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를 통해 생각해 본 빅데이터 시대의 고객 조사
회사에서 가장 많이 하는 것 중 하나는 고객 조사입니다. 고객의 정의가 달라서 그렇지 회사에서 내가 일을 잘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사람을 고객이라고 한다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당장 우리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해 주시는 분들이 고객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업무 프로세스에서 나의 결과물을 가지고 다음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사람도 나의 고객입니다. 내가 하는 일을 감독하는 정부 기관도 고객이고 회사와 협력 관계에 있는 다른 업체도 고객이죠. 세계적 소비재 제조 기업인 P&G는 아예 고객을 정의할 때부터 최종 소비자와 제품을 유통하는 채널 고객으로 구분하여 두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합니다. 이 사람들과 관계가 좋지 못하면 나의 퍼포먼스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한 조사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빅데이터 시대에 고객 조사는 유효할까
P&G가 업계에서 고객 조사를 가장 잘하는 기업 중 하나로 늘 손꼽히는 데는 끊임없는 고객 조사 방법론의 개선 노력을 들 수 있습니다. 한 때 P&G의 디자인 전략과 혁신을 이끈 ‘클라우디아 코트치카(Claudia Kotchka)’ 부사장은 고객 조사 패러다임의 핵심적인 변화를 ‘고객의 말’에서 ‘고객의 행동’을 분석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과거 10년 이상 고객 인터뷰, 고객 가정 방문, 관찰 등을 통해 개선하던 방법론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꾼 것이죠. 고객이 실제 말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한계’라고 느끼는 것을 찾아 차별적인 가치로 바꾸는 게 지향하는 고객 조사 방법이 되었습니다.
빅데이터 분석은 고객의 행동을 정량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최신 기법입니다. 고객 구매 행동의 여정을 단계별로 분석하면서 퍼널(funnel)별 고객 행동이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분석하는 것을 꾀합니다. 과거 FGI(Focus Group Interview)를 잘하는 사람을 채용하는 고객 조사 시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데 반해 온라인 퍼널을 분석하는 분석가는 수요에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퍼널에서 다음 퍼널로 고객이 계속 구매 여정을 이어가는 전환율이나 고객이 남긴 댓글, 체류 시간, 평점 등 로그(log)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법론이 꾸준히 고객 조사의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량적인 고객 분석이 고객 조사의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고객 데이터 분석을 이 부분에서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빅데이터는 과거에 썼던 스몰 데이터(수량으로 많이 모이지 않고, 순간적으로 고객 관찰을 통해 발견한 인사이트 등을 말함)와 결합해야 고객을 입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고 현재 하는 일에 무엇을 해야 할지 좀 더 명확한 제언으로 도출됩니다.
빅데이터는 분명 트렌드이기는 하나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서버 등 인프라에 투자하는 비용만큼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속도의 효율을 보이기 때문에 도입 자체가 제한적입니다. 플랫폼 설계부터 데이터 수집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국내 이커머스들이 겪고 있는 문제처럼 의미 있는 수준의 변별력 있는 변수들을 매출이나 로그에서 구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 매출이 나오면 그만이라는 수준의 플랫폼은 같은 상품을 하나의 코드로 관리하지 않아 이것이 같은 상품인지 다른 상품인지조차 몰라 정확한 분석이 되지 않는 일을 만듭니다. 작은 회사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오히려 업력이 풍부한 기업에서도 데이터 분석이 어려운 환경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부족한 데이터 종류는 브랜딩 학자 ‘마틴 린드스트롬(Martin Lindstrom)’이 언급한 것처럼 느슨한 해석을 만들 수밖에 없고 정확한 고객의 불편 요소, 열망을 설명해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마틴 린드스트롬이 강조한 ‘스몰 데이터(small data)’, 고객의 숨은 니즈를 발견해나가는 다소 전통적인 고객 조사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무엇을 얻을 것인지 정하는 것이 처음이다
실무에서 고객 조사를 준비할 때 가장 까다로운 것들은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물어볼 것인가 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고객 조사를 해야 한다고 의견은 모아졌는데 막상 누군가와 연락을 해 만나서 물어보려니 귀찮기도 하고, 처음 보는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막막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 상황에서 먼저 정할 것은 고객 조사의 목적, 즉 ‘무엇을 얻을 것인가’입니다.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 앤 컴퍼니(McKensey&company)’는 인터뷰를 소홀히 대하지 않습니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인터뷰를 통해 단기간에 업계 최고의 지식을 습득하기도 하고 문제의 뿌리를 찾아내기도 합니다. 한정된 시간 내에 다시 없을 인터뷰를 하기 위해 사전에 준비하는 방법부터 인터뷰 중에도 나름의 스킬을 쓰기도 합니다.
먼저 인터뷰를 위한 사전 질문지를 작성합니다. 사실 이런 준비는 우리도 많이 합니다. 고객을 만나기 전 만나서 할 말이 없을까 봐 미리 준비해서 갑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인터뷰가 마치고 나면 내가 무엇을 얻어갈 것인지를 명확히 정하고 질문지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기획의 기본이 명확한 메시지입니다. 보고서를 쓸 때도 1페이지에 2개 이상의 메시지를 담지 않습니다. 보는 사람이 헷갈릴 수 있어 명확한 하나의 메시지만을 제시하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생각합니다. 맥킨지 등 컨설팅 회사가 아니더라도 인하우스(in-house) 컨설팅 조직을 가진 기업에서는 이렇게 보고서 쓰는 교육을 받기도 합니다. 인터뷰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뷰의 결과가 무엇인지 사전에 정하는 것은 모든 인터뷰 시간을 초점 잃지 않고 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힘을 만들어 줍니다. 그것은 바로 문제의 뿌리,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일 겁니다. 인터뷰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사전에 준비하면서 후회 없는 질문을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질문의 종류는 현재 사업이 어떤 상황인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업이 시작 단계면 시장을 어떻게 구분해서 어떻게 침투할 것인지에 목적을 두고 생각하는 타깃 고객 연령대와 지역, 소득 수준 등을 고려해 나와 잘 맞는 고객의 니즈를 파악합니다. 그리고 주요 경쟁자가 무엇이고 그들의 강점이 무엇인지 고객의 입에서 듣는 것이죠. 그중 우수하다고 고객이 말하는 경쟁자에서 몇 가지 벤치마킹할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기존에 비어 있는 포지션을 차지하거나 고객이 시장을 보는 프레임을 새로운 침투를 통해 전복할 수 있을 것인지 답을 찾는 것입니다.
시장에 진입하여 성장기에 있다면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 고객 조사가 많이 필요합니다. 빅데이터로 분석을 한다면 한 번 구매 후 이탈한 고객과 이탈하지 않고 재구매를 한 고객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고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매출이 늘고 있지만 BEP(손익 분기점)를 넘지 못해 피벗(Pivot)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있는 기업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서비스가 신규 고객에게 매력적인지 검증하는 작업을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기존 공인 중개사를 배제한 직거래 형식의 서비스로 론칭한 이후 지금 버전인 부동산 중개 업자를 중간에 넣고 광고 등의 수익 모델로 전환한 것도 기대한 신규 고객이 나오지 않자 고객 조사를 통해 얻게 된 인사이트였습니다.
반면 실적이 내리막길에 있다면 이탈하고 있는 고객을 주목해야 합니다. 고객이 왜 구매하지 않게 되었는지 파악하는 게 목적이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고객은 말로 떠난 이유를 설명하는 일은 잘 없습니다. 복잡한 상황을 다 말하지 않습니다. 시장에 새롭게 등장한 대체재나 경기 변화로 가장 먼저 지갑을 열지 않게 된 아이템, 뚜렷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너무 흔하거나 늙어 버린 것 같은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망설이게 되는 감정이나 딱 잘라 표현하기 어렵지만 시장에서 가격이 점점 비싼 축으로 옮겨 나는 느낌 등은 한두 번의 고객 조사로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고객의 속마음입니다. 빅데이터 분석을 같이 활용해 한 고객이 과거 구매력이 높은 고객이었다가, 점차 금액을 줄이고 이탈하게 되는 과정을 분석하고 어떤 단서를 로그 데이터에 흘렸는지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소셜 데이터인 네이버 연관 검색어의 변화나 SNS 해시태그의 변화도 이탈의 원인을 찾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만날 것인가
인터뷰를 통해 얻을 것을 명확히 정리했다면 숙제는 ‘누구를 만날 것인가’로 연결됩니다. 질문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핵심입니다. 국내에서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고객 등급이나 고객 세그먼트(Segment)를 구분하여 운영 중입니다. 예를 들면 VIP, GOLD, SILVER 등으로 고객 구매 내역에 따라 등급을 만들어 구분하고 고객이 관심 있는 분야에 따라 패션, 금융, 여행, 문화 등으로 세그먼트를 만들어 고객을 관리하는 것이죠. 예를 든 것은 아주 전통적인 모델 수준으로 최근에는 머신러닝을 활용한 마이크로 세그먼트(Micro-segment)나 개인화를 통해 더 세부적으로 고객 취향을 관리하고 적절한 콘텐츠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CRM 데이터의 활용이 부족한 기업이 많습니다. 단순히 등급을 산정해 업셀링(up-selling, 판매자가보다 수익성 있는 판매를 위해 더 비싼 품목, 업그레이드 또는 기타 추가 기능을 구매하도록 고객을 유도하는 판매 기술)을 유도하거나 세그먼트 사이의 크로스 셀링(cross-selling, 기존 고객에게 추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행위)을 권유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게 대부분인 기업도 많습니다. CRM 데이터가 고객 조사의 중요한 원천인 것을 모른 채 말이죠. 아무나 붙잡고 한 몇몇 고객이 전체의 의견을 대표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번번이 비싼 리서치 기업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CRM 데이터에 있는 고객 정보 및 우리가 나눈 고객 특성이 이럴 때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이탈 고객이 누군지, 최근 유입된 고객은 어떤 채널로 주로 들어왔는지 등 고객이 겪었던 수준에 따라 각각 고객 조사를 진행하고 다양한 고객 니즈를 발견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한 주에 10번 매장을 방문한 고객과 1번 방문한 고객의 의견을 하나로 묶어 결론을 낼 수는 없습니다. 10번 방문한 고객을 기존 고객으로 본다면 1번 방문한 고객은 전후 빈도에 따라 이탈을 향하는 불만이 있는 고객일 수도 있고 이제 어떤 동기에 의해 경험을 시작한 신규 고객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이런 의견들은 구분해서 결과에 반영하는 것이 좋습니다.
P&G의 경영진이었던 A.G. 래플리는 고객 조사의 핵심은 고객과의 신뢰라고 말합니다. 특히 B2B 고객으로 갈수록 오랜 기간 쌓인 신뢰가 정확한 파악을 가능케 하는 조사의 동력이 된다고 합니다. 맥킨지의 조사 방법도 철저히 인터뷰 대상자를 존중하는 것을 철학으로 합니다. 인터뷰 시작하자마자 단도직입으로 질문을 하는 것을 지양하고 내가 상대방을 경청하고 있다는 것을 상대가 알도록 하는 팁들을 알고 있습니다.
아직도 일회성으로 단순히 설문지를 돌리면서 무슨 말을 할지 몰라 해석이 안되고 연결이 안 되는, 고객의 분류가 어려운 고객 조사를 하고 있다면 앞서 제시한 고객 조사 방법을 적용해야 합니다. 고객 조사는 모든 일의 시작이 됩니다. 내 결과물을 받는 고객 없이 비즈니스는 진행될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이 고객 조사부터 시작하기에 변화 없는 고객 조사 방법은 낡은 안테나로 주파수를 맞추려 하는 격입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 착수 시점의 고객 조사를 프로세스로 정리해 보고 어디를 바꾸어야 하는지 정리해 보기를 제안드립니다.
PETER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