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이다. 최근 마케팅 시장을 살펴보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 실력 있는 광고대행사와 협업하고, 심지어 제품의 성능이 탁월해도 소비자들에게 외면받는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생각지도 못한 마케팅 방식이 성공한다. -지금 팔리는 것들의 비밀- |
위의 문구는 이 글(연재)을 시작한 계기가 됐습니다. 깊이 공감 가는 문제 제기로 이 책을 사게 된 이유가 되기도 했죠.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인지 책을 다 읽은 뒤엔 다소 아쉬움이 남기도 했습니다만…
제목대로, ‘지금 팔리는 것들‘에 대한 ‘현상‘은 알 수 있었으나, 그것이 정말 비밀이었나? 에 대한 의문이 좀 들고, 또 이 ‘비밀’을 우리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이 생기더군요. 왜일까요? (이 의문은 이 책 외에도 트렌드 관련한 책들을 읽으며 항상 느끼던 것입니다)
수취인 불명
교과서는 표준 체계와 내용을 제공하고 있지만 지식 나열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져 있으며, 일반 대중서는 최신 현상을 다루고 있지만 논리적 체계가 부족해 인사이트를 얻기에는 다소 피상적이다. -트렌드를 넘는 마케팅이 온다- |
제안 진행할 때의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봤을 때 듣는 이의 공감을 끌어내려면 그 회사에 대한 분석이 최우선으로 필요합니다. 일반적인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면 “뻔한 얘기”라며 지루해 하거든요.(심하면 프레젠테이션을 중단하기도 하죠)
반대로 지시 내리게 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회사의 현실을 생각하지 않고 어느 날 대표님이 ‘우리도 이런 거 한번 해보면 어때?’ 하고 다른 회사 대박 케이스를 던져 주면 난감해지죠. (쓰고 보니 저도 그런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책들에선 상대방(수신자)을 명확히 하기 어렵습니다. 특정 기업을 위한 제안서나 컨설팅이 아닌 대중서이기 때문이죠. 물론, 이 글 역시 그런 한계를 벗어나긴 어렵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제안서 형식에 따라 아래의 순서로 진행해 왔는데요.
- Intro : 2020년대에 일어나고 있는 핵심적인 트렌드가 무엇인가?’
- Customer : 왜 ‘재미’에 열광하는 소비자 집단이 생겨났나?
- Competitor : 옆집(?)에서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3C 중 ‘소비자 (Customer)’와 ‘경쟁사 (Competitor)’까지 살펴봤으니, 이제 ‘우리(Company)’의 상황은 어떠한가? 를 분석하고, 그에 따른 전략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누구인지를 알아맞힐 신묘한(!) 기술은 없으니, 이 글의 ‘수취인‘을 가정해볼까 합니다.
비플랫폼 기업의 마케터, 혹은 기획자에게..
플랫폼 vs. 비플랫폼 기업
회사의 특성을 구분하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경영이나 마케팅 서적 코너에서의 유행을 보면.. 닷컴 열풍이 불어 닥쳤을 때는 ‘굴뚝‘ 기업이냐, ‘닷컴‘(클릭 앤 모르타르라는 말도 있었죠)이냐가 화두였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요새는 IT 기업의 종사자들도 많아지고 스타트업 역시 많이 생겨서인지 역으로 기존(?) 회사들을 전통 기업으로 칭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죠.
저는 ‘플랫폼‘ 기업과 ‘비플랫폼‘ 기업으로 구분하고자 합니다. 플랫폼 기업*이란 디지털상의 앱 또는 웹 자체가 그 회사의 주 Product이자, 비즈니스 모델인 경우입니다. 이 글은 ‘비’플랫폼 기업과, 그 회사의 마케터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왜냐면 플랫폼 기업들을 위한(또는 되기 위한) 책과 이론은, 실리콘 밸리 안팎에서 워낙 많이 나왔기 때문이죠. 반대로 일반 기업을 위한 내용은 꽤 오래전의 경영, 마케팅, 브랜딩 이론들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여전히 잘 먹혀서라기보다는, 이쪽 분야에 대한 인기(?)가 떨어져서 아닐까 싶네요.
플랫폼은 외부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에 기반을 둔 비즈니스이다. 플랫폼은 이러한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도록 참여를 독려하는 개방적인 인프라를 제공하고 그에 맞는 거버넌스를 구축한다. 플랫폼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사용자들끼리 꼭 맞는 상대를 만나서 상품이나 서비스, 또는 사회적 통화를 서로 교환할 수 있게 해 주어 모든 참여자가 가치를 창출하게 하는 데 있다. -‘플랫폼 레볼루션’에서의 플랫폼에 대한 정의- |
광고 회사에서 만났던 많은 회사, 그리고 마케터들은 대부분 비플랫폼 기업 소속이었습니다. 많은 마케팅 자산을 가지고 있고 예산도 많이 쓰는 편이었지만, 디지털 분야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는 계속 혼란이었습니다. 닷컴 시대엔 홈페이지만 만들면 되는 줄 알았고, 소셜 시대엔 그때그때 유행하는 채널에 예산을 늘려갔죠. 요샌 그로스 해킹이나 퍼포먼스 마케팅이 유행이라 그쪽에 관심을 가져보지만, 돈을 써도 마케팅 자산이 쌓여 가는 것이 아닌 방어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AARRR이라고 하는 그로스 해킹적인 기법을 도입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파이프라인을 갖추지 않은 비플랫폼 기업에서는 버즈 총량이라든가 회원 수 증대, 사이트 트래픽, 일회성 이벤트나 Sales Promotion이 KPI가 되기 쉽죠. 이는 지속적인 성장이 아닌 휘발성 수치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어봐도, 대행사도 왜 이렇게 되는 건가 알려주지 않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와 ‘누가(다른 회사) 얼마나 성공했는지’만 얘기할 뿐이죠. 이런 마케팅이 먹히지 않는 이유는 대체로 같습니다. 우리는 비플랫폼 회사이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는 디지털 강국이고 지금도 많은 스타트업들이 탄생하고 있지만, 미국과 달리 제조업 비중이 높습니다.(시총 10위 기업 중 제조사가 8개, 미국은 반대로 플랫폼 회사가 6개) 또 기본적으로 10억 명 이상의 시장을 바라보는 실리콘밸리와 달리, 우리는 시장 규모가 작아 중소 규모의 플랫폼(전업) 회사는 독자적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구조죠.
시장엔 비플랫폼(전통, 기존, 굴뚝, 오프라인 기타 등등..) 회사가 더 많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플랫폼 기업의 반칙(Digital Disruption)
앞의 글들에서 미디어 커머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럼 왜 미디어 커머스를 해야 한다는 건가? 그리고 플랫폼 기업이 아닌 게 뭐 어떻다는 거지? 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기 전에 예전에 제가 꽤나 충격을 받았던 광고를 하나 보여 드릴까 합니다~
오늘은 치킨이 땡긴다 – 배달의 민족 유튜브 채널
여기 나온 치킨은 어느 회사 것일까요? 그건 상관없습니다. 이 영상은 치킨 편 외에, 몇몇 자매 영상(찌개 편, 피자 편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영상에서 어떤 설명도, 앱에 대한 안내도 없습니다. 심지어 앱이 등장하지도 않죠.
OTT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전 당시 야근이 잦던 저는 주로 늦은 밤에 IPTV에서 그날 못 본 예능을 VOD로 이용했는데요. 이 광고는 본 프로그램 직전의 5초 짜리 광고였는데요. 이런 광고가 나오면 일시 정지를 누를 수밖에 없습니다.
전통적 광고 기법에서도 이런 기법이 있습니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처럼 어떤 자극과 제품을 보여 주면, 추후 그 제품을 볼 때 그 자극(내가 좋아하는 스타라든가, 휴양지의 모습이라든가)이 떠오르게 되는 거죠. 하지만 플랫폼 기업은 지속적인 자극도 필요 없습니다. 위 광고를 보는 순간 바로 핸드폰을 손에 쥐게 되니까요.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 배민은 치킨 가게가 아니다.(기업 입장에선 추가 확장에 대한 한계 비용이 제로)
- 소비자는 치킨을 먹기 위해 치킨 가게에 갈 필요가 없다.(선택에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단순화된 고객 여정(또는 플랫폼 기업이 그렇게 만든 여정)에서 Input(Needs)은 곧 Output(Purchase, Action)으로 이어지며, 그사이에 다른 단계가 없죠. ‘먹고 싶다’는 욕망과 연결하는 것이라면 무한대로 비즈니스 영역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Digital Disruption(파괴적 혁신)에 대해 하버드의 테이세이라 교수는 ‘디커플링‘이라 소개합니다. 우리가 기존 마케팅의 기법에서 맹신해온 고객의 가치 사슬이 붕괴한다는 것이죠. 새로운 기업, 즉 플랫폼 기업들에 의해서.
그럼 어쩌란 거지? 플랫폼 기업으로 이직하라는 건가?
아닙니다. 플랫폼 기업의 성공 사례를 열심히 찾아볼 게 아니라, 대응할 방법을 찾자는 거죠. 그 시작은 우리 브랜드, 또는 우리의 제품에 대해 파괴부터 해야 합니다. 이 글에서 회사에 대해 분석을 해야 합지만 플랫폼 기업과 비교만 한 것은 이 분석과 정의가 전략과 실행의 첫 번째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글을 마무리 짓습니다. 다음 단계부터는 나름대로의 실행 프레임을 고민해 볼까 합니다.
Ryan Choi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