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회사의 현실에 맞는 맞춤형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시스템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사장님 중 일부는 무조건 큰 기업 시스템을 가지고 와서 조금만 수정한 후 본인 회사에 이식하려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장님이나 외부 영입 임원이 대기업 출신일 경우 더욱더 그러하죠. 보통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은 소기업과 달리 회사 운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고들 합니다. 그러니 큰 기업 시스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는 것이죠.
대기업 시스템이 무조건 좋다?
하지만 사람이 각기 다르듯이 회사도 그 처한 상황이나 현실이 모두 다릅니다. 과연 유치원생에게 대학생 옷을 입혀 놓으면 잘 어울릴까요? 시스템이나 문화는 흉내 내기 힘듭니다. 또 단순한 흉내는 회사에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소기업에 시스템이 제대로 안착하려면 반드시 그 회사의 업종, 규모, 특성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해야 합니다. 회사의 특성을 무시한 외부 시스템의 도입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다음의 예를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한창 벤처 붐이 일어난 1990년도 후반의 일입니다. S 전자 출신과 L 전자 출신의 두 친구가 의기투합해서 벤처기업을 창업했습니다. 아무래도 대기업 출신들이다 보니 처음부터 회사 운영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스템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논의를 했습니다. 하지만 각자 자신의 회사 시스템이 우수한 점을 주장할 뿐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논의 끝에 서로 조금씩 양보하여 두 회사의 장점만을 취한 회사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가요? 한국을 대표하는 2개의 대기업 시스템의 장점만을 취해서 운용했으면 회사가 엄청 안정적으로 성장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소기업에 대기업의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하니 각종 부작용이 따랐던 겁니다. 대기업과 다른 연구개발 및 판매 시스템 등 핵심적인 부분에서도 문제가 발생했으나 특히, 직원 복지 부분에서 회사가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대규모 투자금 유치와 초고속 성장을 예상해서 이런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죠.
결국 그들은 2년 정도 운용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했습니다. 회사의 특성과 자금, 인원 규모 등을 무시한 채 좋고 훌륭한 시스템만 외부에서 가져온다고 그 기업처럼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제가 겪은 예도 있습니다. 어떤 제조업체에 경력직 관리 팀장으로 입사했을 때의 일입니다. 회사 규모는 크지 않으나 창업한 지 30년 가까이 되는 건실한 기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입사하자마자 임시 관리 팀장을 맡고 있던 과장이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그 친구는 회계 직무라 인사 업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원래 승진 대상자가 10명인데 새로 도입한 승진 제도를 적용하까 승진자가 2명 밖에 안되는데, 이것이 맞는지 의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승진제도 PPT 자료를 검토해 본 후 이 제도는 누가 만들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사장님께서 회의 때 회사 승진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자 생산 팀장이 친구 회사의 승진 규정 자료를 받아 왔다는 것입니다. 그 자료를 사장님께 그대로 보고했고 사장님을 그것을 받아들여 시행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료 출처를 보니 그 회사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명한 중견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회사의 인력 구성이나 학력, 인재상, 회사의 비전 등이 우리 회사와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그런데 그 제도를 수정도 없이 그대로 적용하려 하다 보니 이런 불합리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승진 시기를 3달 후로 미루고 다시 승진 제도를 만들어 적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2명만 승진에서 누락이 되고 나머지는 모두 승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느슨한 승진제도가 옳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제도를 만들고 적용하려면 회사의 인재상이나 발전방향, 구성원의 특성을 명확히 규정한 다음 회사 특성에 맞는 승진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행 전 구성원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고 이해시키는 것은 필수사항입니다.
이와 유사한 사례들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밖에 경영이론의 유행만 좇아 시스템을 만드는 회사도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 규모가 커지고 인력 구성도 바뀌었는데 사업 초기에 만들어 둔 규정으로 운영되는 회사도 있는 실정입니다.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많은 회사가 사업 초기 취업규칙이나 규정을 개정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마저도 다른 회사의 것을 베끼거나 노무사에게 의뢰해서 만든 것입니다. 회사에 맞도록 수정해서 적용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이죠. 아니 그보다 경영진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미래를 바라보고 성장하는 회사의 사장님은 회사에 맞는 뛰어난 제도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주력합니다. 자신의 몸에 맞는 옷을 입으려 하고, 또 남의 옷을 가져와서 입으려 하지 않습니다. 또한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나만의 멋지고 특별한 옷을 입으려 합니다. 반드시 기억하세요. 지금 회사의 현실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고 성장 단계에 따라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기업시스템코디(조현우) 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