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들은 다 비슷하다”
초기 스타트업의 CEO들은 비슷한 특징이 있다. 창업하는 사람들이 대개 성향도 비슷하고 겪게 되는 과정도 비슷하므로 공통된 행동 양식을 보이는 것인데, 수백 명의 창업가들을 만나다 보니 이제 나는 익숙해졌다. 하지만 아직 주변에는 CEO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하면 CEO를 싫어하고 욕한다. 도저히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면서 회사를 나가기도 한다. 만약 CEO라는 자리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했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CEO도 강점이 있고, 약점도 있다. 약점은 동료가 보완해주면 된다. 하지만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보완해줄 생각도 들지 않는다.
CEO들은 왜 그렇게 되는가? 를 논하기 전에 그들이 어떤 특징이 있는지 풀어본다. 크게는 세 가지 정도만 적었다. 부디 CEO를 이해하고 그들의 약점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며,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글을 쓴다.
글의 후미에는 CEO가 직원들에게 갖게 되는 편견과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풀어보고 싶다. 팀원도 대표를 이해하고, 대표도 팀원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겪는 수많은 문제들은 사람 개개인 탓이 아니라 그 상황이라면 누구든 겪게 되는 것들이다. 그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만 알아도 서로의 오해가 많이 풀린다.
< CEO들의 특징 >
1. 대표들은 자꾸 지시대명사를 쓴다
2. 대표들은 자꾸 안 되는 걸 하자고 한다
3. 대표들은 자꾸 어디서 아이디어를 가져온다
< CEO와 공유하고 싶은 마인드셋 >
1. 사람은 변한다
2. 당사자에게 듣기 전까지는 모두 추측이다
3.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1. 대표들은 자꾸 지시대명사를 쓴다
대표 : “그거 어떻게 됐어?” 나 : “그거요? 어떤 거요?” 대표 : “그때 냈던 거 있잖아. PPT” 나 : “R&D 과제 발표자료요?” 대표 : “아니, 내가 어제 말했던 거” 나 : “????????” |
세상엔 많은 직무가 있다. 달리 말하자면 누군가가 자기 커리어를 갈아 넣어서 전문적으로 가다듬을 만한 영역이 수없이 많다는 얘기다. 대표는 그 대부분의 영역을 하나하나 꼼꼼히 뜯어보고 챙겨야 하는 자리에 있다. 마케팅은 어떻게 되는지, 개발은 어떤 단계인지, 자금이나 재무 상태가 어떤지, 전략적으로 다음 사업을 어디로 가야 하는지 등 신경쓸 게 수없이 많다.
게다가 회사의 대표이기 때문에 협력업체든, 클라이언트든 뭐든 누구를 만난다 하면 대개 대표가 가야 한다. 외부 미팅도 수없이 많은데 회사 내부에도 대표의 컨펌을 기다리는 수많은 안건들이 산재되어 있다. 그러니 대표는 한 업무에 몰입해서 집중할 시간이 부족하고, 파편화된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어떤 사안을 떠올렸을 때 바로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기가 힘들다. 이전까지 어떤 삶을 살았건, 대표를 처음 해본다면 더더욱 그렇게 된다. 팀원에게 정확하게 말해주고 싶어도 뇌가 이미 과부하가 걸려있으니 제대로 된 단어 대신 ‘이거, 그거, 저거’가 먼저 나오는 것이다.
대표에게 일을 잘 컨펌받고, 진행시키려면 이러한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본래 업무 방법론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일을 요청할 때에도 배경과 맥락을 설명하고, 결과물 수준이나 납기 등을 먼저 말해준다. 하지만 대표 일을 하다 보면 그게 잘 안 된다. 까먹고 말을 안 하거나, 신경 쓸 여력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을 받는 입장에서, 그가 놓칠 만한 부분을 먼저 짚어서 확인해주는 게 필요하다.
또한 업무 현황들은 어떤가? 대표는 수십 가지 일을 동시에 챙기고 있다. 일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일을 위한 일이다. 그러니 팀원 입장에서 대표가 먼저 신경 쓰고 물어보기 전에 미리 현황을 공유해주는 게 좋다. 대표가 물어보지 않는다고 해서 보고를 안 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대표는 지금 수십 가지 현안의 수백 가지 문서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는 걸 알아줘야 한다.
2. 대표들은 자꾸 안 되는 걸 하자고 한다
대표 : “이거 다음 주까지 끝낼 수 있지?” 나 : “엥? 이걸 어떻게 다음 주까지 해요. 지금 리소스가 너무 부족해요” 대표 : “이거 다음 주까지 해야 다른 영업 건도 따낼 수 있어. 이거 진짜 무조건 해야 해” 나 :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지금 이것도 하고 있고, 저것도 하고 있고…” 대표 : “괜찮아 할 수 있어. 지금 하고 있는 거 뭔데, 봐봐” |
대표들은 항상 말도 안 되는 걸 하자고 한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지금 여력에서 시간도 안 되고, 다른 할 일도 이미 산더미처럼 많고, 두 마리 토끼는커녕 열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고 하니 정작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대표는 하자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창업가와 일반인의 사고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이해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창업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제정신이 박혀 있는가? 대부분의 사업이 기존에 경쟁사가 즐비하고, 그들에 비하면 자원도 없고, 시장에 없던 걸 자꾸 만들자고 하는데, 대체 누가 창업을 하는가?
창업가라는 것 자체가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주어진 조건 안에서’ 행동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정해진 룰과 주어진 자원(시간, 노력, 돈 등) 안에서만 생각한다. 그래서 주어진 조건에서 감당할 수 없는 리스크에는 쉽게 배팅하지 않는다.
반면 창업가는 남들이 생각 못하는 말도 안 되는 ‘목표를 먼저‘ 설정한다. 그러고 나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자원을 가져다 붙일 방법을 찾는다. 완전히 거꾸로 생각하는 것이다. 애초에 지금 조건 속에서는 불가능한데 일단 목표를 정하고 방법을 찾으니 남들 눈에는 어거지 부리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신사업을 하자고 한다. 그런데 그쪽 기술 개발에 필요한 사람도 없고, 해본 적도 없고, 지금 돈도 없다. 실무자들은 당연히 안 된다고 하는데 대표는 다르게 생각한다. 다음 주에 그쪽 기술 개발자를 소개받는 미팅을 잡고, 해당 산업의 선두주자에게 제안서 만들어가서 협력을 제안한 다음, 투자사에 가서 그 내용으로 자금 조달을 협상한다. 그 성과들이 하나씩 빌드업되면 개발자 꼬실 때 우리 회사의 매력 포인트로 쓴다. 이런 식이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게 창업가의 역량이다. 그거 하라고 대표가 있는 거다. 정해진 룰 안에서만 생각하면 답이 없다. 룰을 비틀고 허점을 찾아내고 새로운 룰을 제시해서 협상해내고 빌드업하는 게 CEO의 역량 중 하나다.
또한 납기를 당기고, 더욱 도전적인 목표를 제시하는 것 또한 대표의 역할이다. 도저히 그 시간까지 안 될 거 같은 일이라는 걸 대표들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납기를 타이트하게 잡는다. 왜냐하면 그렇게라도 해야 절반이라도 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CEO들이 마냥 어거지 부리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 또한 경영 기법인 것이다.
만약 이런 특징을 알고 있다면 CEO들의 주장들을 무작정 깎아내리고 반발하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안 되는 걸 되게 만드려고 노력하는 것도 정말 합리적으로 말이 되는 범위가 있고, 완전히 잘못된 경우도 있다. 하나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엉뚱한 걸 되게 만드느라 망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까 요지는 대표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더라도, 그게 그들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며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 중에 하나라는 걸 인지하고 있자는 거다.
어느 회사를 가든 대표 욕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창업을 한 번이라도 해봤으면 그런 말은 못 할 것이다.
3. 대표들은 자꾸 어디서 아이디어를 가져온다
대표 : “이거 요즘 유행한다던데 한 번 써볼까?” 나 : “이건 또 무슨 툴이에요? 굳이 필요 없을 거 같은데…” |
대표 : “아,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는데 이 기능을 추가하면 어떨까?” 나 : “…? 이 기능을 넣으려는 이유가 뭔데요? 목적이 뭐예요?” 대표 : “~하면 불편하니까 이 기능을 넣으면 UX가 훨씬 편하잖아” 나 : “그 UX문제 때문이면 이 기능 말고 ~를 활용하는 게… 아니, 것보다 자꾸 기능이 막 추가되면…” |
대표님들은 또 아이디어가 많다. 특히 스타트업은 일반적인 중소기업과 다르게 혁신적인 방법을 찾는다. 그냥 생계유지를 위해 창업하는 게 아니라 더 큰 임팩트를 내고 싶어서 창업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검증된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본능적으로 항상 새로운 방식을 찾는다.
창업을 한다는 것부터가 대표의 시각에서 포착한 시장 기회를 바탕으로 어떠한 솔루션, 아이디어를 발굴해낸 것이기 때문에 대표들은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고, 항상 방법을 찾아내려 한다. 그래서 생기는 문제가 ‘솔루션’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좋은 솔루션은 어떻게 나오는가? 흔히 하는 말로, 시장에 통하는 솔루션을 찾으려면 고객의 Pain Point를 찾으라고들 한다. 그 문제를 해결해주며 구매 니즈에도 딱 맞는 솔루션을 찾는다면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은 셈이다. 즉, 해결하려는 문제가 뭔지, 만족시키려는 니즈가 뭔지가 되게 중요하다.
대표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대표 자리를 맡으면 자꾸만 문제가 뭔지보단 본인도 모르게 솔루션부터 찾게 된다. 직원이 많아질수록 더더욱 그러한데, 대표가 찾아내는 솔루션들이 회사와 사업의 방향성이 되고 이는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대표들은 어떻게든 솔루션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자꾸 내놓게 된다.
실무자들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일에는 우선순위라는 게 있고 업무량도 한계가 있는데, 자꾸 어디서 아이디어들을 가져온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실무자 입장에서도 답답하니까 매번 ‘안 된다‘고만 얘기하게 되고, 여기에 대표는 또 상처 받는다. 매번 안 된다고만 하는 실무자가 밉다.
그래서 서로의 입장 차이를 잘 이해해야 한다. 대표는 대표 자리에 있으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다는 걸 스스로도 알아야 하고, 동료들도 이해해줄 필요가 있다. 반대로 대표도 실무자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아야 되겠다. 최대한 CEO의 아이디어와 의견들이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들려도 다시 한번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고, 되게 만들 방법이 없는지 찾는 것 또한 팀원의 역할이다.
CEO의 마인드셋
CEO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직원도 모르고, 심지어 대표 자신조차 잘 모른다면 오해와 갈등이 쌓인다. 그래서 창업가들은 창업 과정에서 끊임없이 사람에게 실망하고, 상처 받고, 배신감 느낀다. 직원들이라고 다를까, 똑같다.
그래서 바른 방향을 찾는 게 중요하다. 최근 들어 나는 ‘가치관’이라는 게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무기라는 걸 느낀다. 특정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앞서 직원들이 CEO에 대해 어떻게 오해하고 벽을 쌓게 되는지 풀어보았다면, 이번에는 CEO들이 사람에게서 어떻게 상처 받고 벽을 쌓는지 보고자 한다.
< 흔한 창업 스토리 > 창업 초기 멤버들과 으쌰으쌰하며 CEO는 그들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한다. 하지만 업무적으로 CEO가 보기에는 동료들이 조금만 더 책임감 있게 해줬으면 싶은데 아쉬운 점이 눈에 들어오고, 조금 더 퀄리티 기준을 높였으면 좋겠는데 부족한 부분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회사가 커지고, 직원이 늘어나니 더더욱 아쉬운 마음이 커진다. 심지어 한 달에 말 한두 마디도 제대로 안 나누는 직원까지 생기면서 거리가 멀어지니, 동시에 불신도 커진다. 회사의 정보들도 너무 많아져서 대표가 도저히 다 파악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그 과정에서 사람에게 실망하고, 상처 받고 의심한다. 그렇게 감시와 처벌에 더 익숙해진다. |
조직을 경영하며 대표가 가장 쉽게 빠지는 유혹이 무엇인가? 단연 ‘사람은 안 변해‘라는 유혹일 것이다. 아무리 말하고 피드백해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아무리 자신의 좋은 의도를 설명하고 맞춰줘도 회사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직원들에게 실망하면서 사람을 포기하게 된다.
종래에는 모든 해결책이 ‘입퇴사‘로 결부된다. 애초에 좋은 사람을 뽑는 것밖에 답이 없고, 바뀌지 않을 사람들은 빨리 내보내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안에서 달래고 키워봤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에 너무 아웃풋이 나오지 않으니까 입퇴사에만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회사는 직원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직원들은 사측과 자신들을 구분하여 벽을 짓고 불평불만을 키운다. 경영진이 자신을 안 좋게 볼지 모른다는 불안이 생기고 심리적 안전이 깨진다. 벽이 생기면 회사가 하는 일에도 공감을 못하고 관심이 줄어들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업무량, 야근, 고통들을 납득하지 못하게 되어 번아웃까지 온다. 이런 것들은 작은 생각의 씨앗에서 출발하곤 한다.
그래서 믿어야 한다.
1. 사람은 변한다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변한다고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안 변한다는 걸 전제로 두는 순간 사람에게 들이는 대부분의 노력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지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에 대한 기대와 노력을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게 티가 안 날 거라고 생각하지만 작은 말과 행동에서 전부 드러난다. 자기만 모른다.
사람이 변한다고 믿어야 조직 내부에서 하는 경영 활동들이 의미가 있어진다. 사람이 안 변한다고 믿는 건 조직 관리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어차피 사람이 안 변하는데 그냥 알아서 잘하는 사람 뽑아놓으면 될 일이지, 이미 뽑아놓은 사람들이 더 잘할 수 있게 뭘 더 노력한단 말인가?
그리고 사람은 실제로 변한다. 그 자체는 쉽게 변하지 않지만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다. 교실에서 손 들고 질문하라고 하면 아무도 안 하지만 포스트잇 나눠주고 궁금한 거 적으라 하면 다들 적는다. 단지 제도와 시스템이 그들의 행동을 끌어내기에 적절치 못했던 것뿐이다. 경영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드러난 현상과 구조, 체계를 먼저 바꾸려고 하면 해결책이 보인다.
(참고)
2. 당사자에게 듣기 전까지는 모두 추측이다
경영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자신의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 된다. 회사가 커질수록 더더욱 CEO의 말과 행동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작은 말에도 크게 생각하고, 별 거 아닌 행동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사람이 늘어나고 대표와 각 직원 간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점점 더 그렇다.
그래서 CEO들은 직원들이 대체 왜 그러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여, 왜 그러는지 추측하고, 오해하고, 또 상처 받는다.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반복된다. 심지어 직원이 많아져서 직원들과 대화할 시간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오해는 더욱 커진다. 서로가 서로를 억측하고 호도한다.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둘 다 충분히 납득되고 이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오해와 불신이 생기면서 벽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회사가 커질수록 의식적으로 ‘추측‘을 막아야 한다. 내 머릿속에서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추측하려고 하는 본능을 억지로 억눌러야 한다.
굉장한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무의식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하게 되니까 그렇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상대방을 오해하고, 억측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의 내면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어렵고 자시고를 떠나서 그렇게 해야만 한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경영 역량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대신 바른 방법으로 상대방의 생각을 물어보고, 상황을 파악하고, 감정을 잘 통제하며 자기 생각을 상대방에게 표현하는 방식을 연습해야 할 것이다.
가치판단 내리기 전에 상황파악부터 하자.
3.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전부 티가 난다. 작은 선택을 내릴 때 그 선택에 담긴 의도와 생각들이 드러난다. 이렇게 생각하면 편하다. 회사가 커질수록 대표의 몸집이 커진다. 사람 두 배, 세 배, 그 이상으로 계속 커져서 대표가 작은 숨소리만 내어도 직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굉장히 크게 느껴진다. 대표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거인이 되어버린다. 직원들은 대표의 작은 말과 행동을 수십, 수백 배는 크게 받아들이고 착각한다.
그래서 대표도 성장해야 한다. 창업 단계에 따라 필요한 대표의 모습도 달라진다. 대표가 변하지 않으면 무슨 제도를 들여와도 소용이 없다. 대표의 말 한 마디면 제도나 규칙, 문화도 전부 대박살나기 때문이다. 서로 신뢰하고 심리적 안전을 갖추고 뭐시고 하다가도, 대표가 “근데 진짜 안 놀고 일한 거 맞아?”하고 한 마디라도 장난 삼아 던지는 순간 대표가 직원들을 의심하고 불신한다는 소문이 생기고 직원들은 자기 업무를 증명해야 한다고 느끼며 대표가 완전한 사측이자 직원들을 감시하는 존재로 여겨지게 된다. 모든 게 다 어그러진다.
진심으로 가치관을 가다듬고, 그렇게 믿고 행동해야 한다. 안 그러면 소용이 없다.
마무리하며…
대부분의 갈등은 오해와 불신에서 생긴다. 정말 또라이같은 사람은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많지 않다. 어느 조직을 가든 대개 표준정규분포를 따른다. 즉, 상대방의 생각이나 입장을 고려했을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해하려 하지 않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창업가라는 게 세상에 많은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면 더더욱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람들은 가끔 상대방을 이해하는 걸 배려라고 착각한다.”
내가 상대방을 이해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건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이로운 일이다. 스타트업에 다니면서 스타트업의 특징도 제대로 모르거나, CEO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탓에 “겪지 않았어도 되었을”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세상에 무엇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무엇이 부자연스러운지를 아는 건 중요하다. 사회초년생들이 직장 생활을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직장생활이라는 게 원래 이런가?”의 기준이 없어서다. 그들이 느끼는 문제의식 중 많은 부분은 ‘당연한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유별나게 느끼는 것들이다. 업무 방법론만 놓고 봐도 그렇다. 남한테 일을 요청할 때 자기가 언제까지 달라고 말해놓지 않고서, 상대방이 늦게 준다고 욕하고 일 못한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가 일 줄 때 똑바로 안 줘놓고 “일을 왜 이렇게 해오냐”고 화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업무 커뮤니케이션에서 업무의 납기와 결과물 수준을 명확하게 밝히는 게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이런 쓰잘 데 없는 갈등이나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다.
애초에 겪을 필요도 없는 시행착오는 될 수 있으면 넘어가는 게 좋다. CEO들은 무슨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이 왜 그렇게 되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대표들도 이런 문제를 겪고 있구나”, “대표가 잘 못하는 부분은 이런 거구나”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야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해야 그의 부족한 부분을 내가 보완하고 메꿔줄 수 있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특히나 대표와 구성원의 거리가 가까운 편이다. 대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번아웃을 피할 수가 없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직장 생활을 슬기롭게 하려면 대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길 바란다. 그래야 이제부터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할 수 있을 테니까.
유디V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