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 외의 과정도 고려한다
강의나 패널 토론의 Q&A 시간에 간혹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투자자는 실패한 창업가에게도 다시 투자를 하나요?”
이 질문에 대해 단순히 ‘예/아니오’로 답하긴 쉽지 않은데, 제가 생각하는 것을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무엇인가?
먼저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필요한데, 어디까지를 성공으로 볼 것인지가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투자를 유치하면 성공인가? 영업이익을 내면 성공인가? 크게 성장해야 성공인가? 인수합병이 되거나 주식시장에 상장하면 성공인가? 각자 기준이 다르겠지만 예를 들어 투자 유치를 성공으로 보기엔 무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크게 성장을 하면 영업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성공으로 볼지 아닐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의견이 다를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최근엔 100년 기업은커녕 ICT 분야에선 10년 이상 존속되는 기업도 드물기에, 괜찮은 조건으로 인수 합병되는 것도 성공으로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사업 전체가 아닌 비즈니스 프로세스별로 성공과 실패가 나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업 전체는 전쟁으로 부분적인 비즈니스 프로세스는 전투에 비유할 수도 있는데, 때론 많은 전투에서 이겼지만 중요한 전투에서 패배하여 전쟁에서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초기의 비즈니스 모델은 실패했지만 이후 피봇한 비즈니스 모델에선 성공할 수도 있죠.
결과 vs 과정
제3자는 외부에서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성공이냐 혹은 실패냐의 결과만 보지만, 창업가에게 직접 투자한 투자자는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도 지켜보게 됩니다. 사업의 성공과 실패는 창업가의 자질/능력/태도/노력 외에도 해당 비즈니스 모델의 난이도/시장의 환경/타이밍/운 등 많은 요소들의 상호작용 결과입니다. 투자자들이 “노력하는 창업가 위에 하늘이 내린 운을 받은 창업가가 있다”고도 이야기하는데,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운이 사업의 성공에 더 크게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어디까지나 노력을 더한 창업가도 운이 받쳐주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지, 운이 있으면 노력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진행 과정에서 창업가는 부분적으로 성공과 실패를 겪으면서 다양한 경험과 배움을 얻기도 하고 최종적으로 사업에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대체로 부분적인 실패보다는 부분적인 성공에서 더 큰 배움을 얻을 수 있죠.
실패를 거쳐 성공하는 경우도 많다
결과적으로 성공한 창업가들도 한 번에 성공하기보다는 실패를 거쳐 성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첫 번째 사업에서 성공하더라도 몇 번의 비즈니스 모델 실패와 함께 피봇을 통해 성공한 경우도 있고, 첫 번째 두 번째 사업에서 실패한 뒤 세 번째 사업에서 성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칠전팔기(七顚八起)’인 셈입니다.
Apple의 사례
성공한 제품군 : Apple II, Mac, iPhone 등
실패한 제품군 : Apple III, Lisa
Daum의 사례
성공한 서비스 : 한메일/카페/포털 서비스 등
실패한 서비스 : 초기의 패션넷/Cynema/Tour World/Ch.10
김봉진 의장의 사례
김봉진 의장의 경우, 2008년에 첫 번째로 창업한 ‘수제 디자인 가구 사업’은 결국 빚만 남기고 실패하였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로 창업한 ‘우아한형제들’에서 시도한 ‘배달의민족’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창업가의 재도전
투자자들은 성공한 연쇄 창업가에 투자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기존의 성공 경험에 기반해 연쇄 창업도 성공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단순히 성공/실패 결과만을 보고서 기존에 성공한 창업가만이 많은 것을 배웠고, 실패한 창업가는 많이 배우지 못했다고 판단하기엔 힘들 것입니다. 때론 연쇄 창업가가 바뀐 업종/고객/시장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기존의 성공 공식에만 집착한 나머지, 적응하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창업가의 능력은 계속해서 바뀌지만, 태도나 마인드셋은 바꾸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투자자 입장에서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크게 실망한 경우 해당 창업가가 재창업하더라도 투자를 꺼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창업가가 합리적인 판단력이 많이 결여되어 있거나 커뮤니케이션에서 신뢰가 훼손된 경우가 그렇죠. 특히 신뢰가 크게 훼손된 경우에는 투자자 네트워크에서 해당 창업가에 대한 나쁜 평판이 돌 때도 있습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결과적인 실패의 요인은 복합적이기에, 단순히 실패했다고 창업가의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예단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창업에 성공하기엔 능력/자질이 너무나도 부족하거나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타이밍이나 운때가 맞지 않아서이거나, 최선을 다했지만 아쉽게도 2% 부족한 부분이 있었을 수도 있고, 때론 충분히 능력 있는 창업가이기에 조금 더 낮은 난이도의 비즈니스 모델에 도전했더라면 성공 가능했을 것 같은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비즈니스 프로세스별로 성공 경험도 어느 정도 있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에서 2% 부족하여 전체 사업에서는 실패한 경우, 투자자 입장에서는 해당 창업가가 새로 시작하는 사업에서 확신이 든다면 재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한 사이클을 같이 경험한 투자자의 입장에서 해당 창업가의 장단점을 꽤 안다는 점도 투자에 유리한 면이 있고, 재창업에서는 창업가가 더욱 성장하여 2%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그리고 직접 재창업을 하지 않더라도 부분적인 성공 경험과 많은 것을 배운 ‘성공적인 실패‘를 겪은 창업가는, 다른 스타트업이나 대기업에서 핵심 인재로서 또 다른 출발을 하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극히 일부만이 창업에서 성공하지만, 비록 실패하더라도 의미 있는 성장을 동반하는 ‘성공적인 실패‘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가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