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의 무게가 두괄식을 만든다
오늘 아침 회사 미팅 때 주니어 분께서 기획안을 공유하는 자리에 들어갔었습니다. 딱히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경험이 많지 않던 발표자는 어느 정도 긴장한 듯 보였습니다. 그래도 말을 잘 이어가며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할지 잘 설명하였는데 발표가 끝난 후 분위기가 다소 어정쩡했습니다. 아무래도 같이 발표를 들은 분들이 정확히 이게 무엇인지 이해를 다 못한 것 같았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알고 있는 제가 몇 마디를 더 거들어 참석자들을 이해시키고 나오면서 무엇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두괄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무엇을 언제까지 할지 먼저 이야기했죠. 다행히도 두괄식으로 말하는 것은 좋은 접근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두괄식으로 말하는 내용에 있었죠.
“두괄식은 무엇을 먼저 이야기하는 방법일까요?”
이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한 문장으로 이게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 세세한 디테일이 아닌 종합적인 의미를 던지는 것, 그 속에 디테일 중 핵심 일부가 들어가는 것. 이게 두괄식 첫 문장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된 격언인 ‘아이에게 말하듯’ 이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죠.
아이에게 말하려면 두괄식 첫 문장으로 뒤에 말할 여러 디테일 중 하나를 가져와서는 모두를 이해시키기 곤란합니다. 마치 능글맞은 선배가 대수롭지 않게 이 일을 한 문장으로 잡아 정리하듯 좀 더 상위 레벨의 이야기로 치환하는 작업이 머릿속에 필요한 것이죠. 쉬운 이야기는 사실 뻔한 이야기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22년 2월 완료를 목표로 결과물은 어떤 것을 만드는 것이며 투입 예산은….
이것도 좋은 두괄식 첫 문장이지만 이걸 왜 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먼저 이야기하는 게 필요합니다. 당위성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왜 이렇게 하나하나 말하고 있는지 들을수록 더 의문을 갖게 되죠.
이 프로젝트는 저희가 목표로 했던 OOO을 달성하는 첫 단계로 ’22년 2월 XXX 결과를 통해 이뤄지며…
예전에는 선배들의 발표가 너무 성의 없다고 느꼈습니다. 숫자가 빠져 있고 고유명사로 설명하지 않는 두루뭉술한 서술은 그냥 말장난이라고 생각했었죠. 물론 그런 디테일한 표현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닙니다. 그게 첫 문장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듣는 사람도 사람이니까 이해를 먼저 시켜주는 부분이 필요하고, 그다음에 디테일이 나열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너무 큰 의욕으로 디테일의 어느 부분만 부각해 말하면서 큰 그림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선배들은 이해시켜야 하는 사람의 상태를 두고 발표의 기승전결을 만든 반면, 성급한 디테일리스트인 저는 한 때 디테일을 실컷 말하고 발표 뒤에 누군가가 항상 첨언을 해줘야 했었죠.
보고서를 없애자면서 한 장으로 보고서를 만들라고 하면, 여러 장에 걸쳐 만든 기획안의 의미와 배경 페이지가 삭제되는 게 아닙니다. 한 장 어딘가에 몸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처럼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법한 ‘의의’나 ‘목적’이 사실 진짜 머리일 수 있다는 것이죠. 두괄식으로 말할 때 말의 배치도 중요하지만 시작하는 그 한마디의 무게가 이후에 나오는 문장들보다 더 상위에 있는지 그걸 생각해 보는 것이 보다 나은 발표를 만들 수 있습니다.
PETER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