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빠른 생애사 전략?
이제는 매 연말연초 시즌마다 우리나라의 필독서가 되어버린 <트렌드 코리아>(미래의 창) 시리즈. 작년 하반기에도 여느 때처럼 <트렌드 코리아 2021>이 출판되었는데요. 오늘은 본문에 제시된 여러 트렌드 키워드 중, 기업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되어 왔고, 또 활용할 수 있는 ‘빠른 생애사 전략’에 주목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빠른 생애사 전략’은, 진화생물학적 관점에 근거한 생애사 이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해당 관점에 따르면,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크게 ‘느린 생애사 전략’과 ‘빠른 생애사 전략’으로 나뉩니다. 예측이 가능한 환경에서는 성장하는 개인의 미래의 이익을 우선순위에 두어 ‘느린 생애사 전략’을 선택하는 반면, 예측이 불가능한 환경에서는 즉각적인 이익을 추구하게 됩니다. 예시로, 코로나19로 인해 장기적인 미래 예측이 불가능해진 경우, 사람들은 기존의 미래지향적이었던 삶의 방식을 바꾸어 보다 현재에 집중하는 ‘빠른 생애사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죠.
따라서 빠른 생애사 전략을 기업 경영에 적용한다면, ‘급변하는 소비자와 시장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적정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빠르게 변하는 환경 속에서 새로움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주기적으로 신선한 자극을 선사하는 브랜드 관리, 신제품 개발, 마케팅 전략을 기획하는 것 모두가 빠른 생애사 전략에 근거한 결과가 되는 것이죠.
#. ‘왜’ 빠른 생애사 전략인가?
(1) Z세대와 롤코라이프의 등장
90년대 중반 이후에 출생한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까지의 세대인 Z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다른 라이프스타일로, 기성세대와 기업들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자신의 삶을 즐기는 Z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은 일명 ‘롤코라이프’라고 불리는데요.
인기 있는 놀이기구 앞에 긴 줄이 생기듯, 젊은 소비자들은 유행하는 이벤트나 챌린지에 자발적으로 합류하여 소비합니다. 그리고 롤러코스터의 ‘예측할 수 없는 속도감’을 즐기듯이 상식적인 예측의 범위를 넘어서는 짧은 변주와 이색적인 협주를 찾으며, 하나의 유행이 끝나면 뒤돌아보지 않고 하차한 후 다음 유행으로 갈아탑니다.
코로나19가 도래한 후 나타난 대표적인 집콕 챌린지인 ‘달고나 커피 만들기’ 등의 ‘챌린지‘ 활동에 참여하거나, SNS 상에서 유래하는 ‘밈(Meme)‘을 활용해 SNS 콘텐츠와 광고를 만드는 것도 이 놀이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놀이의 유행 주기는 굉장히 짧으며, 그렇게 끝난 유행은 다른 새로운 유행으로 대체됩니다.
롤러코스터 라이프스타일은, 끊임없이 온,오프라인으로 상품을 포함한 콘텐츠가 제공되는 공급과잉의 상황에서, 콘텐츠와 콘텐츠 사이를 넘나들며 새로운 자극을 좇는 Z세대의 특성이 더욱 극대화된 결과입니다. 디지털 기술을 당연하게 접하며 자란 인류 첫 세대 ‘디지털 보헤미안’에 해당하는 Z세대에게, 직접 경험을 하지 않고도 온라인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위인 것이죠.
한편 Z세대는 이전 세대에 비해 부족함 없이 자라 삶의 기대 수준은 높은 반면, 경기 침체와 고용 불안 등으로 더 큰 불안을 안고 사는 세대로도 평가되고 있는데요. 더불어 코로나19와 같이 평범한 일상 속에 등장한 갑작스러운 위협 속에서, 현재 Z세대와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소비를 통해 짜릿한 재미를 얻고, 가볍고 재미있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며 해당 활동들에 직접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자발적 참여, 강력한 재미, 빠른 소비 주기’는 롤코라이프를 대표하는 특징입니다. 현 시점과 더불어 미래의 큰 소비층으로 떠오른 Z세대의 이러한 소비 문화는 공급을 담당하는 기업들로 하여금 ‘빠른 생애사 전략’을 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2) 빠른 피보팅 과정
원래 ‘축을 회전시키다’라는 의미를 가진 스포츠 용어인 ‘피보팅(Pivoting)’은, 기업 마케팅에서는 ‘소비자의 변화하는 행동 양식과 니즈에 반응해 새로운 방향으로 사업을 빠르게 수정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이나 전략‘의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현 시점에서는 소비자가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빠르게 파악하여 변화하는 기업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빠른 사회 변화의 기류와 코로나19 등의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제품과 전략, 마케팅 등 다양한 경영의 모든 국면에서 여러 가설을 세우고 끊임없이 테스트하며 그 방향성을 상시적으로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는, 중요한 것은 ‘얼마나’가 아니라 무엇을 ‘축’으로 하여 바꾸느냐의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핵심 역량, 하드웨어, 타깃, 세일즈의 네 가지 피보트 유형은 이미 다양한 스타트업 기업들의 성공 전략이 되기도 했습니다. 소비자의 니즈, 소비 트렌드, 그리고 기업의 현황에 맞는 거침없는 피보트 설정과 변화가 중요한 시점입니다.
#. 빠른 생애사 전략이 활용된 기업 마케팅 사례
(1) 숏케팅의 진수, 무신사
빠른 생애사 전략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숏케팅(Short+Marketing)‘인데요. 매일 제품과 콘텐츠가 쏟아지고 트렌드의 변화 주기도 거듭 빨라지고 있는 지금, 100% 완벽한 마케팅은 찾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전략을 바로바로 시도하면서, ‘치고 빠지는’ 식으로 이색적인 챌린지와 재미있는 이벤트의 ‘물량 공세’ 숏케팅이 여러 기업 마케팅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숏케팅을 잘 활용하고 있는 기업이 바로 핫한 온라인 의류 쇼핑몰 무신사입니다. 무신사는 2019년 공개한 콘텐츠 수만 해도 6만 6천여 개에 달하며, 유튜브 채널 ‘무신사TV’를 출범시켜 스트릿패션, 스타일링 팁, 브랜드 스토리 등 다양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단지 특정 아이템을 중점적으로 판매하려고 하기보다는, ‘다양한 소비자가 요구하는 다양한 니즈’에 대비하며 ‘대박’ 하나를 터뜨리는 물량 공세 숏케팅이 좋은 결과를 내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더불어 하이트진로 등의 이색적인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며, 새롭고 재미있는 변주를 통해 롤코라이프를 즐기는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키며, 효과적인 마케팅 역량을 뽐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전략적 마케팅은 무신사로 하여금, 신발 쇼핑몰로 출발해 여러 패션 아이템을 아우르는 플랫폼으로 성장하여, 최근 공유 오피스인 ‘무신사 스튜디오’, 오프라인 문화 공간 ‘무신사 테라스’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도록 하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2) 화제의 별칭 및 B급 감성의 활용, 농심 RtA 라면 / CU PB상품
국내의 대표 라면회사 농심 또한 빠른 생애사 전략을 활용한 제품 마케팅으로 실적을 올렸는데요. 농심의 ‘앵그리 RtA라면’은 한때 온라인 상에서 외국인이 ‘너구리’를 거꾸로 보고 ‘RtA’로 읽었다는 사연에서 시작되어, 너구리의 별칭이 되었습니다. 이에 농심이 화제의 별칭을 너구리 한정판 신제품의 이름으로 3배 더 맵게 출시했고, 단 2주만에 400만 개가 팔리며 당시 농심 매출의 큰 부분을 견인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편의점 CU에서 진행했던 ‘단군신화 상품 이벤트’도 빠른 생애사 전략 마케팅의 좋은 예시가 됩니다. ‘대충 의식의 흐름대로 기획한 듯한’ B급 감성의 PB상품은 많은 소비자들의 호응을 받았습니다. 편의점과 단군신화라는 다소 낯선 조합, 계절이나 기념일과도 관련 없는 이벤트의 타이밍, 그리고 단군신화에 끼워 맞춘 듯 제각각인 상품(cu 호랑이라떼, 곰표 오리지널 팝콘, 쑥떡쑥떡 바 등)으로 구성된 해당 이벤트는, CU 관계자에 따르면 일반적인 프로모션이 2~3달에 걸쳐 기획되는 것에 비해, 단 2주만에 최대한 힘을 빼고 기획되었다고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빠른 생애사 전략이 활용된 단발적인 기업 마케팅 캠페인은 새로운 소비자들에게 ‘트렌디한 젊은 기업’, ‘열일하는 기업’의 인상을 줍니다. 세대가 공유하는 재미와 트렌드를 파악하고 짧은 캠페인을 기획해 운영하는 방식으로, 현재 많은 기업들이 급변하는 소비자와 시장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급변하는 사회 속 소비자 니즈 포착, CJ오쇼핑 홈쇼핑
코로나19가 도래한 후 우리가 일상에서 되찾고자 하는 것들에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바로 ‘공연문화’일 것입니다. CJ오쇼핑은 바이러스로 인해 급변한 사회의 트렌드와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포착해 국내 유명 밴드 자우림과 함께 ‘포도와 음악사이’라는 이름의 자사 홈쇼핑 방송을 진행했습니다. ‘자줏빛 비가 내리는 숲’이라는 의미를 가진 밴드 자우림의 빛깔과 어울리는 상품 거봉 포도 판매를 기획하여, 방송이 기존의 홈쇼핑 양식이 아닌 하나의 공연으로 보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더불어 코로나19의 기승으로 공연을 누리기 힘든 소비자들과 판로가 막힌 포도 농가 모두에게 활력이 되는 방송을 기획하며, 생방송 라이브톡 시스템을 통해 즉각적으로 시청자들의 반응을 수용하여 방송에 반영하기도 했습니다. 소비자의 니즈에 맞춘 새로운 커머스의 모습으로, 빠른 생애사 전략의 다양한 활용 방법을 보여준 것입니다.
(4) 최종 선택권은 소비자에게, 틱톡
숏폼 콘텐츠의 대표 플랫폼, ‘틱톡‘ 또한 빠른 생애사 전략을 경영에 도입했던 기업입니다. 2016년에 출시되었던 틱톡은 처음부터 큰 인기를 얻었던 서비스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중국에는 이미 인지도 높은 숏폼 콘텐츠 플랫폼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이에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는 16년 5월부터 17년 6월까지, ‘시과’, ‘틱톡’, ‘훠산’ 세 개의 서비스를 출시합니다. 각 플랫폼은 모두 틱톡과 같이 짧은 영상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영상의 길이와 내용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출시 초기 이용자 수가 비슷했던 세 어플은 이후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현재 틱톡은 세계 최대 숏폼 영상 플랫폼으로 대두되었으며 시과, 훠산과 서비스를 통합했습니다.
바이트댄스는 처음부터 완성된 서비스를 내놓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서비스 중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곳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그 집중할 브랜드의 최종 선택은 소비자가 하도록 했습니다. 고객이 어떤 서비스를 더 선호하는지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지를 빠르게 제공하여, 기업이 일정 수준의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새로움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짧은 주기로 신선한 자극을 선사하는 전략을 취한 것입니다.
#. 2021 트렌드를 넘어
오랜 시간 당대의 트렌드는 사회와 문화를 바라보는 창으로 기능해 왔습니다. 앞서 소개한 ‘빠른 생애사 전략’ 또한 2021 트렌드로 소개된 만큼, 향후 꼭 비즈니스나 마케팅 분야에서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문화 현상에서도 발견되거나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더이상 기업이 일방향적으로 마케팅을 주도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빠른 생애사 전략이 활용된 많은 마케팅 사례와 같이, 사회와 문화, 그리고 소비자 개인은 빠른 속도와 다양한 아이디어로 마케팅 캠페인과 트렌드를 주도해 나가고 있습니다. 2021년 트렌드 키워드를 넘어, 앞으로도 소비자들이 기업과 함께 트렌드를 통해 보다 건강한 영향을 주고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Reference
2021 트렌드 코리아 (김난도 외, 미래의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