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몰에 문학이 들어왔습니다

 

 혹시 29CM를 이용하시는 분들이 계실까요? 29CM에서 쇼핑을 하다 보면, 무언가 낯선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여기가 쇼핑몰인지 매거진인지 헷갈릴 정도로 콘텐츠들이 많기 때문인데요. 초창기부터 PT라는 서비스를 전면에 내세울 정도로 브랜드나 상품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잘 만드는 걸로 이미 유명했지만, 최근 들어 보이는 내용은 결이 약간 다릅니다. 브랜드와 상품이 아니라, 콘텐츠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건데요. 매주 다양한 사물에 관한 에세이를 연재한다거나, 집밥 레시피를 소개하는 등 정말 매거진 수준으로 이를 생산해냅니다.

 

 

 

 

 29CM뿐이 아닙니다. 현대백화점 투홈은 단편 소설을 싣는 등, 문학 콘텐츠를 선보였고요. 신세계백화점은 공식 앱에서 전자책 대여 서비스인 ‘신백서재’를 론칭하였는데, 누적 접속자 수가 10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온라인 플랫폼들이 갑자기 문학에 빠진 이유는 체류시간 때문입니다. 이미 오프라인에서는 체류시간을 늘리는 게 최대의 화두로 떠올랐는데요. 목적형 쇼핑보다 발견형 쇼핑의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신세계가 코엑스에 별마당 도서관을 만들어 사람들을 모으고 더 오래 머무도록 한 것이나, 전자책 대여 서비스를 선보인 것은 같은 맥락에 있는 셈입니다.

 또한 텍스트 콘텐츠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있는 것은 생산 비용이 비교적 저렴하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과거에도 콘텐츠와 커머스를 결합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쭉 있어왔고요. 특히 비디오 커머스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영상 콘텐츠가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올해 더 대세로 떠오른 라이브 커머스도 그 연장선 상에 있고요. 하지만 영상은 가성비가 좋지 못했습니다. 막대한 제작 비용이 들기에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워 장기적인 모델로 지속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텍스트 콘텐츠는 훨씬 적은 비용으로도 고객 확보가 가능하고요. 수년 전부터 카카오페이지 등을 중심으로 웹소설이 흥행하고, 밀리의서재 같은 전자책 플랫폼들이 떠오르면서, 대중적으로도 친숙해진 것도 한몫 했습니다.

 

 

스케일이 커지면 얻는 것도 많아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영상 콘텐츠를 포기하지 않은 곳들도 있습니다. 영상 콘텐츠는 만들기는 어렵지만, 일단 터지면 파급력은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장 선두에는 영상 콘텐츠를 넘어서, 아예 OTT 플랫폼을 만든 쿠팡이 있습니다.

 작년 12월 첫 선을 보인 쿠팡플레이는 가격은 싸지만 볼 것도 없는 플랫폼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스포츠 중계를 통해 존재감을 늘려가더니, 독점 콘텐츠 SNL 코리아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제는 이용자 수 기준으로 왓챠와 시즌을 제쳤다고 합니다.

 

 

SNL 코리아가 화제를 몰면서, 쿠팡플레이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출처 : 쿠팡플레이)

 

 

 이렇게 쿠팡이 OTT 플랫폼을 키우는 건 단순히 고객의 방문 유도나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아예 앱 자체도 별도로 서비스하고 있기도 하고요.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쿠팡플레이는 온전히 쿠팡의 유료 멤버십 로켓와우를 가입해야 하는 이유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겁니다. 콘텐츠를 통해 신규 고객을 확보하거나, 기존 고객의 이탈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인데요. 이는 이미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익히 증명된 바 있습니다. 유사하게 11번가는 웨이브나 플로까지 결합된 T우주를 통해 충성 고객들을 얻으려 하고 있기도 하고요. 

 

 

콘텐츠에도 커머스는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커머스와 콘텐츠의 동행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커머스에 콘텐츠가 필요한 만큼, 콘텐츠에도 커머스가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콘텐츠 산업은 전통적인 광고 기반 모델에서 유료화나 구독 중심 모델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이는 콘텐츠 창작자들에게 큰 기회인 동시에 위기이기도 한데요. 잡지나 출판 등 전통적인 기반은 무너지는데, 구독 시장이나 유료 콘텐츠 시장이 성장하는 속도는 이에 못 미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커머스에서 새로 만들어 내고 있는 시장은 창작자들에게 매우 소중합니다.

 또한 커머스와 콘텐츠의 결합은 수익 창출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유명 유튜버들의 수입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플랫폼 광고 수입이 아니라 브랜디드 콘텐츠라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창작자들은 단순 광고 수익에 기대기보다 브랜디드 콘텐츠를 만들거나, 직접 커머스에 뛰어드는 사례가 늘고 있고요. 아예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콘텐츠 플랫폼들마저 자체적인 쇼핑 기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콘텐츠 유료화나 구독 모델도 본질적으로는 결국 커머스입니다. 무언가를 판매하는 행위라는 점에선 동일하기 때문인데요. 따라서 콘텐츠 판매자들은 커머스에서 통한 방식을 그대로 가져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반대로 콘텐츠 구독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을 상대로 상품 구독을 유도하는 등, 커머스에서 역으로 이를 차용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고요. 이처럼 앞으로는 콘텐츠를 아는 커머스와 커머스에 익숙한 콘텐츠만이 성공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묘한 님이 뉴스레터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