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체크하자”
한국은 언론 신뢰도 바닥인 나라다. 전 세계에서 인터넷이 가장 발달한 만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도 많지만, 신뢰할 수 있는 정보는 많지 않다. 그래서 이젠 뉴스 기사가 나와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직접 찾아보고 상황을 지켜보며 ‘팩트 체크’하는 게 요즘의 문화다.
소위 MZ세대라고 하는 밀레니얼과 Z세대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끼리는 ‘숲속 각’을 재라고 한다. 밈처럼 시작된 인터넷 용어인데 기원을 설명하기엔 너무 구구절절하고, 쉽게 말하자면 ‘진실이 명확히 드러날 때까지 가치 판단하지 말고 기다리자’는 의미다.
밀레니얼 세대는 이렇게 가짜에 민감하다. 최근 드라마 더킹에서 지나친 PPL이 논란이었다. 드라마 몰입을 해칠 정도로 제품 광고인 게 티가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유재석의 놀면뭐하니에서 대놓고 PPL이라고 언급하고 홍보한 건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다. 비단 밀레니얼뿐 아니라 우리는 ‘허례허식과 가짜’에 지친 탓이다.
기업들의 조직 문화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배달의민족이 내놓은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법’이 유행했었다. 그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고 조직 문화를 알리는 좋은 선례가 된 바 있다. 그런데 그것도 옛날 일이다. 요즘 잘 나가는 스타트업들은 다 비슷한 십계명 등등을 내걸고 있다. 우리 조직은 수평적이고, 서로 신뢰하고,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하고 저쩌고~ 모든 기업이 비슷한 얘기를 한다.
그들 문화가 ‘가짜’일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밀레니얼이 기업의 조직 문화 홍보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뻔하고 하나마나한 이야기에 지쳐 있다. 대기업 채용 페이지에 적혀 있는 핵심 가치 세 가지들, 열정이니 혁신이니 그런 이야기를 듣고, 그 회사 사무실 분위기가 어떨지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밀레니얼은 팩트 체크를 원한다.
직원 인터뷰 식상하다
조직 문화를 홍보하는 방안으로 Employer Branding도 한창 유행이다. 회사를 다니고 있는 종사자가 직접 자신의 입으로 회사에 대해 이야기하게끔, 직원을 인터뷰하는 게 가장 흔한 방식이다. 기업 계정 블로그를 만들어서 각 직무들 인터뷰하고, 리얼 후기(?)도 물어본다. 혹은 각자 직원들 개인 SNS나 블로그에 회사 이야기를 은근히 녹여내기도 한다.
그런데 토스 외에 제대로 하고 있는 회사를 못 봤다. 조직 구성원 인터뷰해서 올리면 사람들이 믿는가? 잡플래닛에 빤히 기업 인사 담당자가 시킨 후기들을 읽으며 그걸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마찬가지로 겉모습만 갖춘 인터뷰는 크게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 토스는 어떤가, 팀원들의 브런치나 미디움, 블로그 등에 올라오는 글과 토스 블로그의 글, 언론 보도의 인터뷰 내용, 세미나/발제에서의 내용이 모두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토스에 지원하는 사람들에게 토스가 어떤 회사인지 설명하도록 부탁하면 모두가 비슷한 대답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토스는 조직 문화가 발현된 실체를 이야기한다. 조직의 구조와 체계, 팀 편성, 성과 평가, 채용, 정보 공유 시스템, 온보딩 등 입사하자마자 겪게 되는 조직의 실체를 낱낱이 공개한다. 말로만 수평적인 게 아니라 그들의 구조와 체계를 보면 알 수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본인의 의견을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어필하는 게 먹히겠는가?
‘우리는 수평적인 조직으로 직급에 관계없이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공유합니다’ 이런 말을 누가 믿겠는가? 말로는 누가 못하나.
실제론 또라이 팀장 잘못 걸리면 회사가 어떻든, 그 팀은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일하게 된다. 개인의 성향과 변수를 통제할 수 있는 건 일차적으로 ‘구조와 체계’다.
조직 문화를 경향성으로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조직은 수평적이에요, 다들 능동적이에요, 서로 신뢰하는 문화가 있어요 하는 건 그냥 경향일 뿐이다. 천재 100명을 모아놓거나, 협업 왕 100명을 모아놓아도 조직 규모가 커지면 경직되고 협업이 어려워진다. 최고의 인재를 뽑고 무한한 자율을 보장한다고 해서 협업이 알아서 잘 되는가? 당연히 아니다. 재택근무를 해봤으니 다들 경험해보지 않았을까, 공통된 협업 원칙 없이는 아무리 일 잘하는 사람을 모아놔도 알아서 협업이 잘 이뤄지진 않는다.
퍼블리는 협업 원칙과 체계를 잘 풀어내는 사례 중 하나다. 퍼블리에서는 회의 시작 전에 회의 아젠다, 협업 원칙들을 모니터에 띄우고 시작한다고 한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조직 문화의 ‘선언’ 행위는 구성원들의 실제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내가 그렇게 행동해야만 하는 기준과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회의 때마다 조직 문화를 언급하지 않고, 배민 따라 하며 포스터에다가 조직 문화 정리해두고 보지도 않는 스타트업이 얼마나 많을까. 조직 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의 영역이지만, 눈에 보이게 만들어야만 문화가 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허례허식이 없는 담백한 조직 문화로 패스트 캠퍼스(이하 패캠)를 꼽아볼 수 있다. 패캠은 합리적으로 조직이 직원에게 줄 수 있는 것과 ‘줄 수 없는 것’을 먼저 밝힌다. 패캠에서 업무 강도가 강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대신 그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권한 위임을 경험할 수 있다. 이 회사에서 직접 책임지고 성과를 스스로 만들어내 봐라. 이보다 합리적일 수 있을까?
단점이라면 토스도, 패캠도 일이 빡세다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토스에는 스트라이크 제도가 있어서 실력이 부족하면 경고를 받고 쫓겨날 수도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는 기사도 난 적 있다. 패캠도 일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 회사에 지원하지도 않을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해결하려고 집중하기보단, 회사의 단점을 알면서도 매력을 느끼고 지원하는 사람들에 집중하는 게 맞는 방향이지 않나 싶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1. 뻔한 인터뷰 대신 강력한 Align과 인센티브를 기반으로 개인 채널의 발화를 유도한다.
2. 중요한 건 조직 문화가 발현된 구조와 체계다.
3. 실제 업무 현장에서 언급되고 사용되어야 진짜 문화다.
4. 회사가 줄 수 없는 것을 명확히 한다.
물론 홍보와 브랜딩을 위해 조직 문화를 다듬는 건 아니다. 조직 문화의 기본은 일을 더 잘하고 성과를 내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조직 문화는 조직 건전성을 결정짓는다. 불건전한 회사를 오래 다닐 직원은 없다. 뛰어난 사람일수록 그렇다.
나는 기업의 조직 문화를 판단할 때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본다.
1. 조직 문화가 발현된 구조와 체계
5가지를 보면 조직 문화의 실체가 드러난다. [ 채용, 평가/보상, 팀 편성, 의사소통 구조, 의사결정권 ]이다. 기업이 하는 말을 듣지 말고,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려고 한다.
[ 채용 공고 ]를 대충 적는 기업이 있고, 주요 과업과 직무의 특징, 기대하는 바, 우대 사항을 꼼꼼하게 자세히 적는 기업이 있다. 또한 직무 포지션만 설명하는 게 아니라 기업의 특징과 현재 사업 방향성, 조직 문화도 함께 이야기하는 기업이 좋은 회사다. 채용 담당자의 업무 퀄리티 수준은 그 회사의 기준이 된다. 자기보다 못하는 사람은 뽑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평가/보상 ]은 기업이 중요시하는 가치를 드러낸다. 성과를 어떻게 보상하는지, 어떤 성과에 어떻게 보상하는지를 드러낸다는 건 구성원에게 목표 지점을 찍어주는 것과 같다. 어디를 보고 달려야 할지, 어디를 보고 달리는 사람들을 뽑고자 하는지 알 수 있다.
[ 팀 편성은 업무 방법론 ]과 함께 보아야 한다. 조직도가 어떻게 생겼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팀 간에 어떻게 협업하는지가 중요하다. People팀 담당자가 뛰어난 기업은 팀 간, 개인 간 협업 방식들을 구조와 체계로 보여준다. 정례화된 회의 방식, 선언되는 협업 원칙들, 의견을 나누는 Sprint 등의 회의 방법론, 사일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매트릭스 형 구조, 협업만을 지원하는 코치/담당자의 존재 여부 등등 실존하는 구조와 체계를 본다.
[ 의사소통 구조 ]는 사내 정보들이 어떻게 아카이브되고, 공유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기업에서 의사소통이란 크게 과업(Task)에 대한 정보와 회사 자체에 대한 정보(매출, KPI, 회사 내규 등)를 주고받는 걸 말한다. 업무 보고 체계가 어떻게 되는지, 매주 정기 회의는 어떻게 하는지, 회사 위키나 아카이브 파일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의사결정 사항을 어떻게 공지하는지 등을 본다.
[ 의사결정권 ]은 우선적으로 대표자(CEO)를 봐야 한다. CEO가 공동의 협업 원칙을 우선시하는지, 자신의 신념을 우선시하는지에 따라 조직 경영 스타일이 갈리는 것 같다. 웨딩북에서는 조직 문화에 ‘헌법’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대표도 그 원칙에 따른다고까지 얘기한다. 이렇게 CEO의 Ego를 최소화한 기업들이 좋은 조직 문화를 가질 수 있다.
또 다른 얘기로, 조직 구성원들의 개인 블로그 등에 프로젝트 회고와 인사이트가 있는지 살펴보면 권한 위임 수준을 추측해볼 수 있다.
* 면접 때 내가 기업에게 물어보는 몇 가지 질문들
– 회의 시간에 누가 제일 말을 많이 하나요?
– 최근에 주니어가 발의했던 아이디어가 무엇이 있나요?
– 스스로 마이크로 매니징 하는 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등등
2. 해당 조직 문화의 기원을 파헤친다.
무슨 조직 문화가 있는지보다 중요한 건, 왜 하필 그 조직 문화인지다. 일례로 페이스북에는 Focus on Impact라는 핵심 가치가 있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을 때 어떤 과업을 먼저 수행할지 결정해야 한다. 그럴 때 페이스북은 해당 과업으로 인한 Impact가 가장 큰 과업에 집중한다. 많은 기업들이 ‘고객 중심’이나 ‘성과 중심’, ‘Focus on Impact’를 강조한다. 하지만 이렇게 그냥 임팩트에 집중한다는 말만 들으면 일반인들이 무슨 생각을 떠올릴 수 있는가? 그냥 “아 그렇구나. 뭔가 ~~한 느낌이네”라고 이해하고 만다. 중요한 건 그 조직 문화가 현장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다.
Focus on Impact라는 핵심 가치의 기원을 추측해볼 수 있었던 경험을 한 적 있다. IT 개발 조직에는 I.C.E라는 의사결정 방식이 있는데 다양한 아이디어 중 Impact, Confidence, Ease라는 기준을 두고 개발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식이다. Confidence는 발안자의 확신이고 Ease는 과업의 수행 난이도를 뜻한다. 그런데 실제로 I.C.E를 하다 보면 실무자 입장에서 수행 난이도가 낮은, 처리하기 쉬운 과업을 선택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팀 안에서 ‘Ease보다는 Impact에 집중해야 실제로 성과가 날 것이다’는 인사이트를 얻었다. 문제는 그러고 그냥 ‘그래 맞아’하고 넘어갔을 뿐 조직 문화로 정립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 조직 문화의 기원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들어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드러난다.
대부분 인사/문화 담당자 채용 공고에 해외 Best Practice 리서치가 주요 업무로 포함되어 있다. 해외 Best Practice를 벤치마킹해서 Culture팀 담당자가 만들어낸 가짜 조직 문화라면 이론적인 얘기만 할 것이다. 혹은 대표자의 신념으로 설명할 것이다. 조직 문화는 CEO의 일하는 방식을 받아 적은 게 아니고, Culture 담당자는 CEO의 확성기가 아니다. 실제 조직의 구체적인 업무 현장 이야기로 설명하는 조직 문화만이 진짜다.
바꿔 말하자면…
진짜 조직 문화는 실제로 업무 현장에서 사용되는 언어와 표현으로 시작되어야 하고, 개인의 경향성을 통제할 수 있는 구조와 체계로 발현되어야 한다. 그냥 사무실 벽 한쪽에 붙여놓는 십계명 포스터로 끝나지 않으려면 말이다.
유디V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