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취향은 곧 직원 취향?
주말에 회사의 행사가 잡히면 투덜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종류도 다양합니다. 등산, 하프 마라톤, 자전거 라이딩, 자원봉사 등등. 행사를 1년에 한두 번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달에 한 번, 매주 하는 회사도 더러 있습니다. 공통점은 사장의 취미나 기호를 직원들과 함께하길 원하는 거죠. 회사는 절대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직원들 자율에 맡긴다고 합니다. 인사에 불이익을 주는 일도 없다면서요.
직원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압박으로 작용합니다. 회사 전체가 참석하는데 자신만 어찌 독야청청 홀로 빠질 수 있겠습니까? 규모가 작은 회사는 기업문화랄 것이 딱히 없습니다. 거창한 철학이나 이념을 앞세우고 사업을 시작하는 사장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장의 성격이나 가치관, 주관, 기호 등이 회사의 문화로 곧장 반영되기 마련입니다. 사장이 곧 기업문화가 되는 것이지요. 사장의 잘못된 생각과 가치관이 반영되면 이상한 기업 문화가 형성될 수도 있습니다.
사장의 취미나 기호를 직원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전형적인 특권 의식입니다. 직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참석하는 행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워라밸이 강조되는 시대에 굳이 주말 행사를 진행하는 것도 이해를 못합니다. 사장과 취미가 같지 않은 직원들이라면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강요가 심해지면 예전 엽기적인 갑질 행각으로 뉴스에 나왔던 어떤 웹하드 회사처럼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직원 경조사는 모두가 필수적으로 참석해야만 하는 회사도 있다고 합니다. 사장이 참석한다는데 안 가기도 눈치 보입니다. 결혼식의 경우 직원을 축하해 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사장에게 눈도장 찍으러 가는 것이죠. 게다가 결혼식은 대개 휴일에 잡히기 마련이죠.
직원의 수가 많다면 경조사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사장이야 회사 경조사 규정에 정해진 금액이 있으니 회사 돈으로 경조사비 내면 됩니다. 약간의 시간만 내면 되고 ‘직원 배려’라는 생색도 낼 수 있습니다. 반면 직원들의 경우는 휴일도 반납해야 하고 자신의 월급에서 돈이 나갑니다. 필자도 예전 관리 팀에 있었기 때문에 엄청 부담이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200명에 달하는 직원 경조사를 매번 참석하기도 어렵거니와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한술 더 떠 직원들이 기겁하는 행사를 벌이는 회사도 있습니다. 워크숍이랍시고 30km 행군을 하거나 해병대 캠프 극기훈련을 하는 회사 말입니다. 과거 고도성장의 시대에 일부 기업 등이 이런 행사를 통해 오늘 대기업으로 일어섰다는 신화가 있긴 합니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지요. 행사 자체가 거의 주말을 끼고 하는 데다 가끔 사고로 이어져 사회의 지탄을 받기도 합니다.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의 일입니다. 회사 매출이 떨어지자 어느 날 사장이 불러서 말하더군요. “해병대 극기 훈련을 한 번 해보는 게 어떨까? 요즘 직원들 정신 상태가 너무 해이해진 거 같아.” 그때 저는 대답했습니다. “임원들이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한다고 약속해 주시면 행사를 기획해 보겠습니다. 사장님을 포함한 임원들이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을 테니까요.” 참고로 그 회사는 업무 특성상 임원이 전 직원의 40% 이상이었습니다. 연세가 60세가 넘는 분들도 많이 계셨죠. 결국 사장이 포기하더군요.
사장의 특권 의식과 잘못된 경영 철학
이와 같은 발상은 사장의 특권 의식과 직원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설정하지 못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잘못된 사고방식이나 구시대적인 경영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죠. 사장들이 이런 발상을 하게 되는 나름의 목적과 이유는 있습니다. ‘행사도 업무의 연장이고 이를 통해 직원들의 단합을 도모하기 위해서’, ‘정신력 향상과 도전 의식, 헝그리 정신을 키우기 위해서’, ‘협동심과 팀워크 향상을 위해서’, ‘애사심을 키우기 위해서’, 신입직원 연수의 경우라면 ‘요즘 젊은 세대가 개인주의이고 나약해서’ 등입니다.
취지는 훌륭한지 모르겠으나 요즘 세대들의 가치관과 생각을 감안하지 않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게다가 반강제적이기까지 하죠. 겉으로는 부인하나 참여하지 않는 직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을 줍니다. 작은 회사일 경우 사장의 눈 밖에 바로 나는 거죠. 이 결과로 형성된 기업문화(?)는 사장의 의도와는 다르게 직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부정적입니다.
첫째, 강압적 문화를 좋아하는 직원들은 없습니다. 그들은 당장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회사의 방침에 따르는 것뿐입니다. 회식을 하면 무조건 직원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장의 착각입니다. 요즘은 강요하는 분위기가 싫어 회식도 참여하지 않으려는 직원들이 많습니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요즘 세대는 워라밸을 추구합니다. 강압적이고 무조건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회사라면 언제라도 이직이나 퇴사를 고려하게 됩니다.
둘째, 사장을 직원들이 믿고 따르지 않습니다. 직원들이 회사의 문화를 상명하복의 군대처럼 여긴다면 사장은 직원들의 신뢰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자신들을 완전히 ‘을’ 또는 ‘하인’이라 대한다고 느끼는 분위기에서 사장을 무서워할 수는 있어도 진정한 신뢰는 결코 주지 않습니다.
셋째, 직원들의 자율성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회사의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로 직원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강조되는 시대입니다. 그런 마당에 ‘해병대 극기훈련’, ‘정신상태 해이’ 같은 말을 운운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케케묵은 행태입니다. 이러한 사장의 생각과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직원들이 자율성을 발휘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직원들은 시키는 일만 대충하고 눈치만 보게 됩니다. 계속해서 회사와 사장에 대한 불만만 커져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법적 문제가 대두될 수도 있습니다. 최근 이슈가 되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하더라도 직원들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 받거나 업무상 불이익을 받는다면 문제가 됩니다. 주말 행사의 경우 ‘시간 외 근무’ 조항에 저촉될 수 있습니다. 소정 근로 시간 외에 근무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유회나 워크숍을 주말을 끼고 하는 것도 이제는 주의해야 합니다. 회사에 불만을 품고 나간 직원이 임금 체불로 진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사장의 잘못된 인식과 구시대적인 경영 철학이 만나면 회사에 잘못된 기업 문화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시대를 역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장 생각이나 가치관을 바꾸는 것이 어렵겠지만 회사를 운영하려면 항상 멀리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기성세대와는 사고방식이 다른 MZ세대들과 일해야 합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서로가 배려할 수 있는 기업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사장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입니다.
기업시스템코디(조현우) 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