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획자로 입사하게 되었는가?
기획자로 입사할 생각은 없었다. 첫 시작은 창업이었고, 두 번째는 그로스 해커였다. 창업의 경험은 기획자로서의 역량에 기여할 순 있었지만, 경력이라고 하기에는 몹시 부족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경험이 있었어도 여전히 나는 주니어고, 감히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고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겸손이 아니라 정말이다. 나보다 훨씬 훌륭하신 기획자분들이 많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스럽다.
기획자로 지원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여러 일에 관심을 가지고, 늘 새로운 것이나 아이디어를 떠올리길 즐겨했고, 늘 새로운 걸 배우려 하던 나의 성정이 기획자가 되면 잘 어울리겠다 생각했기 때문에 지원했다. 내가 기획 업무를 잘한다거나, 특출 난 경험이 있어서 지원하게 된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이 글을 혹시라도 다른 선배 기획자분들이 읽으신다면 가감 없이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주셔도 좋다. 기획자로 어떻게 입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정답을 찾는다면. 이 글은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어느 곳에도 정답이란 건 없기 때문에 여기서 다뤄보려는 건 내가 어떻게 기획자가 되었는지, 그래서 어떤 업무들을 하는지를 공유하는 것이다.
이번 글은 입사하기까지의 과정을 적어보았다.
글의 순서는 아래와 같다.
1. 포트폴리오 만들기
2. 관련 역량 쌓기
3. 면접 : 조리있게 할 말 다하기
4. 입사 후 업무 파악하기
막막했던 처음
신입으로 기획자를 뽑는 경우는 생각보다 없다. 나의 경우 원티드를 통해서 지원하곤 했는데, 포트폴리오를 첨부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처음엔 너무 막막했다. 기획자로서의 경력은 없었기 때문에 내 경력을 녹여낸 포트폴리오는 의미가 없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한 과정에 다른 직무의(특히 디자이너) 포트폴리오를 보고 아이디어가 생겼다.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 중 특히 기존 서비스를 개선, 제안하는 포트폴리오를 보고, 기획자 포트폴리오도 그렇게 만들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1. 포트폴리오 만들기
말이 거창해서 역 기획이지 사실 그냥 간단하게 서비스 구조를 도식화하고, 몇몇 특정 화면들을 설계해보는 수준이었다. 이조차도 처음에는 막막해서 인터넷에 기획 산출물, 기획 프로세스라고 검색해서 파악했다.
나는 포트폴리오에 크게 3가지를 담으려 했다.
- FlowChart 및 IA(Information Architecture) : 전체적인 서비스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작성
- 와이어프레임(WireFrame) : 서비스를 시각화하고, 협업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보여주기 위해서 작성
- 화면 설계서(StoryBoard) : 최종 결과물로 와이어프레임, 기능 정의, 프로세스 등 모든 내용을 담아 넣은 문서로써 현업에서의 업무수행 역량을 보여주기 위해서 작성
3가지를 작성하는 것이 시간도 많이 들고, 어려워 보이고, 만들어야 할 산출물의 분량이 많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하나의 서비스를 다 분석해내려면 양이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그중에서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기능들만 간추려서 10 ~ 15장 정도의 분량으로 만들었다. 대부분의 작업은 핸드 스케치와 XD로 작업했으며, 화면 설계서는 PPT로 작업한 후 이미지로 출력하였다.
2. 관련 역량 쌓기
“원래는 개발자가 되고 싶었다…”
기획자는 혼자서 무언가를 뚝딱 만들어내는 직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특히, 디자이너와 개발자와의 협업을 통해 하나의 서비스가 탄생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기획자의 업무에 대한 서적을 읽고, 개발 지식을 쌓기 위해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했다. 디자인의 경우에는 포토샵과 일러스트 같은 디자인 툴도 써봤다. 이렇게 배운 것들을 토대로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 목업과 같은 산출물을 만들기도 했고, 포트폴리오 자체도 포토샵으로 만들었다. 물론 디자이너나 개발자에 비하면 한참, 정말 한참 능력도 부족하고, 인사이트도 부족하지만 적어도 각자가 사용하는 용어를 이해하게 되었고 이러한 점을 토대로 면접 때 협업 역량에 대해 어필할 수 있었다.
3. 면접 : 조리 있게 할 말 다하기
“내가 면접을 잘 본건가..? 싸우고 나온 것 같은데…”
이상하게 면접 때마다 싸움 아닌 토론을 하고 왔다. 매 면접이 짧아야 1시간이었고, 그래서 면접을 하나만 봐도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리곤 했다. 면접 질문은 주로 간단한 소개와 포트폴리에 오 대한 내용들이었는데, 대부분의 경우 포트폴리오에 대한 의견이나 포트폴리오에 대한 비판들이 주였다. 내가 한 일과 내가 만든 산출물에 대해서 제일 잘 알고 있는 건 나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진 몰라도 면접관들이 집요하게 물어보는 것들에 대해지지 않고 끈질기게 내 생각을 얘기했었다.
나중에 최종적으로 입사하고, 이제는 사수가 되어버린 당시의 면접관에게 그때의 일들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물론 당시에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과정이나 대화하는 과정을 파악함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이나 프로젝트를 리드할 수 있는가를 파악해보고자 함이었다 한다. 결국 끈질기게 내 의견을 어필하려 했던 것들이, 다소 거칠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건 나의 표현처럼 싸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주장을 적절한 근거를 통해서 표현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단 이야기다.
4. 입사 후 업무 파악하기
“생각보다 훨씬 거대한 서비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서비스를 이용자의 관점에서만 보다가 직접 내부로 들어오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더욱이 나는 신입이었기 때문에 열정이 넘쳐났다. 드디어 기획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내가 직접 서비스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역량을 증명해보고 싶었다. 물론 성급했던 생각이었고, 당연하지만 신입이었던 내게 거창한 업무는 주어지지 않았다.
입사 후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첫 번째, 서비스 도메인에 대한 이해이다. 회사가 어떤 사업을 하고 있고, 어디에 우리 고객들이 있는지, 우리 고객들은 어디에 돈을 지불하려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 그냥 1달 동안 철저히 이용자의 관점에서 서비스를 이용해보았다. 모든 기능들을 하나하나 다 뜯어서 써보고, 정책 내용을 유추해보았으며, 왜 이러한 화면으로 구성이 되었는지, 어떤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을지를 그려보았다. 그리고 내가 써본 각 기능들에 대한 정책서와 화면설계서를 찾아보고 정리했다. 그렇게 서비스를 파악하고 나자 도메인에 대한 지식이 조금씩 생겼고, 서비스의 Flow나 주요한 지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팀에 대한 이해이다. 팀원의 기본적인 인적사항 뿐만 아니라, 어떠한 직책으로 어떠한 업무를 수행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기획을 함에 있어서 누구와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와는 별개로 1:1 미팅도 진행하곤 했다. 처음에는 말을 붙이기 다소 어려웠으나, 생각보다 팀원들은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는 것을 좋아했고,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비스 히스토리나 각 팀원들이 생각하는 불편한 점, 개선사항, 업무 수행 방식 등을 파악할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다.
정리
이 글은 철저히 주관적으로 입사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입사 후 서비스에 적응하기 위한 과정을 정리해본 내용이다. 무엇이든 정답은 없지만, 기획자로 시작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할 때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1. 경험이 없다고 겁먹지 말자. 포트폴리오는 꼭 경험이 담길 필요가 없다. 서비스를 만들어보자!
2. 기획자는 혼자서 존재하지 못한다. 협업 대상자를 이해하기 위한 공부를 하자!
3. 기획자 면접 때 많이 부분은 협업 대상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역량, 그리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칠 줄 아는가이다.
4. 입사 후 성급하게 굴지 말자. 일단 서비스 도메인을 철저하게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June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