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기획은 보통 브랜드의 향후 몇 개월 또는 몇 년간의 비즈니스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업무 중 하나입니다. 제품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시장에 대한 이해는 물론 디자인, 기술, 미래예측 등 다방면의 정보와 통찰을 요구하기 때문에 기업의 입장에서도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의 시장 영향력은 기업의 이미지를 좌우하기도 합니다. 

상품 기획 과정에서 많은 기업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문제를 바라보고 풀어내는데, 국내의 대표적인 제조기업인 삼성전자와 엘지전자의 제품을 토대로 상품기획의 성패를 꼽아봤습니다. 

 

차별화 전략

 

개인적으로 후배들에게 많이 하는 표현 중 하나가 바로 “차별화는 남들과 다른 것을 찾는 게 아니라 남들이 하는 걸 우리도 전부 할 줄 아는데, 여기에 1가지를 추가하는 것이다”입니다. 

제품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경쟁사와의 구분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많은 기업들은 차별화 전략에 대해 집중하고 고민하곤 하지만 정작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제품 자체가 가진 본질적인 성능 또는 가치가 뒷받침되는지에 대해서 망각하는 것이죠.

많은 제품들은 이러한 부분들을 놓치고 시장에 등장하는 경우들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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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지전자의 경우 이러한 차별화 전략에 대한 자충수를 많이 둔 기업 중 하나인데, 대표적인 케이스를 꼽아보자면 LG G5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제품이 선보일 시절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모듈화에 대한 고민이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구글의 프로젝트 아라가 있는데 스마트폰의 교체주기를 연장하고 고객이 원하는 하드웨어 스펙을 선별적으로 골라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폐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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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많은 기업이 모듈화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지만 시장에 내놓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하드웨어의 호환성 문제가 있을 것이며, 장기 사용자들의 베이스 시스템(본체)이 충분한 내구성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이 치명적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액세서리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가 너무 크다 보니 BEP 산정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었죠.

실제로 엘지전자의 G5의 모듈은 펫 머신부터 카메라모듈, B&O와 협업한 DAC모듈, 배터리팩 등 다양하게 선보였지만 실제로 출시한 액세서리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거기다 수익성이 낮다 보니 개별 모듈의 가격이 지나치게 비싼 데다 호환성 문제도 해결이 되지 않았으며 모듈 삽입 공간의 유격 문제, 배터리 충전단자의 이동으로 인한 불편함 등 많은 것들을 희생시켜야 했기 때문에 더욱더 고객들에게 외면받는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새로운 시장 발굴

 

엘지전자의 어이없는 차별화 전략은 다양한 분야에서 도입되지만, 비교적 성공적인 사례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제품을 꼽아보자면 스타일러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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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지전자에서 사실상 새롭게 시장을 발굴해냈다고 봐도 좋은 스타일러 제품은 의류관리 전용 옷장입니다. 

옷의 먼지를 털어내고 냄새를 제거해줌과 동시에 간단한 오염까지 해결해주기 때문에 초기 시장 진입은 더뎠지만 미세먼지가 많은 시장을 중심으로 빠른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고급 음식점 등에서 발 빠르게 도입하면서 뜻하지 않은 바이럴 효과까지 얻어내며 승승장구하는 스타일러는 시장 우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수많은 특허로 무장하고 경쟁 제품의 공세를 방어해내고 있습니다. 

극단적 차별화의 결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사실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고 그에 맞는 완전히 다른 제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혁신적인 제품으로 보는 것이 맞겠지요.

옷장에 갑자기 아이폰 같은 존재가 등장한 셈이니 어떤 의미로는 최근 수년간 가전 분야의 가장 혁신적인 카테고리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사용자 경험

 

삼성전자는 첫 제품의 완성도가 낮기로 유명합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스마트폰인 갤럭시도 최초 출시 당시에는 처참한 완성도로 인해 많은 고객들에게 외면당했던 경험이 있고, 이제는 우스갯소리로 갤럭시는 짝수 넘버를 사야 한다는 말까지 심심치 않게 돌아다니곤 합니다. 

가전시장에서의 삼성 역시 첫 번째 제품 대다수는 완성도가 낮은 경우가 많았습니다만, 삼성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 중 하나는 빠르게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강화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여기에 실질적으로 고객이 가려워할 만한 요소를 찾아내 충족시켜주는 것에는 도가 텄다고 봐야 합니다. 

다이슨의 한국 침공 이후 국내 청소기 시장은 완전히 급변했습니다. “에어와트”라는 단위가 보편화되었고, 무선이 아닌 청소기는 구닥다리 취급받기 시작했습니다. 

엘지전자의 코드 제로 시리즈는 승승장구하는데, 삼성은 계속해서 울상을 짓는 상황이 이어졌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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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삼성이 당시에 선보인 파워 건 제품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의 첫 제품은 으레 볼 수 있듯 뭘 만드는지 생각정리를 못하고 만든 인상이 강합니다. 

이 제품도 마찬가지로 애매한 성능에 이상한 접이식 모듈을 집어넣으면서 손잡이 부분의 무게가 크게 증가해 사용자의 피로도를 크게 높였는데요. 추후 전체적인 소비자 평가지표가 나오면서 나락으로 떨어진 제품이기도 합니다.

삼성은 이러한 사용자 경험에 대한 다각도의 데이터 수집을 이어갔는지, 갑자기 파워 건 브랜드를 버리고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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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두가지 제트 얘네들은 뭔가 힘줄 때 제트를 잘 씁니다. 

삼성 제트라는 무선청소기를 다시 론칭했는데요. 재미있게도 삼성전자가 애니콜 브랜드 시절 글로벌 스탠더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사용한 이름이 바로 제트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제트 론칭 직후 아이폰이 발표되면서 제트는 관짝으로…)

어쨌든 삼성은 직접 무덤에 집어넣어버린 파워 건의 단점인 무게와 흡입력 문제는 물론 먼지통의 관리까지 다방면에서 경쟁사를 압도하는 수준으로 완성도를 끌어올려 시장에 재진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엘지전자는 별다른 차이 없이 몇 년째 코드 제로 A9에 무려 “씽큐”를 붙여서 내놓았고, 다이슨도 소형화, 경량화 제품이 등장했습니다만 이미 국내 브랜딩에 타격을 입은 상태다 보니 공격적인 영업 마케팅을 등에 업은 삼성 제트는 확실히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죠.

이 외에도 삼성전자의 위기극복 사례는 대단히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옴니아 시리즈의 흑역사를 갤럭시S로 지워내는 데 성공했으며, 끝끝내 스타일러스 펜을 주류시장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소비자용 블루투스 헤드셋을 선보인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프리미엄 제품군을 가지지도 않다가 에어 팟 등장 이후 발 빠르게 문제점을 개선해나가며 버즈 브랜드를 안착시켰으며, 기어 시리즈의 문제점 역시 갤럭시 워치에서 깨끗하게 이미지 세탁 후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중입니다.

삼성전자의 사용자 경험 기반 제품 개선 방향은 대단히 저돌적이고 기업규모와 다른 신속함이 장점이긴 하지만, 그들이 외쳤던 “World first, World best!”는 솔직히 어디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갤럭시 폴드 라인업이 명맥을 이어가는 느낌일까요?

 

인간은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엘지전자가 뜬금없는 매스 프리미엄이라는 용어를 내세우면서 체질개선에 나선 지 몇 년 만에 또 뜬금없는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바로 LG WING입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9년 5월부터 준비한 전략 스마트폰이라고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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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새로운 폼팩터는 문제가 안됩니다. 솔직히 RTOS 기반 시장이었다면 열광했을 레이아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안드로이드와 iOS에 익숙해졌으며, 앱스토어를 통해 기능을 업데이트하고 새로운 경험치를 쌓아가는 세상에서 살고 있죠.

새로운 하드웨어에 대한 아이디어는 모든 제조사가 들고 있는 이슈입니다. 너무나도 다양한 레이아웃이 내부에서 검토되고 사장되고 있는데, 이중 한 가지가 엘지전자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상황이죠.

사실 폴더블이니 롤러블이니 하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발전 방향이고 어디에서든 누군가 선보이리라 생각하는 범주에 들어갑니다. 

결정적으로 범용 OS라고 볼 수 있는 안드로이드는 10 버전부터 공식적으로 폴더블 디바이스 대응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제공되기 때문에 손쉽게(?) 신규 레이아웃을 도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엘지 WING의 경우는 상황이 좀 달라집니다. 

메인 스크린 외에 스퀘어 디스플레이가 1개 더 추가된 상황에서 이 화면 구성은 어떻게 사용하든 조금 애매해집니다. 실제 프로모션은 메인 디스플레이에 실행 중인 앱의 보조 입력도구로써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앱 개발사들이 순순히 엘지 윙 하나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이미 시장이 쪼그라들어 과감한 투자조차도 쉽지 않은 엘지전자가 수많은 개발사들에게 개발비를 지불하기는 쉽지 않을 테고요.

결국 몇 가지 프로모션을 위한 소수의 앱만 보조 디스플레이에 대응하긴 했으나 이후 다른 앱에서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기대하는 것은 요원합니다.

심지어 디스플레이 전환 시점에 시각적 블라인드 효과가 없어 렉이 걸리면 사용자는 즉각적으로 눈치챌 수밖에 없습니다. 

110만 원에 근접하는 가격에는 더 고성능의 제품도 이미 있다 보니 굳이 화면을 돌려야 하는 이유가 없다면 구매력은 감소할 수밖에 없죠.

본문의 시작점에서 소개한 G5가 소프트웨어로 재현되는 상황이 우려됩니다. 

 

“기획은 새롭게, 또는 더 나아지게 하는 것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더 좋은 방법의 제안이나 라이프 스타일의 개선, 더 행복한 기분 등 사용자가 더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첫 번째 단계라고 믿습니다. 

혹은 지금까지 우리가 놓친 무언가, 아직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도 역시 기획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획자들의 다양한 고민들이 하드웨어 또는 소프트웨어, 콘텐츠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소비되고 있습니다. 

위 사례를 통해 기획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것을 고민해야 할지 영감을 얻을 수 있길 희망합니다.

 

 

쥐군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