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장 욕구가 넘친다. 그저 그런 회사에 들어가느니 더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스타트업에 다니기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경영진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대기업처럼 몇 주간 연수를 보내 주거나, 사내 교육을 제대로 하기 힘든 형편이 많다. 애초에 사내 교육 부서도 대개 없다. 무언가를 가르쳐주기도 어려운 게, 스타트업에서 하는 업무들 자체가 최신 기술이나 트렌드인 경우가 많아서 마땅히 배울 곳도 없다. 기술 발전의 최전방에 있는 스타트업에서는 실무자들이 인터넷에 공유하는 블로그가 거의 유일한 교과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스타트업의 성장 환경은 달라야 한다. 회사가 보모처럼 하나하나 알려주고, 다 정리해주고, 교육해주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대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일 단위) 회고 다이어리 : 모든 사람이 각자 매일 업무 일지와 회고 적기 (주 단위) 원온원 미팅 : 2주 단위로 리드(팀장)와 원온원 미팅하기 (월 단위) 월간 회고 : 팀 단위로 함께 모여 매달 회고하기 (분기 단위) 피어 피드백 : 업무 접점이 있는 동료에 대해서 피어 피드백 적고 공유하기 (반기 단위) 리드 피드백 : 각자 위 근거들과 반기의 자기 업무를 정리하여 리드와 같이 회고하기 |
회고와 피드백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성장하는 이들이 더 잘할 수 있게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분야의 교육 프로그램도 없고 업계에 마땅한 강사도 없으며, 회사 내에 사수조차 없는 환경에서 어떻게 성장을 도울 것인가? 회고와 피드백이 훌륭한 대안이 된다.
* 물론 가장 좋은 건 업계의 선배에게 배우는 것이다. 그 분야를 이미 경험해본 사람에게 배우는 게 좋다. 그러한 노력은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도 항상 회사 밖에서 실행하면 도움이 된다. 다만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건 성장하기 위한 조직 내부의 구조니까 넘어가겠다.
회고는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생각 없이 실무만 쳐내다 보면 한 달이 후딱 지나가고, 정신 차리고 보면 반년이 지나가 있다. 그래서는 A라는 상황을 겪었더라도, 다시 A’라는 비슷한 상황이 닥쳐왔을 때 이전과 비슷한 실수를 범하기 쉽다. 그냥 생각 없이 눈앞의 일만 쳐내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도 겪어본 일만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회고를 하면 자기만의 방법론이나 원칙이 생긴다. 원칙이 있으면 서로 다른 상황을 겪어도 이전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조금씩 더 나은 선택을 해낼 수 있다. 회고를 잘 활용하려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부터 제대로 갖추는 게 좋다.
– 문제 정의 : 현상을 파악하고 정확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뭔지, 진짜 문제를 정의 내린다. – 원인 분석 : 문제 근본적인 원인이 뭘까 고민한다. – 목표와 가설 설정 :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한다. ‘이렇게 하면 해결될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운다. – 실행 : 실제로 해본다. – 가설 검증 회고 : 결과가 어땠는지 돌아본다. – 개선사항 도출 :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더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개선사항을 도출해본다. – 반영 : 개선사항을 실제로 실행한다. |
스타트업에선 처음 해보는 게 많으니까 이렇게 해야 빨리 익힌다. 주니어한테 회고를 시키면 그냥 자기가 했던 일을 돌아보기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설 설정/검증을 하지 않으면 효과가 반감된다. 회고를 하는 건 무언가 ‘시도해보고’ 그 시도가 어땠는지를 돌아본 뒤에 또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시도해보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회고는 본질적으로, 왔던 길을 돌아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 않았던 길을 나아가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회고만 하면 자기 관점에 갇혀서 뻔한 길도 너무 멀리 돌아갈 수도 있다. 그래서 자기 객관화를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을 해보면 좋다. 첫째로 회고를 다른 사람들이 보는 곳에 공유하는 것이고, 둘째로 다른 사람에게서 피드백을 받는 것이다. 회고와 피드백에 대해서 더 자세히 풀어보겠다.
스타트업에서 성장하는 조직 구조 만들기
(일 단위) 회고 다이어리
: 모든 사람이 각자 매일 업무 일지와 회고 적기
우리는 모두가 볼 수 있는 사내 게시판에 각자 회고 다이어리를 매일 의무적으로 적는다. 분량은 제한이 없어서 한 줄만 적어도 상관없지만 반드시 매일 적어야 한다. 내용은 ‘그날 진행한 업무 리스트, 하루에 대한 회고, 레드 플래그, 동료에게서 배운 점’을 적는다.
직장인들이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회고를 완벽하게 적으려고 하는 것이다. 뭔가 모든 것들을 한 번에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또 엄청난 인사이트가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그러니 계속 미루고 미루다가 3개월, 6개월에 한 번씩, 혹은 1년에 한 번 간신히 회고를 쓴다. 그래서는 매일 사장되는 경험과 인사이트가 너무 아깝다. 스타트업은 워낙 빠르게 돌아가기 때문에 회고 주기도 짧아야 한다. 매일 3%씩만 성장해도 24일 뒤에는 이전보다 200% 성장해있게 된다.
그래서 회고는 다이어리 형태로 적는다. 그날 있었던 업무를 돌아보고, 오늘 하루는 컨디션이 어땠는지, 어떤 점이 잘 풀리지 않았는지, 요즘 고민은 무엇인지, 업무에서 느낀 점은 없는지 등등 자유롭게 적어본다. 이렇게 가볍게 글로 적다 보면 생각들이 자기도 모르게 정리가 된다. 그리고 남들이 볼 수 있는 사내 게시판에 올려야 의식적으로 생각을 더 정리하게 되어 좋다.
(주 단위) 원온원 미팅
: 2주 단위로 리드(팀장)와 원온원 미팅하기
조직 규모가 커지면 CEO나 담당자 한두 명이 모든 인원을 케어하기 어렵다. 그러니 반드시 중간 관리자를 두어 각 팀이 알아서 성장하고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회고 다이어리를 쓰면 리드(팀장)의 관리 비용이 많이 줄어든다. 업무적인 대화만 해서는 절대 서로 얘기하지 않았을 고민이나 기분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고 다이어리만으로는 당연히 한계가 있다. 결국에 원온원 미팅만큼 효과적으로 정보를 뽑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제대로 된 방법으로 대면하여 원온원 미팅을 진행하면 온갖 중요한 정보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팀원의 업무에 대해서도 그렇고, 그 사람의 회사 생활에 대한 고민이나 불만, 문제의식도 듣게 된다.
원온원 미팅의 진가는 Action Item에 있다. 팀원의 고민을 마냥 들어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리드 입장에서 지원해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야 한다. 업무량을 조절해주거나, 역할을 변경해주거나, 전사 현황을 공유해주거나, 다른 팀과 업무를 조율해주거나,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주거나 등등 다양한 Action Item을 뽑아내서 확실하게 팔로업해줘야 의미가 있다.
이러한 기록은 모두 보상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구성원이 어떤 고민을 했는지, 어떤 시도를 했고, 조직에서 어떻게 적응해나갔는지, 문제를 해결했는지 등등 중요한 자료들이다. 물론 보상을 위해서 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구성원을 지원해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보상 시스템의 근거 또한 되는 일석이조인 것이다.
(월 단위) 월간 회고
: 팀 단위로 함께 모여 매달 회고하기
각자 한 달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개선할 점이 있었고, 다음 달에는 어떤 것들을 개선하여 시도해볼지를 정리한 다음 팀끼리 공유한다. 그래서 팀 단위로 팀의 프로젝트나 업무 방식도 함께 회고한다.
번외로 이야기하자면 주간 회의와 월간 회고가 서로 다르다. 주간 회의 때에는 각 팀에서 한 주 동안 진행할 업무 혹은 진행했던 업무들을 공유하고, 얼마나 달성했는지를 점검한다. 반면 월간 회고에서는 달성 정도만 점검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일했는지’ 자체를 돌아본다. 업무 방식이나 프로세스를 회고하는 셈이다.
이는 한두 시간 정도 각 팀끼리 알아서 모여 월간 회고 미팅을 진행하고, 매달 마지막 주의 주간 회의 시간에 전사 인원과 공유한다.
보면 알겠지만 매일 회고 다이어리도 적고, 원온원 미팅도 진행하고, 월간 회고도 적는 등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활동이 일/주/월/분기 단위로 촘촘하게 짜여 있다. 이는 단순히 직원을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더 성장하도록 개선할 점을 찾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면서도 너무 행정 절차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지 않도록 조절하는 게 참 어렵다. 엄격하게 하려면 너무 많은 매니지먼트 비용이 소요된다. 그렇기 때문에 회고 다이어리에 분량 제한이 없기도 하고, 원온원 미팅을 매주가 아니라 격주로 진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월간 회고를 통해 각 팀의 중간 관리자들이 알아서 팀을 관리하게끔 리소스를 배분했다.
(분기 단위) 피어 피드백
: 업무 접점이 있는 동료에 대해서 피어 피드백 적고 공유하기
통상 회사에서는 동료 평가를 많이 한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평가가 되어선 안 된다. 이는 동료 간에 특히 더 중요한 문제인데, 내가 신경 쓰는 부분은 동료와의 협업이다.
협업이 별 게 아니다. 궁금한 게 있을 때 부담 없이 물어보고, 내 의견을 말하고 싶을 때 기꺼이 말하는 게 협업이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업무를 먼저 나서서 도와주고 서로의 업무 스타일에 맞게 맞춰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려면 신뢰해야 한다. 동료 평가를 엄격하게 할수록 신뢰는 무너지기 쉽다. 내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못나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고 부담을 느끼는 순간 말을 안 하게 된다. 그리고 별로 정치적인 상황이 아님에도 사내 정치가 작동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다. 사적으로 친한 사람들은 평가를 잘 받는다고 한 번쯤은 의심해보게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피어 피드백은 대상자의 성장을 위해 서로 피드백해주는 목적이라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실제로 문항도 그렇게 구성한다. 피어 피드백에서는 4가지 요소를 적는다.
[회고] 동료와 지난 한 분기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유지] 동료가 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중단/시작] 동료의 성장을 위해 조언해준다면? [추천사] 이 동료를 다른 누군가에게 추천한다고 가정하고, 추천사를 적어주세요. |
여담이지만, 동료와 협업을 잘하려면 동료에게서 존경할만한 구석을 하나라도 찾아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일부만 보고 전체를 평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단점은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사람의 단점 한두 가지로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내려버리고 감정적인 벽을 만든다. 예를 들어 “저 사람은 말이 안 통해”, “저 사람은 논리적이지 않아”라는 식으로 그 사람의 단점 때문에 그를 싫어하게 되고, 그와 감정적인 벽이 생긴다. 하지만 사람마다 강점이 있듯이 약점 또한 있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모습 또한 그 사람이 고쳐야 할 약점이라고 생각하며, 그 사람의 강점은 분명히 뛰어나다는 것을 명확히 안다면 그 사람의 단점을 포용하게 된다. 존경할 구석을 찾아내야만 그를 존중하고 그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나아갈 수 있다. 그래야 업무 스타일을 서로 맞추고 보완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나 좋자고 하는 일이다. 억지로라도 동료를 존경하라. 이 내용은 다음에 글 하나로 길게 풀어봐야겠다.
어쨌든 위와 같은 동료와의 신뢰, 협업을 위해서 여러 장치를 둔다. 회고 다이어리에서 ‘동료에게서 배운 점’을 매일 찾아내서 적기도 하고, 피어 피드백에서 ‘추천사’를 적기도 한다. 이렇게 동료의 강점을 바로 알고 인정해야만 동기 부여가 제대로 된다. 뛰어난 동료와 일해야 일할 맛이 나는 것인데, 뛰어난 동료와 일하고 있음에도 단점에 가려서 그가 뛰어나지 않다고 감정적으로 미워해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참고로 피어 피드백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사내 게시판에 공유한다. 누가 누구에게 적은 피드백인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피드백이기 때문이다.
(반기 단위) 리드 피드백
: 각자 위 근거들과 반기의 자기 업무를 정리하여 리드와 같이 회고하기
위 모든 내용을 각자 정리해서 리드에게 미팅을 요청한다. 그리고 리드와 함께 지난 반기를 회고한다. 여기서는 개인이 조직에서 얻고자 하는 목표와 조직이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잘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람마다 직장에서 얻고 싶어 하는 것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다. 회사가 그것을 줄 수 있어야 그는 회사에 오래 남을 것이다.
지금 조직에는 들어온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위 시스템은 아직 도입 단계다. 어떻게 보상 체계와 직접적으로 연계할지가 앞으로 남아있는 과제이고, 그에 따라 제도들을 목적에 맞게 끊임없이 수정해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글을 쓴 이유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는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제도들을 생각해냈는지 공유하고 싶어서다. 다음번에는 실행에 따른 인사이트들을 또 공유할 수 있겠다.
성장 엔진을 장착한 스타트업
스타트업에서 성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성장 욕구가 강한 사람들은 회고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피드백 받는 것 또한 좋아한다. 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성장 욕구가 강한 사람들을 뽑고, 그런 사람들을 한데 모아 놓아 서로의 회고를 읽게 만들고, 다양한 관점에서 피드백을 주고받게 만들면 알아서 성장한다.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평가보다는 피드백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처벌과 포상의 개념이 아니라 공동의 성과를 구성원과 나누는 보상의 개념으로 파이를 나눈다. 자기 업무를 더 잘하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들이니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지난 분기 동안에는 이러한 시스템을 우리 조직에 맞게 기획하고 차근차근 세팅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썼다. 조직 구조는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서 차근차근 순서대로 세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년 3분기는 회고 다이어리를 정착시켰고, 4분기에는 리드 가이드를 만들어 원온원 미팅을 연습했고, 올해 1분기에는 피어 피드백을 시범 운영해서, 지금은 이러한 프로세스가 연계되는 보상 체계를 전사에 공지했다. 단계마다 조직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래서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 그래서 이 제도의 목적은 무엇인지, 이 제도는 어떤 식으로 시도해볼 것인지, 해보니 어떻게 하는 게 더 나은지를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서 설득해야 한다.
조직 구조를 세팅할 때에는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게 더 중요하다. 잘 완성된 제도를 무작정 조직에 도입한다고 그것이 완성되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OKR이 그렇다. 당장 완벽하게 Key Results 지표들을 뽑아내고 팀별 OKR을 세팅할 필요가 없음에도, OKR이라는 제도가 그렇게 하니까 그냥 지금 조직에 바로 적용해버리곤 한다. 채용도 다르지 않다. 구조화 면접이라든지 세밀하게 지원자의 평가 점수를 매긴다든지 복잡한 체계와 절차를 만들곤 하는데, 하나의 제도 안에서도 각 기능에는 맥락과 목적이 있다. 그 기능이 왜 필요한지, 왜 생겼는지를 알고 써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가 있겠는가. 스타트업에서 과일을 깎는 데 대기업에서 쓰는 회칼을 가져오면 안 될 것이다.
조직 규모가 커지면 모든 사람을 케어할 수 없다. 회사 곳곳에서 벌어지는 업무 현황 파악하는 것도 힘들다. 그러니 알아서 잘 돌아가고, 자정 작용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요즘은 그런 일을 한다. 사실 담당자로서 업무 만족감을 느끼기 어려운 종류의 업무다. 당장 성과가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성과를 측정하기도 어렵다. 또한 조직 건전성에 대한 업무이기 때문에 사업 성과와는 별개의 일이다. 조직이 건전하다고 해서 사업이 성장하는 건 아니니까. 단지 좋은 토대가 될 뿐이다. 즉, 성과를 증명하기도 어렵고 효능감을 느끼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 직무는 사명감과 가치관, 철학이 더더욱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이 영역에서 온갖 기술적인 역량보다 가치관이 더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조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떤 방향이 더 나은 방향인가, 뭐 그런 것들이 작은 차이를 쌓아내는 것 같다.
일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면 좋겠다. 동기부여는 남이 못 시켜준다. 애초에 동기부여된 사람을 뽑아야 하고, 조직은 그 동기를 꺾지 않도록 구조와 문화를 잘 만들어가야 한다. 스타트업에서는 보모처럼 못 돌봐준다. 알아서 성장 욕구가 강한 사람이 들어오고, 이건 누구 잘못이니 따질 시간에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대우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스타트업 자체가 시장에서 고객들이 겪던 어떠한 문제를 세상에 없던 방식으로 해결해내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알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찾고, 먼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스스로 성장하는 사람이 아니면 스타트업에 와봤자 힘들기만 할 것이다. 이 험난한 길을 뻔히 알고도 뭔가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면 스타트업으로 오면 된다.
유디V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