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사업을 실행을 하는 것이 사업의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는 것은 이미 공감대가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서바이벌을 고민해야 하는 스타트업에서는 그 중요성은 더욱더 크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빠르게 실행하는 것에 대한 우리가 가진 선입견 때문에 실제로 빠르게 실행하는 조직은 많은 것 같지 않다.
왜 많지 않다고 확신할 수 있냐면, 빠르게 실행하는 것은 실행의 속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100시간 가까이 일하면서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을 본 적도 있지만, 그렇게 일하면서도 성장이 더딘 스타트업도 있다. 빠른 실행은 구성원들이 “실행”하는데 시간을 많이 쓴다고 그냥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례로 보아왔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빠르게 실행해야 해”라고 할 때 가장 먼저 얘기가 나오는 것은 근무 시간일 것이다.
시험 준비를 벼락치기하는 예를 들어 보자. 나도 중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까지 길고 긴 학교 생활에서 벼락 치기를 하지 않았던 시험이 없는 것 같다. 벼락치기의 핵심은 내가 시험을 보기 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시험을 준비하는 것에 있지 않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제약이 생기고 나서야 나는 교과서 100페이지 시험 범위 중에서 어떤 것이 시험에 나올만 한지,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 지에 대해 매시간 고민하고 선택 취사해서 공부하게 되었다. 즉, 벼락치기의 핵심은 마감을 앞에 두고 고도의 집중도로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 내에 내가 꼭 해야 하는 것을 발견(Discovery)해 나가는 것이 핵심이었다.
즉, 빠르게 실행하는 것은 정해진 결과물을 한정된 시간 내에 빠르게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이건 불가능하다 (혹은 계속 그런 방식을 유지할 수 없다). 빠르게 실행한다는 것은 한정된 시간 내에서 만들 수 있는 목표와 가장 가까울 수 있는 결과물로 업무를 한정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빠른 실행에서 제한 요소는 결과물의 요구 사항이 아니라 시간인 것이다. 시간을 아무리 효과적으로 써도 24시간을 240시간처럼 쓸 수는 없다. 하지만 한정된 시간 때문에 우리가 정말 중요한 것만 보려고 한다면, 만드는데 240시간이 걸릴 만큼 결과물이 결국 어떤 가치를 전달하는 것인가에 더 집중하게 된다. 최종 목표로 생각한 결과물이 사실은 그 가치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인 셈이다.
발견의 마인드셋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실행이라고 하면 우리는 최종 결과물에 대한 요구 사항은 바뀌지 않은 채 시간을 더 효과적으로 쓰는 것, 혹은 쉬는 시간을 줄이고 시간을 더 투입하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것을 떠올리기 쉽다. 우리는 빠른 실행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어떤 가치를 누구에게 전달하려 하는 것인가? 이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되면, 이 결과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더 필요한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할 때는 리서치와 여러 각도의 숙고 끝에 캠페인을 기획하는 것보다, 마케팅의 최종 소비자인 고객에 대해 일단 작게 여러 채널을 테스트해 보는 것이 훨씬 유용할 것이다. 디자인을 하는 업무의 경우도 디자인 결과물을 공들여 만들어서 한참 뒤에 주기 보다, 한 시간 만에 한 스케치를 먼저 줘 가면서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를 학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커피 프랜차이즈라면 여러 음료 종류를 놓고 출시할 음료를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설문 조사를 의뢰하고 하는 것보다, 당장 앞에 있는 직영점에 나가서 내가 직접 음료를 만들어 몇 사람에게 돌리고 피드백을 받는 것이 빠르게 실행하는 것이다.
다만, 빠른 실행은 주어진 시간을 더 작은 단위의 사이클로 쪼개서 반복 실행할 때 비로소 그 효과가 나타난다. 100이라는 시간이 있을 때, 10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한 사이클로 정하고는 이 시간내에 만들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고 피드백을 받는 10번의 사이클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의 핵심은 10이라는 시간 내에 만들 수 있는 결과물에 대해서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걸 가지고 어떻게 … 라고 하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 있어야 비로소 빠른 사이클이 실행된다. 그리고 각 사이클마다 전달 대상에게 어떻게 가치를 전달할 것이냐에 대한 인사이트는 누적되어 (한방에 만든 결과물보다) 10배 나은 결과물, 즉 결과물을 전달받을 대상이 10배 더 큰 가치를 느끼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결국 빠른 실행은 발견(Discovery)의 마인드셋 — 결과물을 전달할 대상이 어디서 가치를 느끼는지 내가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마인드셋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시적인 성과로 보일 수 있는 결과물에 집착하게 되고, 빠른 실행을 할 수가 없다. 이런 마인드셋이 없다면 엄청난 시간을 일하면서도 실질적인 성과가 적을 수 있다.
스타트업들은 발견의 마인드셋이 가장 잘 녹아들어져가 있는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최소한의 제품을 만들고 고객들에게 정성적인 그리고 정량적인 피드백을 받다보면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빠르게 알 수 있다. 제품도 직접 만들기 보다 고객과 인터뷰, 랜딩 페이지 테스트, 컨시어지 MVP를 통해서 고객이 어디서 가치를 느끼는지를 실험하고 인사이트를 얻는다. 그리고 그런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두 번째 사이클을 실행하고, 세 번째를 실행하고 하는 것을 반복하다보면 단 한번의 실행으로는 절대 만들어 낼 수 없는 정말 고객을 만족시키는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같은 시간 내에 10배의 성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고객이 뭘 원하는지 발견(Discovery)해 가며 실행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빠르게 실행하는 것이다.
겸허한 배움의 자세
발견의 마인드셋은 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 파레토 법칙은 업무 상에서 해석하자면,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노력의 20%에 발생하는 것을 얘기한다. 즉, 만들어야 하는 제품을 20%만 만들어 봐도 그 제품이 주는 가치는 80%는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규칙이 모든 업무에 100% 적용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때에도 발견의 마인드셋은 도움이 된다. 시간과 노력이 엄청 들어가야 진정으로 가치가 전달되는 프로젝트라면 나는 과감이 내가 할 업무에서 제외할 것이다. 10배의 효율은 더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을 발견하고 집중하는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결국 빠른 실행은 발견의 마인드셋을 통해서 10배 나은 성과를 내는 방법을 발견하겠다는 생각에 근간을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발견의 마인드셋은 내가 다 알 수 없다는 겸허한 자세에서 비롯된다. 학습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런 학습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장려한다. 20%, 30%의 개선이 아니라 10배의 개선을 찾도록 노력하게 만든다. 내가 안 해본 것들, 불편한 느낌이 드는 일이 있을 때, 내가 그걸 시도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값진 일인지 설득해 준다.
우리 문화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덜 강조되고 있다.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에 대해 답을 하는 것을 교육한다. 상하를 구분하고 상명하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을 저평가하고 우연한 성공에 열광한다. 지금껏 해왔던 일의 방식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발견의 마인드셋은 가지기 쉽지 않다.
KB국민은행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선포식의 사진을 보면서 회사 단위에서 발견의 마인드셋을 가지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 시대를 대표하던 회사들도 새로운 회사들에 의해 대치되면서 새로운 문화의 회사들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회사들은 발견의 마인드셋을 더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해당 콘텐츠는 김태현(tkim.co)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