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구성원들이 온 힘을 다해 만드는 제품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 나는 운이 나쁘게도 (반대로 또 좋게도) 제품의 성장을 책임지는 역할을 스타트업에서 맡아 왔다. 처음 스타트업에서 일할 땐 기획자라고 불렸는데, 요새는 Product Manager/Product Owner로 불리는 역할이다. 물론 각각의 역할이 다르지만, 이 점은 다른 글에서 다뤄보겠다.
Product Manager로서, 이제까지 크게 3개의 제품의 성장을 책임져왔다. 아티스트 SNS이자 재능 마켓이었던 “디스그라운드”, 데이터 기반의 레시피 추천 서비스 “해먹남녀”, 개인 자산 관리 서비스이자 마이데이터로 발전 중인 “뱅크샐러드”가 주로 담당해왔던 제품이다. 회사의 규모에 따라 초창기에는 제품의 모든 세부적인 기능과 고객 경험을 담당했지만, 회사와 제품이 커지면서는 하나의 큰 제품을 여러 세부 제품으로 쪼개어 그중 한 제품군의 성장을 도맡아 왔다.
나의 역할은 고객이 마케팅을 통해 제품을 처음 발견해 사용하기 시작하고, 자주 사용한 이후에 돈을 지불하는 모든 순간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각 순간 순간에서 중요한 지표를 설정하고 정량적으로 성장을 증명할 수 있는 지표를 끌어올리면서 제품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 받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처음엔 5만 다운로드도 안 되는 작은 서비스가 하나하나의 작은 가설을 증명해 나가며 조금씩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작은 보폭이 큰 한걸음이 되고, 큰 한걸음들이 모여서 달리는 제품이 되어 갔다. 제품이 성장하는 흐름으로 가기까지는 너무나 긴 시간과 수많은 실패가 뒤따르지만 제품이 성장 궤도에 오르면서 어느새 월간 100만 명이 사용하는 서비스로 순식간에 성장했다.
월 100만 이상의 사용자가 사용했던 해먹남녀와 뱅크샐러드의 사례를 통해 고객이 제품을 마주하는 단계별로 어떤 시도들이 유효하고 그렇지 않았는지 설명해보았다.
고객님, 어서 들어오세요!
고객이 처음 제품(해먹남녀)을 인지하는 단계에서 이탈하는 고객을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페이스북/구글 ads 등에서 앱 마케팅을 보고 구글 플레이/App store까지 갔지만, 다운로드까지 가지 않고 이탈하는 고객 비율이 높은 것을 발견했다. 당시 앱 평점은 3.8 정도에 불과했고, 이 평점을 올리는 게 다운로드 전환율을 높일 수 있을 거란 가설이 있었다.
평점을 높게 받으려면 서비스에 만족도가 높은 고객이 평점을 달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냥 무턱대고 평점을 받았다간 오히려 안 좋은 리뷰와 평점이 달릴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당시에 유일하게 데이터를 볼 수 있던 GA에서 서비스의 충성도가 높은(=리텐션이 높은) 사용자를 구분해보고자 했다. 레시피를 스크랩한 사용자, 검색을 사용한 사용자, 앱 내에 오래 머무는 사용자 등 여러 사용자를 대상으로 평점을 받고자 했다. 그중에서도 3일 연속 서비스에 접속하는 고객을 타깃으로 평점을 유도하는 팝업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 그렇게 해서 3.8점의 평점에서 4.3까지 2개월 만에 올릴 수 있었고, 7개월이 지난 시점에는 4.8까지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고객이 App store와 구글 플레이에서 다운로드로 전환하는 비율도 점차 개선되어 갔다. 좋은 리뷰와 높은 평점으로 인해 Organic download도 자연스럽게 늘어갔다. 고객이 기대하면서 제품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고객들이 들어올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매력적인 기능을 고민해야 할 때도 있다. 마치 음식점들이 맛있는 냄새를 풍기면서 센 화력으로 조리하는 모습을 길거리에서 보여주는 것과 비슷하다. 고객을 유인하는 것이다.
뱅크샐러드에서도 이런 고민을 많이 했는데, 2019년 3월에 출시한 통합 연금 정보 조회 기능이 효과가 좋았다. 고객이 뱅크샐러드에서 내가 현재까지 납부한 연금 총액과 나중에 돌려받게 될 연금을 조회하는 기능이었다. 많은 사람이 사회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많은 금액을 국민연금, 개인연금, 공무원 연금 등 연금에 지불하고 있지만 실제로 얼마나 내는지, 그래서 나중에 얼마나 돌려받을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통합 연금 조회 기능은 출시 직후에 반응이 굉장히 뜨거웠다. 통합 연금 조회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 신규로 가입하는 사용자가 빠르게 늘었고, 마케팅 효율도 굉장히 좋아서 CPI(Click per install) 단가가 역대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통합연금정보 조회를 위해 스크래핑하던 통합 연금포털 사이트가 급증한 트래픽으로 다운되기도 했다. 그만큼 고객들이 제 발로 들어와서 찾는 시그니쳐 메뉴였다.
고객님, 자리에 앉으세요
블로그에서 맛집이라는 내용을 보고 식당을 방문했다가 메뉴판이나 고객 대응에 실망하고 도망치듯 식당을 나온 경험이 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분이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온라인 제품을 마주하는 고객들의 경우, 이런 경험을 더 많이 할 것이다. 기대하고 앱스토어까지 가서 제품을 설치했더니 가입 과정이 복잡하거나 자꾸 에러가 나거나, 원하는 정보를 자주 찾기 어렵다면 고객은 자리에 앉지도 않고 떠나버린다. 그래서 온라인 제품에서는 고객이 메뉴를 주문하고 음식 맛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여정을 잘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제품을 만들 때, 항상 서비스 가입으로 “고객이 자리에 앉았다(Activation)”고 판단하지 않았다. 해먹남녀에서는 고객이 메뉴를 고를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하나의 레시피를 스크랩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래야 서비스에 안착하고 실제 요리를 할 때 서비스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뱅크샐러드에서는 금융자산을 연동하는 것까지 고객이 진행하여야 서비스를 쓸 준비를 마쳤다고 정의했다.
고객을 억지로 자리에 앉힐 수 없다. 고객이 앉고 싶어 할 만한 자리를 마련하고, 그 자리까지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해먹남녀에서는 레시피를 큐레이션 하여 고객이 좋아할 만한 요리 묶음을 메인에서 볼 수 있도록 제공하였다. 여러 레시피 중 하나라도 발견하면 레시피를 클릭하고 스크랩할 것이라는 가설이 있기 때문이었다. 야심 차게 제품을 개선하고 매일 운영을 통해 큐레이션을 업로드했지만 지표상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 고객들은 작은 썸네일로 요리를 보고 싶지 않다고 거부하는 듯했다.
그래서 반대로 하나의 레시피라도 정말 먹음직스럽게 고객에게 노출해보았다. 기존의 동영상 레시피 중에서 인기 있는 레시피의 가장 맛있어 보이는 순간을 gif로 썸네일을 바꿔보았다. 그리고 신규 유저의 경우, 레시피를 추천하는 로직을 변경하여 인기 동영상 레시피를 마주할 수 있도록 바꿔보았다. 그제야 신규 유저가 레시피를 보는 비율과 평균 스크래핑하는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재방문 비율이 오르고 Stickiness도 높아졌다. 점점 많은 고객이 자리에 차례차례 앉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고객님, 다음에 또 오세요!
고객이 온라인 제품에 방문하는 것과 다시 방문하는 것은 제품의 Core 기능과 주로 연관되어 있다. 잽을 몇 방 날리는 것만으로는 고객이 다시 오지 않는다. 내 경험상으로는 크게 한방을 고객에게 먹여서 감동을 주어야 고객이 다시 방문하기 시작한다. 이를 위해선 고객에게 제공하려는 핵심적인 경험을 개선해야 한다.
해먹남녀에서 리텐션 TFT를 리드하면서, 제품의 월간 방문 수(MAU)를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가설 검증을 시도해본 적이 있다. 리텐션을 높이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푸시를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당시에 해먹남녀는 매일 모든 고객에게 같은 내용의 푸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TFT 내에서는 이런 푸시 메시지가 고객이 자주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을 막는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에 따라, 가입 후 서비스를 이용한 기간별로 푸시 주기와 메시지 내용을 다르게 적용하면 장기적으로 제품의 방문 수를 더 높일 수 있을 거라는 가설을 정의하였다.
우선, 빠른 가설 검증을 위해서 가입 후 일주일 이내 신규 사용자와 기존 가입자로만 그룹을 나눠서 서로 다른 푸시 메시지를 보내보았다. DAU와 WAU 등 고객 방문 지표에 변화가 없었다. 일주일간 매일 보내던 푸시를 격일로 보내 보았다. 오히려 WAU, MAU가 줄어들었다.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유일하게 확인한 건, 푸시를 멈추면 방문자 수가 급감한다는 것이었다.
고객이 제품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 Core 문제에 집중해 자연스럽게 고객들이 더 자주 방문하도록 개선한 사례는 뱅크샐러드에서 주로 경험하였다. 뱅크샐러드는 가계부 서비스로 시작하여 자산 관리 서비스로 성장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고객 입장에서 핵심적인 경험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금융 자산을 등록하고, 관련 정보를 통합해서 볼 수 있어야 했다. 이 경험을 더욱 확장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고객이 연동할 수 있는 자산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방법이었다. 고객이 가진 보험, 연금, 자동차, 부동산, 저축은행의 자산들을 연결하는 기능을 계속해서 붙여나갔다. 그렇게 전체 금융사 중 고객이 연동할 수 있는 금융사의 커버리지를 85% 이상 다루게 되었고, 고객이 연동하는 금융사/자산이 많아질수록 더 자주 방문하고 오래 서비스를 유지하였다.
마무리하며
최근에 다시 제품 개선을 위한 여러 아이디어를 내고 빠르게 구현하면서 가설을 검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전에 만족하던 고객은 이미 기존 해결책에 익숙해져 버렸고, 새로운 것을 원한다. 이에 Product manager로서 새로운 고객의 문제와 니즈를 발견하고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들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새 가장 즐겁고 열정적으로 동료들과 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올해에는 고객들의 행복한 순간을 만들며, 고객과 함께 행복하고 성장하는 제품의 사례들을 많이 만들어갈 수 있길 기대한다.
장한솔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