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의 색다른 오픈마켓 진입 전략
최근 가장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는 유통기업은 어딜까요? 아마 신세계/이마트가 가장 유력한 후보가 아닐까 싶습니다. SK 와이번스 야구단을 인수하여 SSG 랜더스로 만들더니, 네이버와 전략적 제휴를 맺기도 했고요. W컨셉을 인수하면서 여성 패션 플랫폼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4월 20일 오픈마켓 시범운영을 시작하며 공격적인 행보의 마무리를 장식했습니다. SSG가 본격적으로 오픈마켓 시장에 진출한 것입니다. 오프라인 기반 유통기업이 만든 플랫폼 중엔 롯데온에 이어 2번째 오픈마켓 시장 진출이고요. 신세계/이마트의 온라인 대전환이 성공하느냐의 여부는 바로 이번 오픈마켓 전환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 SSG가 오픈마켓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SSG는 오픈마켓 전환을 선언한 것일까요? 그리고 왜 여기에 SSG의 명운이 달려있는 걸까요? 현재 종합몰이라 불리는 플랫폼들은 오픈마켓이 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상품 확보를 통한 규모의 경제 구현이 오픈마켓 구조가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SSG가 취급하는 상품은 1,000만 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단순히 숫자만 들으면 엄청나게 많아 보이지만, 쿠팡의 상품 수가 2~3억 종에 달하기 때문에 이에 비해선 초라한 수준입니다. 이러한 상품을 빠르게 확보하는 방법은 오픈마켓입니다. 실제로 롯데온은 2020년 4월 오픈마켓 전환 후 6개월 만에 800만 종에 불과했던 상품 수를 7,500만 종까지 늘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작년부터 SSG가 오픈마켓 전환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시장에 파다하기도 했고요.
이러한 상품 수가 중요한 이유는 이커머스 시장이 롱테일 법칙이 적용되는 대표적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오프라인, 특히 백화점은 파레토 법칙이 잘 먹히는 곳입니다. 그래서 VIP 고객 마케팅에 심혈을 기울이고요. 에르메스, 루이뷔통, 샤넬 등 명품 브랜드 유치에 힘을 쓰는 겁니다. 결국 이들이 전체 실적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은 완전히 다릅니다. 어차피 고객은 상품 검색을 통해 플랫폼에 유입되고요. 물리적 한계로 전시 공간에 한계가 있는 오프라인 매장과 달리 온라인은 상품 전시에 제한이 없습니다. 따라서 상위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영향력이 오프라인에 비해서는 현저히 작습니다. 그래서 상품 DB 확보가 거래액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건, 업계에서 유명한 공식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픈마켓은 이러한 상품 확보에 가장 유리한 형태입니다. 왜냐하면 판매자만 모으면 되니 말입니다. 기존에 SSG가 차용하던 종합몰은 MD가 상품 단위까지 관여합니다. 그래서 일정한 퀄리티 유지는 가능하지만, MD를 무한정 늘릴 수 없으니 상품 수 확대도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상품 판매나 광고 운영 등을 MD 없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오픈마켓 구조는 적은 인력으로도 대량의 상품을 판매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몸집의 크기가 더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이커머스 경쟁 트렌드 속에서 SSG의 오픈마켓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미뤄왔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SSG는 오픈마켓 전환을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해왔습니다. 작년부터 소문이 돌았는데도 불구하고 올해 4월 들어서 시범운영을 시작할 정도로 말입니다. 티몬, 위메프 같은 플랫폼들은 물론, 롯데온마저 일찌감치 오픈마켓으로 전환했는데도 말입니다.
이렇게 SSG가 주저했던 데는 오픈마켓 구조가 상품 확보는 쉽지만 퀄리티 관리가 어렵다는 점이 작용했습니다. 혹시 쿠팡이 짝퉁을 판다, 금지된 주류를 판매한다 이런 기사들 본 적 있으시지 않나요? 사실 이러한 뉴스들을 꼼꼼히 읽어 보시면 대부분은 쿠팡이 직접 판매하는 게 아니라, 오픈마켓 셀러들이 등록한 상품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솔직히 2,3억 종이 되는 상품을 철저히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더욱이 이와 같이 논란은 SSG에게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길거리 노점상에서 산 브랜드 티셔츠가 짝퉁이라고 해도, 그리 당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내 백화점 매장에서 샀는데, 가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요. SSG의 가장 큰 강점은 오프라인에 있는 신세계 백화점과 이마트에서 온 프리미엄 이미지와 신뢰도입니다. 그렇기에 최후의 최후까지 오픈마켓 전환을 망설였을 겁니다.
3. 경쟁자의 입점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그래서 SSG는 고심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오픈마켓 전환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최소화할 수 있을지 말입니다. 그래서 내놓은 방안이 바로 입점하는 카테고리와 브랜드를 제한하겠다는 겁니다. 우선 SSG 오픈마켓은 식품 카테고리는 전혀 취급하지 않습니다. 생필품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고가의 명품, 화장품, 패션 브랜드의 입점도 제한합니다. 미운영한다고 공지한 브랜드만 200여 개가 훌쩍 넘는다고 하네요.
이러한 정책은 어떤 효과를 노리는 걸까요? 우선 자기 잠식과 가격 경쟁에서 자유로워집니다. 미운영하는 카테고리와 브랜드를 찬찬히 살펴보면 전부 신세계 백화점과 이마트가 가장 주력으로 삼고 있는 영역입니다. 이 부분에서 자유로운 입점을 허용할 경우, 내부적으로 가격 경쟁이 벌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확실히 피하겠다는 거겠지요.
또한 불필요한 상품 품질 논란이나 가품 이슈를 피해 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선식품은 신선도와 품질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마트는 이미 소비자들로부터 품질에 대한 신뢰도를 확보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관리 안 되는 판매자들 때문에 그동안 쌓아둔 이미지를 잃어버릴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명품 등 고가 브랜드의 가품 이슈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신세계 백화점을 짝퉁을 파는 곳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셈입니다.
물론 어찌 보면 엄청난 기회 로스를 만드는 선택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식품 카테고리나 고가 브랜드 판매자가 입점할 시 거래액을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판매자는 종합몰 형태로 입점시켜도 됩니다. 물론 더 많은 공수가 들긴 하겠지만, 이를 감수하더라도 필수적인 영역의 퀄리티는 지켜서, 프리미엄 이미지는 사수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4. 오픈마켓이지만, 우리는 이를 감출 겁니다.
이와 같은 입점 제한 정책뿐 아니라, 몰 운영에서도 SSG는 독특한 방식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우선 SSG는 오픈마켓임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전문관이나 표시를 통해 이를 드러내지 않을 거라 합니다. 심지어 메인 페이지에는 판매자 상품 노출을 전혀 하지 않을 거라 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요? SSG가 가진 프리미엄 이미지를 사수하기 위해서입니다. 몰의 정체성을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는 곳이 바로 메인 페이지입니다. 따라서 이렇듯 메인 페이지에서 신세계 백화점과 이마트의 상품만을 노출한다는 것은 바로 기존 SSG가 가진 순수성을 철저하게 유지하겠다는 의미인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운영 정책 또한 무언가를 포기해야 얻을 수 있는 거긴 합니다. 우선 오픈마켓의 주 수입원 중 하나인 광고/프로모션 판매 비용을 포기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오픈마켓은 메인 페이지 내 노출을 상품화하여 판매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얻는 수익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SSG는 이를 과감히 포기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치명적인 부분은 판매자들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이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셀러들이 오픈마켓에 입점하는 이유는 더 많은 고객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트래픽은 곧 매출로 직결되니 말입니다. 그렇기에 메인 페이지 노출을 할 수 없는 플랫폼은 메리트가 아무래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셀러들을 확보하지 못하면 굳이 오픈마켓 전환을 어렵게 한 이유가 없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러한 SSG의 제약은 플랫폼뿐 아니라, 판매자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몰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유지하면, 지속적으로 이를 좋아하는 구매력이 높은 고객이 방문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고객을 타깃으로 하는 판매자들은 오히려 SSG를 선호하게 될 겁니다. 더욱이 이와 유사한 이미지를 가진 플랫폼은 시장에 많이 없습니다. 네이버, 쿠팡, G마켓, 11번가 등 대부분이 중저가 상품을 주로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SSG의 독특한 접근 방식은 후발주자로써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지를 찾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치며
네이버와 쿠팡의 양강 구도가 서서히 굳어지면서, 초조해진 다른 플랫폼들도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대부분은 낮은 수수료를 내걸거나, 빠른 정산 등의 편의성 강화를 통해 판매자들을 확보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티몬이 일정 상품에 한해 -1%의 마이너스 수수료를 부과한다거나, 위메프가 2.9%라는 최저 수수료 정책을 도입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쿠팡의 사례만 봐도, 꼭 셀러들에게 잘하는 플랫폼이 흥하는 건 아닙니다. 셀러들이 원하는 건 낮은 수수료나 운영의 편의성도 있겠지만, 결국엔 더 많은 매출입니다. 아무리 쿠팡이 욕을 먹더라도, 판매자들이 몰리는 이유는, 거기서 판매하면 매출이 많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쿠팡이 이렇게 매출이 잘 나오는 건, 로켓배송을 통해 타 플랫폼 대비 차별점을 확실히 가지고, 고객들을 많이 모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플랫폼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단기적인 혜택보다 본질적인 차별화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번 SSG의 오픈마켓 진출 전략은 기대를 가지게 하는 것 같네요. 앞으로 정말 신세계적 오픈마켓이 가능할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요한 님이 뉴스레터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