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 드라마 아니었어?

작년 겨울을 강타했던 인기 드라마 스토브리그를 기억하시나요? 만년 꼴찌 재송 드림즈는 대형 선수를 공격적으로 영입하며 스토브리그를 달구지만, 모두가 해외로 가는 전지훈련을 국내로 가는 등 모기업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결국 구단 관계자들도 모른 채 팀 해체가 전격적으로 결정되지요. 물론 드라마답게 PF소프트라는 IT기업에 인수되면서 극적으로 부활, 그해 바로 한국 시리즈에 오르긴 하지만요.

 

구창모의 활약부터 와이번스 매각까지,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예언서(?)라 불릴 정도로 이상하게 적중도가 높다.

 

그런데 말입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를 똑 닮은 일이 현실에서 거짓말처럼 벌어졌습니다. SK 와이번스 야구단이 1353억이라는 가격으로 갑작스레 신세계 그룹에 매각된 것입니다. 불과 몇 달 전 스토브리그에서 대형 FA 선수를 영입한 데다가, 코로나 때문이긴 하지만 전지훈련을 국내로 간 것조차 비슷했는데요. 더욱이 드라마 촬영을 했던 경기장도 바로 와이번스의 홈인 SK행복드림구장. 정말 놀라운 평행이론 아닙니까?

 

이마트가 야구단을 탐낸 이유는?  

하지만 이번 매각 소식이 모두를 놀라게 한 이유는 단지 드라마 스토리와 닮아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번 매각은 그 배경부터가 예전 사례와는 분명히 달랐는데요. 과거 5차례 있었던 야구단 매각은 보통 모기업의 재정적 어려움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와이번스를 운영했던 SK텔레콤에겐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죠. 그래서 오히려 아무런 징후가 없었기에, 모두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일을 주도한 것으로 지목받는 것은 신세계 그룹의 정용진 부회장인데요. 매각 결정 자체도 SK그룹의 최태원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간의 담판으로 이루어졌다는 썰이 유력합니다. 실제로 와이번스 구단의 관계자들도 직전까지는 전혀 내용을 몰랐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대체 왜 신세계는 갑자기 야구단 운영에 나선 것일까요? 정용진 부회장은 그룹 내에서 이마트 사업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야구단 인수는 이마트의 재도약을 위한 전략적 행보의 일환으로 해석됩니다. 사실 그동안 국내 프로 스포츠는 그 자체 만으로는 수익성이 없어서, 기업 총수의 취미생활 혹은 일종의 사회공헌 활동으로 여겨지곤 했습니다. 그나마 최근 일부 K리그 구단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등을 통해 의미 있는 홍보효과를 거두었다고 평가받긴 했었죠. 하지만 프로야구는 철저히 국내용이라 그 파급효과가 제한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야구단은 그룹 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기 일쑤였죠. 그렇지만 정용진 부회장의 생각은 달랐던 걸로 보입니다.

오히려 정부회장은 야구단 자체가 충분히 마케팅 수단으로 매력적이면서, 특히 오프라인 이마트가 온라인 플랫폼들의 공세를 이겨낼 비장의 무기로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3가지 포인트가 있는데요. 우선 야구라는 종목 자체가 대표적인 도심 속 스포츠로 이마트와 핏이 잘 맞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프로축구와 달리 국내용이라는 한계는 분명 있지만, 내수시장 비중이 절대적인 이마트에게는 단점이 아닙니다. 더욱이 최근 조금 하락세이긴 하지만 국내 전체 프로 스포츠 중 총 관중 수로는 가장 압도적인 것이 프로야구이기도 하고요.

 

이마트는 작년에도 카트라이더와 콜라보를 하는 등 2030 세대 잡기에 진심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또한 프로야구가 MZ세대가 좋아하는 스포츠라는 점에 이마트의 또다른 노림수가 있습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대형마트는 미래고객인 2030세대의 이탈을 걱정해왔습니다. 하지만 KBO는 다릅니다. 팬층이 노화되어 가는 메이저리그와 달리 한국프로야구는 직관 관중의 60% 정도가 2030세대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이마트는 야구단 연계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펼쳐 2030세대에게 어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마지막으로 체험형 매장을 구성하는데도 야구단을 활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정부회장은 유통업을 엔터테인먼트 관점으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습니다. 그래서 대형마트의 경쟁자로 타사가 아닌 야구장이나 테마파크를 지목하기도 했고요. 실제로도 경기도 화성에서 테마파크 사업을 추진 중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야구단도 체험형 매장의 콘텐츠 중 하나로 적극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또한 야구장 자체도 라이프스타일센터로 진화시킬 예정이며, 장기적으로는 돔구장 건립까지 추진한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시험대에 오른 정용진식 혁신

그런데 알고보면, 이와 같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정용진식 신사업은 처음은 아닙니다. 스타필드, 삐에로쑈핑, 노브랜드, 데블스도어 등 정부회장은 많은 새로운 비즈니스들을 선보였고, 대부분 업계의 혁신 사례로 주목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해외 성공사례들을 단지 그대로 베낀 것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도 있었고요. 상당수 신사업들이 자리잡지 못하고 좌초하면서,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오명을 듣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이번 야구단 인수는 딱히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도전임에는 분명한데요. 국내외 유통 기업들 중 직접 프로스포츠 구단을 운영하면서 뭔가 성과를 낸 특별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야 말로 진정한 혁신을 보여주는 것이냐는 기대 어린 시선부터, 너무 무모한 도전 아니냐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다채롭게 나오고 있다는 것. 과연 올해 스토브리그 최고의 화젯거리가 해피엔딩으로 끝날지, 새드엔딩으로 끝날지 정말 궁금하네요!

 

김요한님이 뉴스레터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