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거냐고 물어보지 마세요, 안 사요
“고객 인터뷰해보셨어요?” 스타트업 대표에게 나는 물었다.
그러니 갑자기 스타트업 대표의 표정이 밝아진다.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허리를 곧게 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숫자 2를 만들어 보이며 말했다. 마치 Victory의 V처럼 보이기도 한다.
“저희 회사는 고객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저희는 무려 잠재 고객 200명을 인터뷰했고, 그중 74%가 이 제품이 출시되면 사겠다고 답했습니다!”
“아….. 축하 드려요!”
최근에 10명의 스타트업 대표와 인터뷰를 했다. 그들이 시장 조사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안타깝게도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그건 바로 ‘유도 질문‘이다. 오늘은 아주 간단한 관점의 변화 만으로도 유도 질문을 하지 않는 법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제대로 된 고객 인터뷰는 뛰어난 직원 10명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스타트업의 70%는 3년 이내에 폐업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CB인사이트라는 미국의 시장 조사 기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스타트업이 실패한 이유 1위는 고객이 원하지 않는 제품을 만들어서이다. 그만큼 고객 인터뷰는 중요하다. 기업의 생사가 걸린 일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유도 질문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보면 2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두려움, 그리고 하나는 인터뷰 스킬 부족이다.
1. 심리적 부담
스타트업 대표들과 얘기해보면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 대해 심리적 부담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100% 이해는 간다. 낯선 사람과 얘기하는 것 자체가 절대 쉽지 않다. 그리고 만약에 내 아이디어가 쓸모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동안 내가 들인 노력은 어떻게 되는 건가 두려움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터뷰를 더 하기보다는 제품 개발에 몰두한다. 더 많은 기능을 넣으면 고객이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제품이 고도화되는 것이 가시적으로 보이면서 뿌듯함을 느끼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든다. 이렇게 생산적 회피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것과 점점 멀어지게 된다.
2. 인터뷰 스킬 부족
둘째로, 인터뷰 스킬이 부족하다. 사실 누구나 살면서 인터뷰를 해볼 기회가 별로 없다. 또한 현재 주로 쓰이는 시장 조사 기법 자체가 굉장히 오래전에 개발된 것들이다. 그러니 창업 교육을 아무리 들어도 좋은 인터뷰 스킬을 배울 수가 없다.
인사이트를 뽑아내기 위한 5가지 질문
유도 질문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굉장히 간접적으로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빨리 답을 얻고 싶어 한다. 종결 욕구에 빠지는 것이다. 빨리 고객에게 이 제품을 원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 그래야 제품 개발에 매진할 수 있으니까. 일단 이 종결 욕구를 이겨내는 것이 올바른 고객 인터뷰의 첫걸음이다.
종결 욕구를 잠시 내려놓고 고객 인터뷰를 잡았다면, 꼭 던져야 할 5가지 질문이 있다.
1. ㅇㅇㅇ을 하면서 가장 불편했던 점이 무엇인가요?
2. ㅇㅇㅇ을 하는 과정에 대해 더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단답으로 대답하는 경우에)
3. 그게 왜 불편했나요?
4. 그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다른 대안은 무엇인가요?
5. 그 대안을 사용하며 마음에 들지 않은 게 있나요?
1번 질문을 통해 고객의 pain point를 확인한다. 그리고 혹시 단답으로 대답하는 고객을 대비해서 2번 질문을 준비한다. 그 불편함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해 달라고 하면 앞뒤 맥락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해준다. 이 앞뒤 맥락이 중요한 이유는, 고객은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불편함이 진짜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이 아닐 수도 있다. 맥락을 파악함으로써 문제의 뿌리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3번 질문에서 마케팅 포인트를 얻어낼지도 모른다. 고객들은 why를 사지 what을 사지 않는다. 고객들의 머릿속에 있는 why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4번 질문은 우리의 경쟁자에 대해 알려준다. 그리고 5번을 통해 그 경쟁사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을 우리의 차별점으로 삼으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경쟁사가 채워주지 못하는 고객의 니즈를 우리가 충족시켜 줌으로써 하나의 차별화된 포지션을 가져갈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위와 같은 내용으로 인터뷰를 여러 번 해보면 고객들의 니즈가 보일 것이다.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을 쭉 나열해보자. 이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혹은 기능)을 옆에 적어보자. 그 솔루션 리스트만 따로 빼서 다시 고객들에게 보여주자. 그리고 당신에게 n원의 예산이 있다면, 각 솔루션에 얼마의 자금을 투입하시겠습니까?라고 질문해보자. 나는 이것을 지불용의가격 인터뷰라고 부른다.
나는 여기서 먼저 소거법으로 원하지 않는 기능부터 가려낸다. 일단 원하지 않는 기능에는 ‘0원이라고 적어주세요’라고 요청하면 신기한 경험을 할 것이다. 본인이 필요하다고 했던 기능을 제시했는데, 거기에 단돈 100원의 자금도 투입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must-have와 nice-to-have를 가려낼 수 있다. nice-to-have는 있으면 좋지만 딱히 거기에 돈을 쓰고 싶진 않은 것이다. 혹은 아주 적은 금액만 쓰고 싶다는 것이다. 초기 스타트업에 nice-to-have는 치명적이다. 조직의 소중한 자원과 시간을 갉아먹지만, 얼핏 보기엔 필요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객에게 지불용의가격 인터뷰를 하지 않으면 nice-to-have를 가려내기 쉽지 않다.
이제 지불용의가격이 높은 기능들을 묶어보자. 그중에서 무엇을 먼저 개발해야 할까? 가장 개발하기 쉬우면서도 파급력이 큰 것부터 시작하길 추천한다.
이렇게 인터뷰를 여러 번 진행하면서 우리는 정말 개발해야 할 솔루션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려낼 수 있다. 스타트업에는 무엇을 하지 않을지 정하는 것이 무엇을 할지 정하는 것만큼, 어쩌면 그 이상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지불용의가격 인터뷰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대표는 재택근무중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