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에서도 성공과 실패가 있다. 성공은 연봉도 올리고, 기존 회사보다 더 높은 수준의 회사로 가야 한다고 한다. 둘 다 안된다고 하면, 더 높은 직위, 직책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그럼, 셋 다 안되면, 무엇을 성공과 실패의 기준으로 가져가야 할까? 결론만 말하면, 성공은 없다. 실패만 있다. 그래서, ‘실패만 잘 피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실패에 대해 참고해야 한다. |
우리는 이직에 실패했다고 착각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실패한 이직]
– 연봉이 동일하거나, 하락했다
– 생각보다 연봉을 높여 받지 못했다
– 원하는 사람과 일을 못하게 됐다
– 괜찮은 리더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 나를 보호해 줄 내부의 누군가가 실제로 해주지 않았다
– 생각했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사업 방향 전환 등)
하지만, 이러한 예시는 ‘실패의 축‘에도 들지 못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위와 같은 (작은) 실패는 이미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실패는 적어도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서 “와… 어떻게….”라는 반응이 나와야 그게 진짜 실패다. 도저히 복구할 수 없는 어떤 잘못된 선택 혹은 결정 등을 지칭하는 대명사 같은 말이 아니다. 뜻대로 안 되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모두 실패가 아니다.
예를 들어, (1) 사업을 하다 망해서 수억의 빚을 지거나, (2)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치는 일을 해서 해고도 모자라 해당 업계에 소문이 다 퍼져 회생할 수 없거나, (3) 너무나 빠르게 올라간 나머지 더 이상 오를 자리가 없어 지금의 자리를 대체할 만한 또 다른 자리를 못 찾아 막막하거나 말이다. 참고로 위의 세 종류와 유사한 다소 갑갑한 실패를 모두 겪었다. 그래도 잘 살고 있다. 그럼, 적어도 실패한 인생은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반적 실패라면 낙담하지 말자. 한숨 한번 푹 쉬고, 지금 하는 일에 매진하자. 나뿐 아니라, 실패 같은 시행착오의 경험은 누구나 대부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라도 위안을 삼을 필요가 있다.
이전으로 충분히 되돌릴 수 있다면, 이전 상황 및 상태로 원상복구가 가능하다면, 실패보다는 시행착오라고 봐야 한다.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넘어야 하는 산 또는 일시적인 후퇴라는 뜻이다. 그러니 가뿐하게 넘어주고, 다음을 위해 기꺼이 물러나 주는 것이다. |
위와 같이 실패라고 보이는 경우에도 얼마든지 돌파구는 있다.
⑴ 회사 또는 부서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된다. 이것이 좌절된다면, ⑵ 지금의 자리에서 또 다른 가치를 만들면 된다. 그 가치는 ⑶ 다음 행선지로 가는 선택에서 협상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상태에 가기 위한 노력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실력을 확실히 뽐낼 수 있거나, 누구나 인정할만한 ‘나만의 무기’를 보여주고 증명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 얼마든지 지금보다 성장한 모습을 내/외적으로 갖추고, 갖출 만한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긍정적 성격에 낙천주의자여서 좋지 않은 기억을 쉽게 잊거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단단한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진 이들이나 가능하다.
그래서, 평범한 우리 같은 이에게는 ‘그 선택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라고 한다. 거기서부터 진짜 ‘반성’이 시작되고, 이로 인해 다음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실수의 원흉은 대부분 ‘무지와 착각‘에서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과정에서 또 하나 깨닫는다. 진짜 실패는 따로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 알 수 있게 된다. 아직은 확실한 실패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진짜 실패한 이직 5가지 경우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하여
성공한 이직은 ‘스스로 가진 확신이 얼마나 되는 선택‘이었고, 그 확신을 현실로 얼마나 구현(재현)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따라서 어떤 선택이 성공으로 이끄는 지름길이 될 수는 있지만, 선택 이후에도 선택 이전과 같거나 그 이상의 노력이 계속되어야 진짜 성공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실패한 이직은 스스로가 가진 확신보다는 타인과 환경이 주는 것에 과하게 혹하거나,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할 때 더욱 많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그 기회를 잘 살려 해당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기보다는 선택만으로 충분하다고 해결되었다고 안심하기 때문이다.
Case#1. 커리어상 목적 및 목표 없이 연봉, 처우만을 기준으로 하는 이직
가장 일반적인 이직이다. 무언가 이직을 해야 하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하고, 말 그대로 그냥 이직하는 것이다. 더 좋은 연봉, 처우 등을 제공 주겠다는 곳이 마침 나타나는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그걸로 일종의 Job Jump up을 감행한다.
이때 일은 거의 그대로고 연봉만 높아졌을 경우에는 당장의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종의 ‘회사의 아우라–상향평준화‘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도 (크게) 바뀌고 연봉도 높아졌을 경우에는 문제가 생긴다. 생각했던 바와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넓어진 책임 영역에 따라 해야 하는 업무도 다양해지면서 원치 않는 커리어를 걷게 될 수도 있다.
Case#2. 현재 다니는 회사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직
벗어나고 싶은 이유는 제각각이다. 사람, 하고 있는 일, 모든 것이 싫어진 것이다. 그래서 또 다른 직장을 찾아간다. 기왕이면 더 좋은 연봉을 줄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고, 현재까지의 경력을 살릴 수 있으면 충분하다. 일했던 영역과 조금 달라도 괜찮다고 한다. 그냥 ‘여기만 아니면 된다‘라고 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더욱 다양한 예기치 못한 유혹에 자연스럽게 노출될 수 있다. 갑작스럽게 일해 본 적이 없던 시장 및 업계에서 일을 하거나, 뜻하지 않게 창업의 길을 걷기도 한다. 문제는 그 선택의 후폭풍에 따르는 모든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 운이 좋아 ‘천직‘을 만난다면 좋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천운’을 타고나야 한다. 자신의 운을 시험해보고 싶다면, 해도 된다. 이런 경로는 어디까지나 실력보다는 운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운명을 걸고 말이다.
Case#3. 업황, 전망 등을 고려하지 않고 하는 이직
이직을 할 때 내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인식이 오로지 직장 또는 그 속의 내 자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만다. 업황이 좋아야 내가 속한 조직이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음을 고려해 그 속의 적절한 자기 자리를 찾는데, 그러질 못한다.
업계는 하나 혹은 여러 시장을 담고 있거나, 다각도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해당 네트워크를 타고 계속 움직일 수 있다. 하나 혹은 서너 가지 직무를 통해 관련 업계 모두를 정복하는 커리어를 걷는 이들도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때 ‘업황‘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회사 그리고 그 속의 구성원은 시장의 성장에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능력 있는 부모가 유복한 환경을 만들어 좋은 아이를 길러내듯이,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시장일수록 그 성장에 대한 수혜를 조직도 개인도 모두 받게 되어있다.
Case#4. 매너리즘에 빠지고 싶지 않겠다는 이유로 하는 이직
예전에는 3, 7, 11년 혹은, 요즘에는 2, 5, 8년 등 이직하는 데 있어 적절한 ‘남들이 이야기하는 평균’에 맞춰 옮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말하는 이유는 대체로 비슷한 뉘앙스다. 바로 ‘매너리즘‘이다. 그럼 그걸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둔감한 것인가.
매너리즘은 기간에 관계없이 온다. 경우에 따라 싫증이 빨리 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냥 온 것 같으면, 왔으면 다짜고짜 옮기려는 선택을 하기보다는 스스로 왜 매너리즘이 왔다고 보는지에 대하여 분석을 해봐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접근보다는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더 많이 보인다. 그걸로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벗어나고만‘ 싶어 한다. 그렇게 더욱 문제를 최악으로 몰고 간다.
Case#5. 주변의 여러 ‘꼬드김’에 넘어가 하는 이직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고, 운명처럼 그 기회가 자신에게 왔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회를 주변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제시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전혀 아니다. 왜냐하면, 사회는 그런 좋은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꼬드김에는 뭔가 꿍꿍이가 늘 있고 그걸 역이용할 수 없다면, 잡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그러한 꼬드김에는 늘 달콤함 뒤에 씁쓸함이 있다. 뭔가 뜻하지 않게 무리를 해야 하거나,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길을 걸어야 할 수도 있다.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그걸 알아보는 눈도 충분하지 않다. 안타깝게도 주변에 물어보는 습관조차 없다면, 최악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누군가 나를 끌어주는 줄 알고 믿고 갔지만, 가자마자 뒤통수를 맞는 일이 허다하다. 문제는 그 위치는 금세 바꿀 수 있지만, 그렇게 얻은 배신감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그 경험을 잊거나 지우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이직은 선택에 불과하지만,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선택만으로도 좋은 결과‘를 갖고 오는 것은 대부분 ‘운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반복하지 못하고, 연속성을 띠지 못한다. 그럼 다음에 다시 재현할 수 없으니, 진짜 성공이라고 볼 수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성공에 초점을 맞추기 이전에 실패 혹은 실패를 만드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파악하여 사전에 확실히 차단할 필요가 있다.
이직도 마찬가지다. 이직을 하는 이유(원인)가 무엇이고, 그것이 얼마나 내가 그리는 커리어(목적–방향에 따른 연속성, 지속성 등)에 입각한 선택이었는가에 따라, 내 의지가 얼마나 반영되고, 선택 이후에도 그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모습 속에 에너지가 다르다. 그걸 확실히 갖고 선택하고 출발하면, 당연히 성공 가능성은 늘어나고, 실패 가능성은 점차 줄어든다.
따라서 이직을 하는 것은 내 커리어의 실패 가능성을 줄이고, 반대로 원하는 지속 가능성(성장성)을 높게 갖기 위함이다. 또한 내가 제어 및 관리 가능한 성공의 길로 나를 인도하기 위한 첫 단추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 선택으로 모든 게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면 가장 큰 오산이다.
예를 들어 운이 좋게 거대한 기업으로 가게 된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그곳에서 그들의 룰에 따라 생존을 위한 새로운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룰이 적용되기 때문에 적응을 통한 생존과 성장의 게임은 새롭게 시작되었다. 도리어 리스크는 몇 배로 커진지도 모른다. 그냥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그걸 이어가는 힘은 순간의 선택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하려는 평소의 노력이다.
따라서 이직에 충동적이지 않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는 ‘(1) 어차피 내가 해야 하는 일을 결정하는 일‘이고, 그걸로 ‘(2) 점차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첫 단추를 꿰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표면적으로 ‘(3) 전보다 내가 나아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고려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무엇보다 조심해야 할 것은 ‘충동적‘으로 결정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위의 다섯 가지 경우 모두 ‘충동적인 결정‘에서부터 모든 문제가 발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간단하지만, 의외로 우리는 어떤 중요한 결정을 근거 없는 자신감 혹은 뜻 모를 접근으로 스스로 운명의 장난 같은 선택을 하며 스스로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조심해야 할 것이 ‘이직’이다.
이직스쿨 김영학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