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 브랜딩, 그리고 기술

 

 

올 한 해 가장 각광받았던 아이템을 꼽는다면 ‘닌텐도 스위치’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집에서 즐기는 게임은 각광받았고 스위치는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나 ‘링 피트 어드벤처’ 등은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도 불구하고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수요가 몰린 게임 타이틀이기도 했습니다.

이미 이전 세대 게임기인 wii를 통해 기술을 통한 게임 회사로 대중에게 인정받은 닌텐도가 원래 잘하던 콘텐츠를 힘입어 계속된 성장을 이뤄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출시된 스위치는 이미 출시 때부터 TV에서도 휴대용으로도 할 수 있는 게임기의 콘셉트와 ‘라보(LABO)’를 통한 즐기는 홈 게임 머신으로서의 기술을 통해 각광받았습니다. 꾸준히 출시되는 명작 타이틀과는 별개로 계속된 신기술 적용을 통해 보다 나은 경험을 고객에게 제공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게 보이는 회사죠. 기술과 브랜딩, 두 단어와의 관계를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케이스 스터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올 가을 닌텐도 스위치 게임 중 가장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게임 중 하나는 ‘마리오 카트’의 후속작입니다. 공개된 티저 영상이 SNS에 퍼지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나라의 ‘카트 라이더’와 비슷한 마리오 카트는 대표적인 장수 게임 타이틀 시리즈인데 이번 신작은 단순히 모니터 속에서 즐기는 게임이 아닌 집안에 여기저기 트랙을 설치하고 실제 장난감 자동차를 세팅한 후 게임기에서 조작하면서 실제 집안을 누비는 화면이 모니터에 게임으로 나오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장난감 자동차가 움직이며 장착된 카메라로 찍은 영상이 실시간으로 게임 화면으로 나오는 것이죠. 마치 드론을 이용해 하늘에서 촬영한 것을 통해 드론 레이싱을 펼치듯 집안에서 게임기를 통해 실제 장난감 자동차를 조작하는 것입니다. 다 아는 게임성에 다 아는 기술 사례가 만나 새로운 재미를 낳고 있는 것이죠.

 

 

<마리오 카트 라이브> 동영상

 

앞서 잠깐 언급한 라보 역시 그렇습니다. 모션 인식을 게임성의 핵심으로 하는 스위치 특성에 닌텐도의 주 고객층 중 하나인 저학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더했습니다. 마치 종이접기를 통해 내가 만든 장난감으로 게임을 할 수 있는 경험 제공은 우리 고객이 느끼는 원천적 재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여 내놓은 제품입니다. 그 보다 화려한 부속 도구를 출시해서 내놓을 수 있는 것도 DIY로 간단하게 참여해서 만들 수 있도록 만든 점은 이 회사가 코어(core) 고객을 대상으로 적정 기술을 쓰는데 상당한 역량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닌텐도가 갖고 있는 브랜드를 극대화할 수 있을까? 기술은 어떻게 닌텐도의 브랜딩에 기여할 수 있을까의 산물인 이 타이틀과 하드웨어는 기술이 어떤 고민을 통해 기존 브랜드에 녹아들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기술 이전에 우리 브랜딩을 먼저 정리하는 게 필요한 것이죠. 마케팅의 기본인 누가 우리의 코어 고객인가?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는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이며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VR, 모션인식 등의 기술은 브랜딩 위에서 제한적으로 극대화됩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이 나왔으면 브랜딩과 상관없이 기술에 대한 몰이해 덕분에 더욱 기술 중심으로 서비스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신기한 것, 새로운 경험에 혈안이 되어 업계에서 최초로 뭔가를 적용하려는 훈장에 경영진의 관심이 쏠리는 사업 아닌 관점이 개입하곤 합니다. 여기서 몇 시간 내 배송을 만들면 굳이 그런 배송이 필요 없는 아이템에서도 그냥 해 봅니다. 수요가 있는지 고민은 구시대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하죠. 실험과 분석, 피드백의 사이클은 물론 최근의 미덕이지만 정말 중요한 것, 우리의 견고한 장벽은 여지없이 흘러 내려갑니다.

 

 

 

탄탄한 브랜드에 대한 정의는 새로운 기술에 조급하게 반응하지 않게 만들어 줍니다.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보다 분명한 관점이 나오게 되죠. 지금 기술 도입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지만 별다른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상당수의 기업은 원래부터 브랜딩 내지 기업의 사명 정의, 코어 고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기업입니다. 그저 솔루션 기업의 영업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죠.

 

닌텐도는 폐쇄성을 가진 회사입니다. 그래서 애플(Apple)과 비교되곤 합니다. 닌텐도는 차별화된 콘텐츠의 지속적 공급이 게임기 가치를 유지하는 방법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게임기 시장에서 한 때 인기 있었던 하드웨어들도 결국 소프트웨어의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할 게임이 없어 사장된 케이스가 많이 있었습니다. 닌텐도는 마리오를 비롯해 젤다 등 자체 제작한 일정한 톤의 게임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마리오가 횡스크롤 위에서 움직이기도 하고 보드 게임처럼 돌아다니기도 하고 카트를 타기도 하며 대전 게임을 하는 것으로도 말이죠. 고객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면 그것을 토대로 타이틀을 넓히고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세계관을 넓혀 나가기도 합니다.

 

 

마치 마블 유니버스 같은 전략입니다. 마리오 카트를 하다 보면 닌텐도의 각종 게임 타이틀에 나온 캐릭터들을 선택해서 다양한 게임에 등장한 코스를 달릴 수 있습니다. 마리오 카트를 하면서 다른 게임을 자연스레 접하고 다양한 구매 동기를 유발합니다. 대전 게임도 미니 게임도 마찬가지죠. 마치 크리스 주크가 핵심을 확장하라고 한 것처럼 마리오는 브랜딩의 출발점을 잘 알고 있고 거기서 어떻게 핵심을 확장해 거대한 세계관을 만들어 더 많은 타이틀을 팔면서 새로운 하드웨어로 어떻게 기존 고객들을 유인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세계관을 만들 때 새로운 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마리오 혼자 이런저런 모습으로 나온다면 금세 고객들은 질려 버리겠죠. 자동차 앞모습이 비슷한 BMW는 시리즈 각각의 다양성이 있는 것 같지만 쌍용차의 코란도는 ‘큰 티볼리’ 이야기를 들으면서 판매량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까요? 티볼리의 디자인이 쌍용의 코어는 아니라는 것이죠. 라인을 확장할 때는 각각의 새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비슷하다면 내부 제품끼리의 충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가장 쉬운 확장은 같은 고객에게 다양한 카테고리를 파는 ‘컬처 브랜드’로의 진화입니다. 닌텐도에서 취급하는 게임들의 공통점들을 본다면 어떤 것을 다루지 않는 게 브랜딩을 지키는 방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돈이 된다고 점점 브랜딩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이것저것을 취급하기 시작하면 복구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 됩니다. 코어 고객을 락인(lock-in) 시키고 주변 고객으로 확장해야 하며 문화적인 확장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을 잊어선 안 되겠습니다.

기본 가치가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쿠팡은 로켓 배송, 코카콜라는 탄산, 리바이스는 튼튼함처럼 처음 이 제품과 서비스가 고객에게 확고하게 각인된 요소가 있습니다. 쿠팡이 다양한 물건을 초저가에 팔고 코카콜라가 라이트와 제로로 제품 라인을 늘리고 리바이스가 핏을 강조한 제품군을 강조하고 있지만 기본 가치 위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느리지만 초저가인 쿠팡이나 살은 안 찌지만 탄산이 덜한 코카콜라, 핏은 살지만 잘 찢어지는 리바이스 청바지는 생각보다 커다란 위기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닌텐도의 성공은 기본 가치가 잘 정리되어 있고 그 위에서 새로운 기술이 논의되면서 ‘끌려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무 기술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문제지만 ‘끌려가면서’ 기존 가치를 희석시키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많은 생각과 시간이 필요한 기획이 빠른 시험과 피드백 사이클 위에서는 진부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마치 공수 전환이 빠른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에서 느린 패스 마스터 한 명이 필드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축과 구축, 그 다은 구축으로 연결되는 IT적인 생각 이상으로 비즈니스는 무형의 가치로 선택받아 오래 살아남습니다. 기획의 미덕이 여기에 있는 것이죠. 혹시 트렌드를 쫒고 있다면 그전에 내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자산은 무엇인지 셈은 다 하고 출발하는 것인지 멈춤이 필요한 때입니다.

 

 

 

 

PETER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