀스탠다드가 제시하는 미래
지금의 PIECE가 희소가치가 높은 명품으로 시작하였다면, 앞으로는 포트폴리오의 다변화와 함께 규모를 확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이와 함께 서비스의 안정화를 통해 고객들이 신뢰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목표로 하고 있죠.
그리고 코로나19 이후 디지털화 및 규제 완화로 금융과 비금융간 경계가 흐릿해지는 ‘빅 블러’가 심화되면서 단순히 공동 구매하는 서비스에서 그치지 않고 조각투자 상품이 어엿한 제도권의 금융상품으로 편입될 수 있도록 전문인력들을 대기 영입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전에 근무했던 스타트업이 그렇게 잘 되고 있을 때 국가 간의 정책 이슈로 인해 한순간에 회사 상황이 악화되었던 적이 있어서, 서비스만큼이나 정부 정책과 규제 관련 부분도 미리미리 꼼꼼하게 챙기는 것 같았어요.
바이셀스탠다드가 지금처럼 새로운 변화와 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책임 있게 행동함으로써 건전한 방식으로 성장을 관리할 수 있다면, 그들은 앞으로 다가올 수십 년을 위한 원동력을 확보하게 될 거예요.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스타트업의 혁신적인 솔루션과 사회적 신뢰를 갖고 시도한 적 없는 새로운 기술을 장려하는 사회가 뒷받침되어야 하죠.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겠지만 실현된다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스타트업이 소유와 투자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해당 콘텐츠는 Jimmy Cho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