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이라는 단어를 보면 많은 이들은 어머니를 떠올리고,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자주 만들어 주셨던 음식을 떠올릴 것이다. 어머니의 손맛이 나는 제철 나물에 구수한 된장찌개와 김치… 우리나라 음식은 뚜렷한 사계절로 인해 계절에 유난히 민감하여 과거에는 ‘제철 음식’이라는 말도 많이 했지만,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과일과 채소가 늘 생산되고 있어 제철 나물이라는 말도 다소 퇴색한 듯하다.
1950년대 대한민국은 보릿고개를 걱정하며 배불리 먹을 것만을 원했지만, 4차 산업과 IT기술 그리고 디지털과 소셜미디어가 이끌고 있는 2021년의 대한민국은 기술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하면 잘 먹고 건강을 유지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아간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식을 마음만 먹으면 계절과 상관없이 맛볼 수 있고 쉐프들은 이들을 조합하여 수만 가지의 퓨전 음식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수만 가지 퓨전 음식의 흐름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푸드비즈니스 랩에서는 매년 말, 수년 간 대한민국 국민들의 식품 구매 및 섭취와 관련한 다양한 빅데이터를 수집, 분석한다. 또 다음 해에 우리의 식생활이 어떻게 바뀌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푸드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리포트를 만들어서 출간하고 있다. 푸드 비즈니스 랩은 2021년 푸드 트렌드의 핵심 키워드를 ‘집밥 2.0’이라고 칭한다.
코로나19가 우리를 공격하던 초반에는 공포심과 불확실성으로 인해 음식을 저장해 미래에 대비하는 모습으로 식생활의 변화가 있었던 반면,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있는 지금에는 잘 버티고 이겨내기 위한 식생활로 변화해 가고 있다. 즉 혼밥과 혼술의 시대에서 홈밥과 홈술의 시대로 바뀌어 가며 혼자라도 간편하지만 신선한 음식, 간편하지만 건강한 음식, 초록색이지만 맛있고, 달지만 저당이어야 하고, 짜지만 저염 식품으로… 이런 음식을 원하는 시기가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집밥 2.0이라는 것이다.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에서는 이 집밥 2.0을
- 식생활 변화, 코로나19
- 새벽배송
- 간편한 밀키트
- 단백질육류 간편식
- 바다 단백질, 수산가공식품
- 집밥 부활, 조미·향신·소스
- 산지의 신선한 가공농산물
등의 7가지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세분화했다. 아마 독자 여러분들도 위의 7가지 분류에 대부분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2019년 말, 중국의 우한에서 발발한 COVID19는 2020년 초 우리나라로 급속히 전염 확산되어 사스나 메르스와는 다르게 엄청난 속도로 전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으면서 유례 없는 불안에 떨게 했었다. 특히 초반 각국 정부의 엇갈린 정책과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앞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와의 지루한 싸움 속에서 우리의 식생활 변화는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수년 간 탄수화물은 비만을 유발한다며 밥을 피하고 단백질과 지방 중심의 식사, 즉 육류 위주의 간편식 소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지만 미래가 불확실해지니 밥이 들어가 있는 간편식의 구매가 급격히 늘어났다. 즉 냉동볶음밥, 비빔 컵밥과 같은 종류의 간편식에 육류와 반찬류까지 함께 들어가 있는, 예컨대 ‘쇠고기 깍두기 볶음밥’과 같은 간편식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취업주부뿐 아니라 감염 우려로 장보기가 두려워진 전업주부들까지도 신선식품 구매를 위해 언제 배송될지도 모르는 온라인 식료품 구매보다 마켓컬리와 같은 새벽배송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렇게 새벽배송 시장이 열리면서 기존의 동네 마트나 쿠팡, 마켓컬리, 오아시스, 헬로네이쳐 등이 새벽배송 시장에서 더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하게 되었고 이러한 현상들로 인해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에서 빅데이터를 분석해 집밥 2.0 이라고 명명했을 것이다.
또한 새벽배송이 가져다 준 식생활의 변화는 애초 ‘간편함’과 ‘신선’이 주된 선택지라, ‘건강’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도 요리에 들이는 시간을 줄이고 적당한 수준의 맛을 내는 가정간편식(Home Meal Replacement, 이하 HMR)으로 한 끼 간편히 먹는 것에 만족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며 1년 넘게 이어지는 집콕 생활에서 HMR은 어쩌다 먹는 한끼가 아닌, 간편하면서도 신선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으며 요리하는 즐거움까지 갖춘 형태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에서 빅데이터를 분석한 또 다른 집밥 2.0인 ‘밀키트’(MealKit)이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건강에 해로운 음식으로 취급 받던 간편식의 위상이 코로나로 인해 엄청나게 바뀐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 시장은 앞으로 더 많은 변화를 겪을 것이 분명하다. 현재의 간편식 트렌드와 함께, 미래의 트렌드인 밀키트는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HMR 시장의 급성장에는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 증가 등으로 간편식 수요가 급증한 데다 최저임금, 임대료 인상 등으로 외식 물가가 급등하는 데 따른 반사이익도 있었다. 이와 함께 비대면을 요구하는 코로나19는 HMR을 앞세워 밀키트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밀키트에는 잘 손질된 신선 식품과 소스 등의 가공 식품이 들어가 있어 간편하면서도 갓 조리한 신선한 음식의 만족감을 준다. 그리고 소스 등이 미리 동봉되어 있어 맛에 있어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고, 비록 조리하는 행동이 따라야 하지만 재료 손질 등의 전 처리 과정이 필요 없다. 볶고, 굽고, 끓이는 등 조리 행동 중에서 가장 즐거운 행동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만큼 간단한 조리와 맛있게 먹는 과정엔 시간의 절약도 포함되어 있다는 이점 또한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집밥 2.0과 같은 트렌드는 포스트 코로나에도 유지될 것인가? 바뀐다면 어떻게 바뀔 것인가? 앞서의 가정 간편식이든 새벽배송에 의한 신선식품이든 일상 속의 배달 음식과 온라인으로 오로지 식욕만을 채운다고 과연 인간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조만간 해결되리라는 초반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코로나19 환경 속에서 위 7가지 트렌드에 맞는 집밥 2.0은 언제까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과거 사람들은 함께 밥을 먹으며 친분을 쌓아갔다. 사회생활 중 회식은 직장인들의 단합 혹은 의사소통에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지금은 코로나 등으로 인한 소통 부재로 여러 부작용이 예상되지만, 이제 소통보다는 안전이 우선인 시대를 살게 되었다. 코로나19는 음식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의 장이 되는 식당에서조차 4인 이하만 앉아 가림판을 사이에 두고 조용히 식사만 한 후 재빨리 마스크를 쓰고 퇴장하기를 강요(?)한다. 살아가는 데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국민 모두의 안전 앞에는 이견을 내놓을 수 없다.
식생활의 안전에 대한 또 다른 측면에서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먹거리 패러다임이 신선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적기적소에 유통해 안전한 소비를 촉진하는 ‘안전’ 측면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으며 취약 계층의 먹거리 접근성을 개선하는 부분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의 ‘안전’은 먹거리 품질 안전, 사회 안전 등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해석된다. 따라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먹거리와 관련한 정보가 충분히 해소되고 소비자가 신뢰하고 먹거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안전한 먹거리 패러다임’이 더욱 확장되어 ‘안심’의 단계로 전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포스트 코로나 시대, 먹거리 패러다임의 변화와 대응 P65~P66 재인용) 이 의견에 필자 역시 동의한다.
즉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생각은 국민들의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공급자들이나 정책 역할자들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안전을 바탕으로 국민 건강이 담보가 되어야 하기에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지난 7월, 제 5회 글로벌 푸드 트렌드 & 테크 컨퍼런스(GFTT2021)가 ‘The food for Life: 삶의 가치를 높이는 푸드테크 트렌드’를 주제로 개최되었다. 이 컨퍼런스에서 ‘약으로서의 음식’을 주제로 발표한 파르샤드 파니 마르바스티 박사는 ‘음식(먹거리)과 건강은 밀접한 영향이 있다.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의 발전으로 현대인의 암 발병률이 높아졌고, 세계 사망원인 1위인 심장대사 질환은 사망자의 45.4% 이상이 식이 요인을 원인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는 흡연보다도 더 높은 위험률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르바스티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음식(푸드)과 건강의 밀접한 영향은 학계에서도 끊임없이 연구되고 있다. 또한 전 세계 195개국의 식이 요인을 연구한 결과 견과류, 야채, 과일 등을 섞은 올바른 식단이 사망원인을 5분의 1로 줄일 수 있고, 식물성 기반의 식단이 간질 및 발작 증세의 50~60% 이상을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간편식이나 밀키트류 대부분이 초가공식품이란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기에 이 주장에 공감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추가적으로 마르바스티 박사는 ‘미국 가정식의 63% 이상이 가공 식품으로 이뤄져 있으며 식물 기반의 음식은 굉장히 비율이 적다.’ ‘소비자들의 식단이 가공 식품인 ‘프랑켄푸드(Franken-food)’가 아닌 과일이나 야채가 풍부한 ‘리얼푸드(Real food)’ 중심이 되려면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농업 및 산업계, 학계, 의학계 등과 협력하는 방법이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식품음료신문, 재인용)
문득 마르바스티 박사의 주장에서 한 때 유명했던 TV 드라마 ‘대장금’이 생각났다. 이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 장금이가 왕의 음식을 만들며 맛뿐 아니라 왕의 건강을 위해 수라간에서 우리의 오랜 전통인 한방과 음식의 조화에 대해 연구하는 장면이 많았다.
마르바스티 박사의 주장과 장기적인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초가공식품인 가정 간편식 혹은 밀키트의 미래 방향이 어디로 가야할지 정해진 듯하다. 마르바스티 박사의 주장이나 농촌경제연구원의 발표가 앞서 의문을 가졌던 ‘집밥 2.0이 포스트 코로나에도 유지될 것인가‘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이후 안전한 미래의 먹거리를 보장 받는 집밥 3.0, 혹은 또 다른 이름으로 명명될 다양한 음식의 진화는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예상을 뒷받침하는 것은 위드 코로나 시점에 미래의 트렌드를 주도할 MZ세대의 경우 음식과 건강의 연관성에 대해 그 어느 세대보다 많이 교육받은 세대로, 음식 브랜드에 ‘무엇이 없는지’보다 특정 재료가 들어있는지, 그 재료의 효능은 무엇인지에 더 관심을 가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관의 정책 담당자들이나 기업의 마케터들은 변화에 대비해 이러한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즉 앞으로의 소비자나 고객들은 건강한 정신, 건강한 신체, 건강한 아름다움 등 식품 선택 조건을 여러 유형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야 한다.
결국 ‘집밥’의 미래는 소박하게 어머니가 차려 주시던 밥상에서 벗어나 수많은 갈래로 변화해 갈 것이다. 이때 각종 기관이나 건강 분야의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의견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기업들은 소비자의 상황과 마음을 읽어내 정책을 개발하고, 상품을 업그레이드할 것이다. 그러나 기관이나 정책 개발자들은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기반 위에서 이 모든 과정을 출발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건강이 담보된 상태에서 안전한 먹거리를 섭취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며, 정책 개발자들이나 음식 제조업체 마케터들의 주장이나 마케팅 활동을 신뢰하며 즐기는 안심 ‘집밥’이 될 테니 말이다.
Gil Park님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을 모비인사이드가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