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전략 방향에 맞는지,
혹은 끊어져 있는 고리를 붙잡고 있는지
회사에서 이슈가 만들어지고 업무로 발전되는 원리가 있습니다. 업무가 회사에서 발전되는 철학 같은 것인데 현대 경영학의 논리가 배후에 깔려 있습니다. 대부분의 회사가 다 비슷하죠. 다른 회사를 다니는 친구끼리 모여도 비슷한 상황에 공감하는 데는 회사가 일을 추진하는 원리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무언가를 한 번에 만드는 법은 거의 없습니다. 회사가 일을 추진하는 철학에 맞게 일이 진행됩니다. 만약 회사를 다니면서 이런 원리를 모른다면 회사 돌아가는 것을 모르고 일하는 것이겠죠. 회의에 들어와서 일이 만들어지는 전제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한다면 사업 감각이 없거나 일을 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했던 전략 기획자로서 회사가 일을 만드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일하는 방법의 표준이 된 역설계
P&G의 A.G. 래플리(A.G.Lafley)와 모니터 그룹(Monitor Group)의 로저 마틴(Roger Martin)이 쓴 <Playing to win : 승리의 경영전략>이라는 책에서는 전통적인 일하는 방식과 현대 일하는 방식의 기반이 되는 ‘역설계(reverse engineering)’를 대조하며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통적 일하는 방식은 기업 구성원들의 동의를 생성하는 과정으로 일의 결과나 결과물을 받는 고객 입장과는 다소 무관한 공급자 관점의 일하는 순서를 그리고 있습니다. 먼저 많은 연구를 진행합니다. 연구 결과 시장에서 고객의 수요를 창출할 것 같은 옵션이 개발됩니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를 실행시킬 예산을 산정합니다. 예산 대비 예측된 수요가 너무 적다고 판단되면 수익성을 맞출 수 있는 판매 가능한 아이디어를 다시 생각합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돈이 되는 사업 아이디어가 나왔다면 지금까지 나온 내용을 정리한 기획안으로 주요 의사결정자들을 설득하고 합의를 도출합니다. 이 과정에서 나온 피드백을 참고로 사업 안이 몇 번은 수정되기도 합니다. 관리자들과의 합의를 마쳤다면 조직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에게 기안을 올리고 설득합니다. 여기까지 통과되면 조직 전체에 실행 방안을 공유하게 됩니다. 90년대 이전 기업에서 많이 진행했던 순서입니다. 시장이 양적 성장을 거두고 있었고 변화가 잦지 않은 상황에서는 문제 될 것이 없는 방법이었죠. 일하는 과정 중 중요한 것은 주요 관리자들과 합의가 되는 방안을 만드는 것이었고 이 프로세스에서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실무자의 아이디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요구되었습니다. 창조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기업들이 일하는 방법으로 채택하고 있는 ‘역설계’는 문제의 해결에 보다 초점을 맞추어 실무자들의 아이디어를 극대화하는 방안입니다. 먼저 연구부터 하는 게 아니라 최종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먼저 정의하는 것이죠. 대부분은 시장에서 고객의 새로운 수요입니다. 이 수요를 보는 많은 경쟁에서 우리가 어떤 구조를 갖추어 나아갈 수 있는지 세부적인 내용으로 문제가 정의됩니다. 정의된 문제는 처음부터 전담팀에서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몇 가지 대안으로 정리됩니다. 다만 대안이 달성되기 위한 조건을 명확히 하는 작업이 따릅니다. 그중 어떤 조건이 큰 장애물인지 정리하는데, 단순 브레인스토밍이 아닌 정확한 팩트에 의해 정리됩니다. 장애물이 되는 내용을 확인했다면 테스트를 거치게 됩니다. 가장 확신이 낮은 조건을 먼저 테스트하여 세운 가설을 검증합니다. 검증한 결과가 나오면 핵심 조건들을 비교하고 선택을 하는 것으로 사업 아이디어는 정리됩니다. 한 마디로 역설계는 문제부터 정의하고 대안을 가설로 만든 다음 테스트를 거쳐 선택을 합니다. 과학적인 방법입니다. 가설과 실험, 검증을 거친 해결 방안이 있죠. 실제 P&G는 화장품 브랜드 올레이(Olay)의 메스티지(하이엔드 브랜드와 매스 브랜드의 사이 포지셔닝. 고가 포지셔닝에 비해서는 가격이 합리적이지만 품질은 매스 브랜드보다 월등히 높은 세그먼트) 브랜딩 가능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다양한 가격으로 상품을 만들어 고객에게 테스트함으로써 매스티지 브랜드로서의 가능성을 검증했다고 합니다.
역설계를 통한 경영 철학은 계속해서 발전해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 디자인 컨설팅 기업 ‘IDEO’가 주장한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 경영 전략입니다. IDEO는 애플(Apple)과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마우스 및 PDA, 의자 등 각종 디자인 혁신을 성과로 일군 기업입니다. P&G, 펩시(Pepsi),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고객으로 있으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여러 공학자와 디자이너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사고는 기존 방식의 개선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의 방식입니다. 대중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닌 극단적인 소비자를 찾아 그들을 만족시킬 방법을 찾고 제품이 아닌 솔루션 자체를 제공하는 것에 주목합니다. 청바지를 슈퍼마켓에서 파는 방법을 생각하듯 기존 유통망이 아닌 새로운 유통망을 찾고 제휴할 파트너 업체를 물색합니다. 새로운 제품보다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에 주목하고 기업 전체 부서가 하나의 마케팅 부서처럼 움직이는 전사적 마케팅을 통해 기업 자체가 브랜딩이 되도록 합니다. 되도록 고객이 체험하게 하고 스토리텔링으로 고객에게 다가갑니다. 혁신적 디자인을 만드는 방법이죠. 하지만 디자인 방법론이 아닌 경영 방법론으로 더 많이 받아들여졌습니다.
특히 ‘어떻게(how)’ 만들 것인가에 대해 디자인 사고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즉시 실행에 옮기라고 말합니다. IDEO가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된 1999년 ABC 방송의 ‘나이트라인’ 프로그램의 “Deep Dive”라는 에피소드는 디자인 사고를 짧은 기간인 5일 만에 프로토 타입 시제품 쇼핑카트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이뤄진 작은 단위의 팀이 사무실 공간에서 혁신적 디자인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그 자리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엉성하지만 제품의 가이드라인이 될 형태를 바로 만들어보는 것이죠. 대부분 엄청난 제품 제작 기간을 가진 당시 기업들은 장난치듯 사람들이 모여 몇일만에 만든 새로운 디자인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IT 기업을 중심으로 회자되는 ‘애자일(Agile)’ 기업 문화죠. 폭포수(water-fall)가 떨어지듯 한 단계를 마쳐야 다음 단계로 연결되는 전통적인 엄정한 개발 프로세스가 아닌 최대한 빨리 결과물 비슷한 것을 만들고 거기서 수정하는 것. 캐주얼하지만 보다 더 고객 입장에서 만들 여지를 남기는 개발 방법, 그런 문화의 조직의 심벌 중 하나가 IDEO였다고 생각합니다.
IDEO는 ‘프로토타입(proto-type)’을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품뿐 아니라 IT 서비스도 가상의 공간인 온라인을 활용해 시제품을 먼저 만들어 보길 제안합니다. 일단 만들어 보고 고객의 반응을 통해 개선할 내용을 충분히 확보해서 경쟁자가 단시간에 따라오지 못할 고객 니즈 해결 방안을 적용합니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두고 서로 설전을 벌이는 연속된 회의나 없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상상하며 고객 조사를 하는 기존 포커스 그룹 인터뷰(Focus Group Intervew)에 비해 시간을 단축하면서 실제적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오프라인 리테일을 하는 기업이라면 팝업 스토어(pop-up store)를 열어 고객의 반응을 미리 보고 정식 매장을 오픈하기 전에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적용할 수 있습니다. 게임은 오픈 베타 테스트를 통해 유저들이 접할 복잡성을 미리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 과학자는 A/B 테스트를 통해 더 높은 반응률을 보이는 UX 설계를 검증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상품은 어차피 매출이 적은 비수기에 몇 개 채널을 통해서만 판매하면서 브랜딩을 해치지 않으면서 고객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
글로벌 패션 기업 ‘자라(ZARA)’는 프로토타입을 비즈니스 전면에 적용한 사례입니다. 처음부터 많은 재고를 만들어서 패션 트렌드와 맞지 않아 손해를 보는 전통적인 패션 기업과 달리 자라는 일정 기간 매장을 유지할 수준의 재고만 먼저 만들어 고객 반응을 테스트해서 매장 입고 후 초반 반응이 좋은 상품만 선별하여 많은 양의 재고를 생산합니다. 재고율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방법이죠. 새로 생산 지시를 내리면 3~6주 정도의 기간 내로 세계 매장에 상품을 출고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생산 인프라의 도움이 크지만 매장 전체를 프로토 타입으로 생각한 발상의 전환 자체가 오늘날 자라의 성공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라의 ‘아만시오 오르테가(Amancio Ortega Gaona)’ 창업주는 한때 세계 2위의 부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회의에 들어가거나 클라이언트나 상사와 업무에 관한 영역을 정할 때 혹은 분석할 요건을 정의할 때 해결하고자 하는 결과물의 형태, 목적, 고객을 처음부터 명확하게 정의해두지 않으면 힘들게 일하고서 무엇을 위해 일했는지 모르는 허탈감에 빠진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또 오랜 기간 연구를 거듭한 끝에 제대로 된 고객 피드백 한 번 받아보지도 못하고 덮어버린 프로젝트를 마주한 적도 있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결과를 정의하고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시장 반응을 보고 의사 결정하는 방식을 채택했다면 달라질 수도 있었던 상황들입니다.
한눈에 볼 수 있는 회사의 철학
실무적으로 하나의 업무를 어떤 프로세스를 통해 얻느냐가 역설계 혹은 디자인 사고의 정신이라면 그것 전체를 움직이는 것은 기업의 분명한 경영 철학일 것입니다. 기업은 큰 의사결정을 할 때 정체성에 맞는 철학은 대부분 고수합니다. 예를 들면 사람은 어딜 가든 파레토 법칙의 영향을 받아 성과를 내고 우열을 가려 관리자를 많이 만드는 것이 인사 철학에 있는 기업이라면 시대가 변해도 상대 평가를 추종합니다. 싼 값으로 가성비를 내는 것이 시장에 대한 사명이라고 주장하는 기업이 있다면 의사결정을 내리는 철학은 항상 낮은 원가 구조를 만드는 것일 겁니다. 매년 다른 이름으로 전략의 모습은 바뀔 수 있지만 그것을 만드는 기업의 정신은 보통 같습니다. 공간을 넘어선 새로운 기술이 기업의 목표라면 지금도 많은 비용을 들여 온오프라인의 많은 데이터를 수집해서 온디맨드(on-demand) 서비스를 만드는 의사결정을 각론으로 내리고 있을 것입니다. 기업의 철학은 그래서 기업 구성원이 모두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업 철학과 맞지 않는 의견을 말하는 것은 곧 회사와 맞지 않는 사람임을 자임하는 일입니다. 회사의 철학은 어떻게 정리해 볼 수 있을까요?
아마존의 플라이휠(Fly-wheel)은 마치 ‘아이언맨’의 아크 원자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오늘날 제국을 이룬 아마존이 어떻게 무한한 성장의 동력을 얻을 수 있었는지 설명하는 아크 원자로입니다.
플라이휠은 아마존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장’이 어떻게 달성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일단 낮은 비용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낮은 비용 구조가 낮은 판매 가격을 고객 경험으로 창출하고 방문자 수가 점점 늘어나게 됩니다. 늘어난 방문자에 판매자가 몰리게 되고 제품의 종류는 계속 증가합니다. 제품의 증가로 고객은 더 높은 수준의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아마존의 플라이휠은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인 것이죠.
아일랜드의 저가 항공사(LCC) 라이언에어(Ryanair)는 불친절한 서비스로 악명이 높습니다. 처참한 고객 경험과 관련된 뉴스가 자주 있는 항공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언에어는 2018년도 창사이래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심지어 유럽에서 2018년도 1억 3천9백만 명이라는 가장 많은 승객을 실어 나른 항공사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자리도 좁고 시끄러운 비행기에 승무원들에 대한 불만, 더러운 항공기에 대한 지적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항공사의 성공은 다소 의아할 수 있지만 철저히 저렴한 항공료로 고객을 모으고 있습니다. 항공사의 아마존이죠.
라이언에어도 아마존의 플라이휠처럼 비즈니스 모델을 그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공정한 가격을 제시한다는 명성이 있죠. 저렴하다고 생각되는 항공료는 많은 고객을 모으고 공급 업체를 대상으로 높은 협상력을 갖게 만듭니다. 항공사를 유지하는 고정비용을 더 낮출 수 있죠. 낮춘 고정비용은 더 저렴한 항공료로 돌아옵니다. 플라이휠처럼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잘 되는 기업은 이런 연결이 원활하게 맞물려 갑니다.
최근 경영을 배울 때 대부분 다루는 아마존의 플라이휠은 사실 어떤 기업이든 갖고 있어야 할 내용입니다. 기업의 사명, 철학을 도식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큰 전략을 플라이휠로 정리해봅시다. 이것을 그릴 줄 안다면 회사의 방침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며 전략적 사고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기업의 플라이휠을 그릴 수 없거나 한 부분에서 막혔다면 기업의 전략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하거나 현재 기업이 위기 상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플라이휠을 통한 성장의 궤도가 연결되기 위해 무엇을 넣을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회사에서 전략기획들이나 사업기획들이 흔히 고민하는 영역이기 때문이죠. 한 고리만 끊겨 있어도 답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고 만약 연결은 되어 있으나 현재 실적이 그렇지 못하다면 이 중 하나의 원리(node)가 크게 망가져 있다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제안할 내용은 이 망가지는 것을 다른 프로그램으로 교체하는 기획이죠. 이것을 제안하고 실행하면 일을 잘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는 방식이 앞서 말씀드린 역설계 혹은 디자인 사고로 불리는 지금의 의사결정 방식인 것이죠.
지금 어느 판 위에서 일하고 있습니까? 회사의 전략 방향에 맞는지, 혹은 끊어져 있는 고리를 붙잡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세부적으로 일할 때 일을 만들고 제안하는 프로세스가 잘못되어 있다면 바꾸어 봅시다. 기획자들이 기획하는 방식을 내 업무에 적용해본다면 퍼포먼스 자체가 달라질 것입니다.
PETER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