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이 ‘관계’라는 해묵은 정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숙한 조직을 위한 내부 브랜딩(Internal Branding) 과정에서 구성원들과 반드시 짚고 가야 할 개념이 있다면 나는 ‘자율‘, ‘헌신‘, ‘전문성‘ 이 세 가지 키워드를 꼽고 싶다.
먼저 ‘자율‘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닌, 약속된 게임의 룰 안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자율은 스스로의 통제를 전제로 한다. 스스로의 규율에 따라 행동하고 결정하여도 조직에서 동료들과 함께 약속한 선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신뢰가 있을 때 우리는 자율이라는 선물을 획득할 수 있다. 따라서 자율은 처음부터 내가 원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뢰의 결과로 주어지는 선물이다.
이러한 자율을 획득한 개인이 조직 안에서 역할을 수행할 때 기대되는 것은 ‘헌신‘이다.
만일 누군가가 필요하다면 행동하지만, ‘다음에’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순종’이다. 순종은 아무리 성실하고 긍정적이며 규칙을 잘 지킨다고 하더라도 헌신이 될 수 없다. 헌신은 의외로 규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그 규칙이 비전 달성에 방해가 되면 규칙을 바꿀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려고 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의 룰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자율적으로’ 스스로 변경하고 조정하며 비전 달성을 위해 정진한다. 정해진 룰 안에서 전략의 규칙과 방식을 바꾸는 사람들을 우리는 핵심 인재, 혹은 ‘전문가’라고 부른다.
이런 맥락에서 ‘전문성을 쌓는다‘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조정할 수 있는 범위가 점점 확대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자율과 헌신을 기반으로 지식과 기술을 쌓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을 보통 우리는 ‘전문성’이라 부른다. 하지만 전문성은 단순히 ‘문제 해결에 능하다’라는 개념을 넘어 ‘자유’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고속도로에 차를 몰고 가다가 차가 갑자기 고장이 났다고 생각해 보자. 주유를 하거나 엔진 오일을 주입하는 정도밖에 모르는, 차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하나의 상황에 한 가지 답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시나리오를 벗어난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기존에 가지고 있는 본인의 답은 무용지물. 다른 답을 찾고 싶어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해 어떤 답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반면, 차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정비공은 다양한 대안을 가지고 있다. 차의 상태를 점검해 해당 상태를 개선하고 해결할 수 있는 수많은 대안 중 최적의 대안을 선택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다양한 선택지 중 최적이라고 하는 대안을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여 행동에 옮긴다. 자유를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여 행동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한다면, 이러한 원리는 전문성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시 말해, 전문성이 없다면 우리는 충분한 자유를 누릴 수가 없다. 특정한 상황과 환경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사고와 행동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더욱 넓은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욱 넓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자유의 폭은 점점 더 확대될 것이다.
자율, 헌신, 그리고 전문성. 이 세 가지 키워드는 ‘일관성‘과 ‘반복성‘을 가지고 조직 안에서 작동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 약속을 지키며 그 안에서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지, 내가 조직의 비전 달성을 위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역할을 조정하고 변경할 수 있는지, 내가 조직 안에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은 무엇인지, 이러한 장면들이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확인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성과평가, 승진과 보상, 육성과 개발, 각종 시스템과 프로세스 등은 구성원들이 계속해서 자율과 헌신, 전문성의 개념과 태도를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일 뿐이다. 자율, 헌신, 전문성이라는 지붕이 무너지지 않게 튼튼하게 받쳐주는 기둥이다. 즉, 자율, 헌신, 전문성이 조직 안에서 일관적이고 반복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조직 안에 세팅되어야 하는 다양한 제도와 시스템이다. 우수한 아이디어와 전략, 실행이 있어도 결정적으로 브랜딩이 실패하는 이유는 바로 ‘일관성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조직이 자율과 헌신, 전문성이라는 개념을 구성원들과 밀도 있게 공유하고 일관성과 반복성을 가지고 꾸준하게 우리의 약속과 일하는 방식을 밀고 나아가면 자연스럽게 ‘우리다움’의 정체성이 생긴다.
우리다움의 정체성이 생긴 조직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먼저 리더가 사라지고,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든 사람이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고 일터의 개념이 돈을 버는 곳에서 가치를 지향하며 각자의 삶을 완성해 나가는 곳으로 바뀌며, 사람들 간의 관계가 경제적 교환 관계에서 심리적 교환 관계로 넘어간다. 이런 단계까지 도착한 조직은 비로소 ‘공동체’를 이야기할 수 있다. 공동체는 이윤 추구보다는 ‘이웃 추구’를 지향하며 비즈니스 자체를 ‘가치 추구의 행위’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팀’은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며 성과를 만들어내는 집단’이라는 정의를 뛰어넘어 ‘가치에 맞는 행동을 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는 모임’으로 조금 다른 정의를 받아들이게 된다.
내부 브랜딩을 단지 좋은 조직문화를 만들고 싶어서 시작했는가?
좋다. 대부분이 그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의 고민이 조직 내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조직문화에서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조직을 넘어 사회에 어떤 가치와 삶의 방식을 제시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넘어가야 한다. 지금보다 나은 삶을 위해 우리 조직은, 우리 공동체는 사람들에게 어떤 화두를 던지고 어떤 삶의 모습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나름의 답을 탐색해야 한다.
브랜딩이 ‘관계’라는 해묵은 정의는 실은 이러한 생각의 방향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닐까?
브랜딩인가HR인가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