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은 헬스장
잠시 열병처럼 지나갈 것 같았던 코로나19 사태가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정확하게는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팬데믹이 선언된 지 벌써 7개월이 지났다. 현재 팬데믹의 진행상황을 보면 전 세계적 유행 이전으로 조만간 돌아가는 희망을 갖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리고 코로나19는 확진자뿐만 아니라 지구 상 모든 이들의 일상을 바꿔 놓았다. 바이러스 확산이 심해지면서 다른 실내 밀집시설과 마찬가지로 헬스클럽도 문을 닫아야 했다. 지금은 다시 영업을 재개하였지만 헬스장이 코로나19 진원지로 지목받아 회원들의 이용이 이전에 비해 급격하게 줄었고 그 피해는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실내체육시설에 대한 이용제한 및 기피 심리 등으로 계약해지를 둘러싼 소비자분쟁이 증가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헬스장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총 1,995건으로 전년 동기(1,298건) 대비 53.7% 증가하였다. 이중 계약해지 관련 피해가 93.1%(1,858건)로 대부분이었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헬스장 이용이 제한을 받거나 소비자가 이용을 꺼리면서 계약해지 요청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홈트레이닝의 급부상
이러한 상황은 헬스장을 주기적으로 찾던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게 하였다. 바로 ‘홈트’이다. ‘홈트’는 홈트레이닝의 줄임말로 헬스장에 가지 않고 집에서 운동하며 건강을 챙길 수 있다. 맨몸 혹은 저렴한 기구들을 활용하여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것만큼 운동 효과를 보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홈트를 하는 데 있어 큰 비용이 들지 않아 진입장벽이 낮고, 필요한 기구들도 큰 부담이 없다. 여러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구들에 대한 소독 및 방역관리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편안한 집에서 자기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이 큰 장점이다.
홈트의 단점 또한 극명하다. 전문트레이너가 자세교정을 해주지 않기에 초보자의 경우 효율적인 운동이 쉽지 않다. 또한 잘못된 자세로 운동을 지속할 경우 뜻하지 않은 부상을 겪을 수 있다. 나 역시 전문트레이너 없이 운동을 하다가 근육통으로 고생한 적이 있고 무리한 유산소운동으로 체지방을 줄이기는커녕 족저근막염으로 되려 강제 휴식을 맞은 적이 있다. 특히 트레이너들 특유의 ‘조금만 더! 한 세트 더!’라는 동기부여 멘트의 부재는 홈트족들이 쉽사리 체력의 한계에 굴복하게 만든다. 오랜 기간 운동을 한 홈트족은 자기주도적 운동이 가능하지만 혼자 운동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문가의 도움이 아직은 절실하다.
홈트+트레이너 = 미러
이전에 소개한 적 있는 ‘다노‘와 같은 다이어트 앱을 이용하면 전문트레이너의 관리를 스마트폰을 통해 원격으로 받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보다 한층 더 진일보한 헬스케어 디바이스들을 선보였다. 그중 최근 가장 이슈가 되었던 것이 바로 ‘미러’이다. 2020년 8월 코로나19사태로 전 세계가 고통에 신음할 때 요가복계 애플과 같은 룰루레몬이 ‘미러’를 5억 달러(한화 약 6천억 원)에 인수했다. ‘미러’의 창업자 브린 퍼트넘은 하버드대 출신의 뉴욕시 발레단 경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미 뉴욕에서 인정받은 그녀의 트레이너 경력이다.
뉴욕에서 고급 헬스장과 스튜디오에서 트레이너로 활동하며 인지도가 높은 선배 트레이너들과 운동 생리학자들로부터 배운 트레이닝에 대한 노하우를 집약한 자신의 헬스 스튜디오를 운영하였다. 그녀의 스튜디오는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특히 뉴욕매거진은 ‘최고의 운동법’을 제공한다며 호평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가 임신을 하면서 심한 입덧으로 출근 자체가 어려워졌다. 그녀의 회원들 또한 임신으로 이전과 같이 주기적인 헬스 스튜디오 방문이 어려워졌다. 브린은 홈트를 고민하면서 기존의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는지 찾아보았다. 스마트폰에서 실행하는 헬스케어 앱으로 이용자가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TV는 오락적인 목적이 다소 강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브린은 기존 기술로는 헬스장의 경험을 대체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고민을 갖고 있을 즈음 브린이 운영하는 헬스 스튜디오 내 추가로 거울을 설치하였는데 회원들의 반응이 그 어느 때보다 긍정적이었다. 운동을 하면서 거울을 보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과정이었고 거울을 통해 헬스장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오프라인 현장에서의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한 브린은 디지털화를 통해 운동과 개인 트레이닝의 시간적, 거리적 제약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미러’를 고안하게 되었다.
브린은 하드웨어의 완성도보다 견고한 브랜딩과 소비자경험에 더 우선순위를 두었다. 그 결과 초기 투자유치 시 ‘미러’의 프로토타입을 제작하였는데 당시 인터랙션 기능은 구현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3분짜리 운동 영상을 재생하며 홈트의 미래를 제시하였다. 당시 투자자들은 브린이 시연한 홈트의 미래에 동의하였고 초기 투자를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초기 투자금으로 드디어 인터랙션이 구현된 프로토타입을 제작하였고 북미 최대 IT 온라인 매체 테크크런치가 개최한 스타트업 콘퍼런스에서 ‘미러’를 소개하였다. 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미러’ 웹사이트를 통한 주문이 폭발적으로 밀려들어왔다.
‘미러’는 스마트 거울에 나온 강사의 동작을 따라 하며 운동을 한다. 마치 동화 백설공주처럼 거울 속에 트레이너가 소환되어 운동을 시연하며 이용자들을 끊임없이 격려한다. 영상 배경은 검은색으로 통일하여 트레이너가 바뀌더라도 전체적인 콘텐츠의 룩앤필을 유지하였다. 그리고 콘텐츠가 스트리밍 방식이기에 화질을 무작정 높이기보다는 적절한 화질로 콘텐츠의 원활한 재생을 꾀하였다. 결과적으로 ‘미러’는 깔끔한 영상을 끊김없이 전달할 수 있었다.
‘미러’가 많은 이용자들의 선택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풍부한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요가부터 라틴댄스까지 50여 가지 이상의 다양한 종류의 운동 콘텐츠를 입문자 과정부터 고급과정까지 갖췄다. ‘미러’를 이용하며 흥미로웠던 점은 이들이 운동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마치 드라마 본방송을 제공하고 이후 케이블에서 다시보기로 해당 드라마를 제공하는 국내 케이블TV와 흡사하다. 라이브 클래스 진행 후 녹화된 라이브 클래스를 다시보기 즉 온디맨드 형식으로 제공한다. 이를 통해 하나의 콘텐츠로 라이브클래스와 일반클래스 두 가지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운영의 효율을 높였다.
애플와치를 ‘미러’와 연동하고 라이브 클래스에 참여하면 트레이너가 참여자들의 심박 수를 확인할 수 있다. 트레이너가 실시간으로 다수의 수강생을 상대하다 보니 채팅보다는 참여자의 상태를 축약적으로 보여주는 심박수로 참여자들의 운동상태를 확인하고 격려한다. 또한 참여자는 원하면 라이브클래스 중 이모티콘을 보낼 수 있다.
그리고 일대일 트레이닝 또한 제공하는데 트레이너의 가능한 시간대를 이용자가 예약하면 된다. 일대일 트레이닝은 신청 건 별로 결제된다. 케이블에서 유료영화 시청하는 것과 같다. 다만, 실제 트레이너와 진행하다 보니 짧으면 4-5일 길게는 10일 전에 예약이 필요하다.
‘미러’의 가장 큰 단점은 예상외로 디스플레이 자체의 기능과 스펙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지만 창업자 브린은 하드웨어가 ‘미러’ 사업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미러’가 일반 TV와 다른 점은 스마트폰처럼 카메라가 내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실 TV 제조사들이 소비자들의 프라이버시 우려 때문에 탑재하지 않는 것이지 기술적인 문제는 아니다. 카메라의 화소는 5메가픽셀로 고사양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촬영용이 아닌 개인트레이닝을 위한 화상통화용이란 점을 고려하면 적당한 스펙이다. 이밖에 특별한 점은 디스플레이가 세로형이라는 건데 사실 요즘은 중소기업도 세로형 TV를 70만 원대에 출시했기에 혁신적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집에 ‘미러’와 같은 기기가 하나 정도 있으면 나쁠 건 없다. 팝스타 앨리샤 키스도 미러를 선물로 받고 크리스마스 선물 받은 10대 소녀처럼 기뻐했으니까.
다만, 가격 또한 결코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특별하다. 순전히 ‘미러’ 기기값만 1,495달러(한화 약 170만 원)다. 설상가상 큰 맘먹고 36개월 할부로 기기를 장만하더라도 기기만으로는 아무런 활용도가 없다. 운동 콘텐츠를 재생하기 위해서는 넷플릭스처럼 ‘미러’를 구독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격은 월 41.58달러(한화 약 4만 7천 원)로 넷플릭스 풀HD 화질을 제공하는 스탠다드 멤버십의 약 4배이다. 거기다가 1:1 트레이닝을 예약하려면 30분 세션 당 40달러(약 4만 5천 원)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물론 예약은 수업의 종류와 트레이너에 따라 짧게는 3일 길게는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한다. 결과적으로 집을 나가지 않는 편의성을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은 엄청나다. 물가의 차이는 고려해야 하지만 ‘미러’가 국내에 정식 수입된다면 적어도 가성비를 소비의 기준으로 삼는 잠재적 회원이라면 계산기를 여러 번 두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미러는 매력적이다.
‘미러’를 사용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심플하고 직관적인 UI다. ‘미러’가 이 부분에 얼마나 자신이 있었으면 170만 원짜리 기기를 출고하면서 그 흔한 설명서 하나 없이 보낸다. 아니나 다를까 설명서가 필요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닌 듯하다.
‘미러’를 이용하면서 꾸준히 체감한 것은 이 서비스를 기획한 창업자의 확신이다. 보통 하드웨어 제조사라면 제품의 스펙을 결정하고 출시와 함께 마케팅전략과 브랜딩을 고민하겠지만 ‘미러’의 창업자 브린은 처음부터 ‘미러’를 이용할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이들에게 어떠한 경험을 제공할지 선명하고 뚜렷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브린은 ‘미러’가 가정에서 TV와 차별화된 콘텐츠 소비 채널로 자리 잡길 바라고 있다. 이제까지는 TV를 통해 단순히 시청만 해왔다면 ‘미러’를 통해 이용자와 한층 더 가깝게 연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몰입감 있고 상호작용이 가능한 ‘미러’로 새로운 시장을 열고 싶은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브린이 이전 인터뷰에서 했던 말로 글을 마치겠다.
고객의 니즈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기술을 가진 사람보다 더 귀하다.
제조업 기반의 마케팅에서는 4P가 기업이 기대하는 마케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실시하는 마케팅 활동으로 많은 기업들이 신봉하였다. 4P는 제품(product), 유통경로(place), 판매가격(price), 판매촉진(promotion)을 뜻한다. 하지만 이제는 상품과 서비스보다 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을 우선하고, 가격보다 고객이 체감하는 비용(cost to customer)을 낮추고, 일방적인 홍보보다 소통(communication)을 중시하고, 기존의 판매방식을 고집하기보다 고객의 편의성(convenience)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첫째도 고객이고 둘째도 고객이란 말이다. 앞으로 고객중심의 ‘미러’와 기업의 창업자 브린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해당 콘텐츠는 Jimmy Cho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