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사를 조금 바꿀 수도 있다
회사는 사실 무형입니다
사무실이 회사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경영자가 회사의 100%도 아닙니다. 회사는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모여 만든 무형의 실체죠. 그래서 구성원 누구라도 회사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습니다. 회사에 대한 불만이 있으면서 회사를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는다면 사실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지금 회사의 모습에 지분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무자가 갑자기 중간 관리자가 되고 관리자가 됩니다. 그러는 사이 너무 자연스럽게 영향력이 생깁니다. 영향력은 권리이자 의무죠. 알게 모르게 늘어나는 영향력은 회사를 바꿀 수 있는 영역이 조금씩 더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시기를 그냥 하던 대로 지나가서는 원하는 회사를 만들 수 없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니지만, 주입식 생활을 오랫동안 해 오던 많은 사람들은 그저 하던 대로 이 시기를 지나가 버립니다.
서류가 많은 회사, 보고가 많은 회사가 분명히 있습니다. 저도 그런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일단 가장 위에서 서류를 원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많은 서류를 받아서 조직을 이해하는 습관이 있는 그다음 영향력 있는 사람이 문서를 받고 싶어 합니다. 문서를 직접 작성하는 사람, 평소 들은 것을 자신이 스스로 핵심만 요약할 수 있는 사람은 문서를 많이 만들게 시키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관습과 싸워야 합니다. 이미 널브러진 서류들이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하나 하기 위해, 한 주 한 주 일이 돌아가는 것을 공유하기 위해, 아니면 어디 갔다 와서 본 것까지 서류로 남기기도 합니다.
“이거 어디에 쓰지?”
다시 안 볼 아카이빙을 위한 서류는 조직에 필요 없습니다. 추억할 시간조차 없는 게 회사입니다. 다시 볼 정도가 아니라 늘 끼고 살고 매 순간 보는 휴대폰 같은 용도의 서류가 아니라면 처음부터 안 만드는 게 낫습니다. 더군다나 프로젝트 착수에는 이런이런 문서가, 1달 지나고는 이런이런 문서가… 이런 식으로 뭔가 정해져 있는 게 강한 조직이라면 반드시 이 질문으로 직원을 정말 일하지 못하게 만드는 서류 작업을 없애야 합니다. 서류를 만들면 정말 일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문제는 서류를 만드는 사람이 실무를 한다는 것이죠. 보고 받는 사람은 보통 시간이 남습니다.
일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어디에 쓸모없는 서류지만 만들어야 하는 게 있습니다. 관공서를 상대로 하는 업무에서는 놀랄 만큼 정부 3.0 시대의 고전적 서류들을 만나게 됩니다. 보통은 한글 파일이죠. 그리고 계약과 계약 사이에도 재무 쪽에도 서류는 오고 가고 관리할 요소입니다. 실무와는 아무 상관 없지만요.
“모든 직원이 만들어야 하는 서류인가?”
쓸모없는 서류를 모두가 만들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관리자들은 취합 받고 정책 설명하고 빠지면서 이 쓸모없는 필수 서류를 모두가 나누어서 작성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실무는 누가 하죠? 그렇습니다. 이 서류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은 사실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조직 안에 일의 중간 단계가 생기면 대부분 이런 일들이 벌어집니다. 체크하고 모니터링만 하는 사람은 조직에 최소로 하거나 없어도 됩니다. 모두가 해야 하거나 쓸모없는 일입니다.
관습대로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 범법자도 될 수 있는 게 회사 일입니다. 불법이 만연하면 내부에서는 불법인 줄도 모르고 돌아갑니다. 외부와 단절된 조직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좋은 조직은 결국 사업의 기회가 있는 외부와 건강하게 열려 있으면서 그 시각으로 내부의 관습을 매 순간 조각낼 수 있어야 합니다. 회사의 철학이나 문화는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상식 위에 서 있는 것이니까요.
서류는 아주 작은 관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작은 관습부터 바꾸지 못하면 조직 안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왜?”라고 묻는 문화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멍청하고 나쁜 질문은 없습니다. 우리가 종교 원리주의자들을 어렵게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PETER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