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은 규칙(Rule)과 장치(Tool)를 만들어 구축할 수 있습니다. 대개는 이 두 가지 중 규칙부터 만듭니다. 회사는 취업 규칙, 사내 규정 등을 제일 먼저 만들게 됩니다. 심사숙고해서 규칙, 즉 규정을 정했으면 반드시 지켜야만 합니다. 일반인들도 약속을 했으면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아주 상식적인 것입니다.
규정을 만들었으면 경영진부터 지켜야 한다
문제는 규정을 만들고 난 후 제일 먼저 어기는 사람들이 바로 사장을 포함한 회사 경영진이라는 것입니다. 규정을 만들었으면 사장을 비롯한 모든 임원들은 솔선수범해서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직원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정한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서 직원들에게 그것을 준수하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윗사람들이 먼저 규정을 어기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는 회사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직원들은 항상 사장과 임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영진의 규정 위반은 직원들과 심각한 불신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왜 경영진은 자신들이 규정을 만들고 또 그것을 어기게 될까요? 사장이나 임원들이 규정을 어기게 되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는 알고도 어기는 경우입니다. 최악의 상황인 것이죠. 말로만 회사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떠들고 나만은 예외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권력을 가지면서 자기 관리의 소홀함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윤리 규정이 있어 직원이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으면 처벌해야 한다고 하면서 본인들은 협력업체 사장에게 각종 향응과 접대를 받기도 하죠. 승진 규정을 만들어 놓고 그 기준에 부합하는 직원은 승진에서 배제하고 편애하는 직원을 승진시키기도 합니다.
이럴 경우 만들어진 규정은 직원들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한 규정으로만 남을 뿐입니다. 직원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악법도 법’이라며 지키긴 하겠지만 경영진을 뒤에서 욕하고 회사에서 탈출을 꿈꾸겠죠. 서로 간의 신뢰가 깨지게 됩니다. 직원들이 이탈할 경우 경영진은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떠나간 직원들 탓, 세태 탓을 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모르고 어기거나 충분히 이해를 못하는 경우입니다. 사장은 법적인 문제와 회사의 체계를 바로잡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취업 규칙과 사내 규정을 만들 것을 지시합니다. 경험이 있는 직원이라면 법적 테두리 안에서 회사의 실정에 맞게 규정을 만들어 결재를 올릴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장이 내용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결재를 해버리는 것입니다. 사장이 최종 결재를 했다는 것은 그 내용이 그대로 회사의 규칙으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사장이 결재하게 되면 회사에 공지를 하게 되는데 이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는 임직원은 거의 없습니다. 이럴 경우 직접 결재한 사장도, 임원들도 그 내용에 대해 잘 모릅니다. 사정이 이러니 규칙을 어기게 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면 규정을 담당하는 직원이 개정된 법규를 반영해 취업 규칙을 위해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수정하였습니다. 이건 법적으로 정해진 것이니 당연한 것이죠. 이걸 본 사장은 “누구 마음대로 이걸 바꿨냐?”며 화를 냅니다. 작성한 직원은 자신이 월권한 것처럼 이야기하니 난감할 따름이죠.
또 하나를 예로 들면, 회사 비용 절감 차원에서 출장 규정을 개정해서 임원은 비즈니스석 항공편이 아닌 이코노미석을 이용하기로 하였습니다. 관련 임원은 개정된 내용을 보지 못했다며 비즈니스석을 직원에게 요구합니다. 직원은 규정을 지켜야 한다고 항변해 보지만 임원은 막무가내입니다. 결국 사장이 나서서 조율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규정이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사장의 권한 축소가 아니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컨설턴트나 실무자가 회사의 시스템을 구축하려 할 때 보이는 사장의 특이점이 있습니다.
시스템을 구축하여 회사를 체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작성된 규정들을 검토하고 나서는 시행을 꺼린다는 것입니다. 규정이나 시스템이 자신의 권한을 축소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예전에는 본인 말이 곧 법이었는데, 규정이 만들어지면 그 규정대로 회사가 운영되니 자신의 힘이 없어진다는 우려 아닌 우려를 하곤 합니다. 이 같은 사장의 생각으로 작성해 온 규정을 보류하거나 적용 범위 축소를 지시하는 일이 다수 일어납니다.
허나 이것은 사장의 크나 큰 착각입니다. 규정이나 시스템이 똑바로 구축되어야 각 임직원이 제 역할을 하게 되고, 사장은 회사의 중요한 사안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000원짜리 지출결의서까지 결재를 한다고 해서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 크고 중요한 업무를 하기 위해 작은 것을 내려놓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회사에 규정이나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면 사장은 자신의 권한 축소를 걱정하여 규정의 범위를 좁히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해진 규정은 경영진들부터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규정과 시스템이라도 사장이나 임원들이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지키지 않습니다.
기업시스템코디(조현우) 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