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휴 천재 11번가가 반등의 기적을 보여줄까요?
길을 잃었다, 11번가
11번가는 과거 정말 잘 나갔었습니다. 단일 플랫폼 기준으로, 업계 1위에 자리에 올랐던 게 불과 3년 전이었으니 말입니다. 오픈마켓 시장에서 후발 주자였던 11번가가 무섭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물론 SK텔레콤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습니다. 엄청난 마케팅 예산을 쏟아부은 것은 물론이고, SKT를 이용하는 고객에게 기본 앱으로 11번가가 설치되었을 정도였죠.
하지만 11번가가 잠시나마 거래액 1위 플랫폼의 왕좌에 앉을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명확한 전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11번가는 ‘최저가’라는 가치 하나에 정말 집중했습니다. 최저가 모니터링 팀을 따로 운영하였고, 전략 목표도 고객에게 최저가 경험 구매를 제공해 네이버에서 굳이 최저가 검색을 하지 않고도 처음부터 11번가로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커머스 시장 내 경쟁의 패러다임이 최저가 확보에서 배송 혁신으로 바뀌면서, 11번가의 존재감은 점차 옅어지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11번가는 바뀐 경쟁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길을 잃어버립니다. 한 때 쿠팡의 로켓배송에 대항하기 위해 직매입 사업을 확장하였지만, 불과 4년여 만에 철수를 결정하고요. 2019년 어렵게 흑자 전환에 성공하지만, 2020년에 다시 적자 전환하며 그 기세를 이어가지 못합니다. 또한 어렵게 만든 십일절 행사도 광군제만큼 키우는 데는 실패하지요. 이렇게 되면서 사람들이 11번가에 품었던 기대도 짜게 식기 시작합니다. 매물로 나온 이베이코리아, 인터파크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거라는 평이 지배적이었죠.
아마존과의 협업만으론, 글쎄요
특히나 11번가에게는 지난 2018년 투자 유치 조건으로 내건 2023년까지 기업 공개라는 미션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데다가, 뚜렷한 전략도 없었고요. 이런 상황에서 IPO를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이렇게 벼랑 끝에 내몰린 11번가가 회심의 한 수로 내민 것이, 바로 아마존과의 전략적 제휴였습니다.
이와 같은 제휴 소식이 처음 전해진 건 작년 연말이었는데요. 그리고 올해 8월 31일, 오랜 기다림 끝에 11번가의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가 드디어 첫 선을 보였습니다. 가격 경쟁력을 가진 아마존의 해외 상품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인데요. 비록 배송은 국내 쇼핑보다 느리지만, 멤버십 우주패스 가입자의 경우 무료배송 혜택이 제공되고, 비가입자라 하더라도 2만 8천 원 이상 구매 시 배송비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확실히 매력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파급력이 있을지는 솔직히 미지수입니다. 국내에서 해외 직구 시장 규모는 4조 원 정도로 작진 않지만 그렇다고 전체 시장을 움직일 정도는 아닙니다. 그리고 아마존의 영향력도 글로벌 시장에선 몰라도, 국내에선 제한적인데요. 실제로 아이에지웍스 모바일인덱스HD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아마존 앱 월간 이용자 수는 전년 대비 올해 성장이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블랙프라이데이 등 특정 기간 동안 신규 고객 확보에는 일정 부분 효과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네이버와 쿠팡과 경쟁하기엔 무리가 다소 있어 보입니다.
제휴 천재 11번가, 이번만큼은?
그런데 이번에 11번가가 내놓은 패는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뿐이 아닙니다. 사실 더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이는 건, 역시 구독 브랜드 ‘T우주’와 유료 멤버십 ‘우주패스’입니다. 우주패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파격적인 구독 패키지입니다. 온오프라인 쇼핑은 물론, F&B, 모빌리티 서비스, 보험과 영양제까지 정말 다양하게 모았습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확실히 과거 시도했던 유료 멤버십 올프라임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고심했다는 것이 느껴지는데요. 올프라임은 SKT가 내놓은 유료 구독 서비스로 개시 1년 만에 서비스를 접고 맙니다. 아무래도 고객의 반응이 미적지근했기 때문일 텐데요. 당시 주어졌던 혜택이 웨이브나 플로처럼 SKT가 가진 자체 서비스에 한정되었던 것이 주원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다양한 우군들을 끌어들였고요. 혜택 내용이 구독 이용료보다 크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운영 가능할지는 미지수지만 초기 가입자들은 확실히 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욱이 이처럼 제휴를 통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건 통신사 업계에선 매우 흔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제휴 마케팅에 도가 튼 SK텔레콤을 배후에 둔 11번가가 오래간만에 영리한 선택을 한 듯한데요. 아마존 직구 만으로는 한계가 있지만, 제휴 혜택까지 더해진다면 이번만큼은 11번가도 반등할 수 있을 듯합니다. 다만 장기적으로 네이버와 쿠팡을 추격하려면, 더 본질적인 차별화 요소를 찾아야 할 테지만요.
기묘한 님이 뉴스레터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