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마케팅 업무를 처음 맡았을 때 제 꿈은 마케팅 전문가로서의 커리어가 완성되고, 뭔가 그럴듯한 캐릭터를 상상하면서 공부하고 프로젝트를 맡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덧 꽤 많은 시간이 흐르고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나도 참 허무맹랑한 꿈을 꾸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요.
현업 마케터들의 앞으로 남은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해볼까 합니다.
그 많던 마케터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무래도 긴 시간 동안 마케팅 관련 일을 하다 보니 마케터 인맥은 괘 두터운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동기라고 볼 수 있을 마케터들은 점점 사라져 가면서 어느덧 제 주변에는 10명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되는 것일까요?
다들 나름대로의 커리어가 만들어졌고, 나름 굵직한 프로젝트 경험들도 있는 사람들인데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사실 마케팅이라는 게 참 미묘한 포지션입니다.
과거와 달리 현재의 마케팅이라는 영역은 학문으로 인정되고 있고, 산업 다방면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는 분야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대학이 마케팅을 가르치고 있고 다양한 이론들을 학생들에게 알려줍니다.
하지만 마케팅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이게 참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ROI를 이해해야 하며 모든 마케팅 활동에는 재무적 평가를 고려해야 합니다. 투자 대비 수익을 논하지 않는 마케팅은 그냥 과제물 수준에서 벗어나질 못한 거죠.
제품에 대해서도 가장 많이 이해해야 하며, 이를 위해 각종 트렌드와 기술을 부가적으로 학습해야 한다는 분야 장벽이 존재합니다.
전체적인 비즈니스 로드맵을 이해하고, 메시지를 발굴해야 하며, 고객의 심리를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에 소비 심리학을 시작으로 군중심리까지 다양한 형태의 이해가 요구됩니다.
데이터 마케팅이 본격화되면서 데이터 마이닝, 통계분석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기도 하는데, 사실 이쯤 되면 이게 마케팅의 영역인지 아닌지 혼동이 올만한 상황입니다.
시장은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1990년대 말보다 2000년대 초반의 변화는 더 빨랐으며, 현재의 일주일은 과거의 한 달보다 더 빠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고 일어나면 유행이 바뀌고 시장 판도가 달라지는 게 놀랍지 않은 세상입니다.
Martketer라는 이름에 맞게 시장을 가장 잘 이해해야 하는 이들로써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높은 직무 피로도를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치우치고 있습니다.
경쟁은 심화되지만, 이를 위한 환경은 업무 인터페이스의 개선에 머무르는 경우도 많죠.
제 주변의 마케터가 왜 직군을 변경했는지는 차치하고, 당장 저 역시 마케팅의 실무를 내려놓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고도화된 마케팅 기법과 이를 수행하는 실무자의 속도 차이는 물론이며, 이를 통제해야 하는 관리자와 고객의 인지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속도는 빠르게 변화하지만, 제품을 만드는 포지션은 마케팅 포지션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특히 제품은 6개월 뒤 혹은 1~2년 뒤를 예측하고 만들어지기 때문에 시장과 제품의 메워지지 않는 간극이 발생할 수도 있죠. 이런 점들은 마케터들이 더욱 힘들어지게 만드는 요소들입니다.
마케터의 미래는 밝을까?
꽤 긴 시간 동안 마케팅 실무를 맡아오면서 느낀 점은 시간이 흐를수록 업무 난이도와 나에게 돌아오는 성취의 비례가 무너진다는 점이었습니다. 단위가 커지고, 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 문제가 아닌 고객과의 점접이 희미해지고, 저 역시 시장의 속도에 발을 맞추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는 점 역시 심각한 고민거리가 되었습니다.
주위를 돌아보고, 지난 시간을 돌이켜봤을 때 개인적인 경험치 안에서의 마케터는 수명이 비교적 짧은 편입니다. 더 젊고 유행에 민감하며 세대를 아우르고 새로운 기술에 쉽게 대응하는 후배들은 계속해서 치고 올라오지만, 시니어 마케터는 이 속도를 따라가는 게 버겁습니다.
자연스레 수요가 줄어들고, 마케팅 경력자는 새로운 일을 고민할 시점이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나무보다는 숲
다행히도 마케터로서의 삶은 꽤 다양한 방면의 상식과 지식을 제 머릿속에 채워줍니다. 깊게 파고들어가면 당연히 각 분야 전문가에 빗대기 어렵겠지만 상당히 폭이 넓은 지식과 이해는 대부분의 직군이 가지는 허들을 크게 낮춰줍니다.
재무, 제조, 기획, 영업은 물론이며 글을 쓰거나 미디어 콘텐츠를 개발하는 영역까지 마케터가 겪어보지 못한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냉정하게 바라보면 마케터는 생각보다 매우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인력입니다.
마케터의 입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나는 그만큼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미 많은 교육기관에서 과거 1990년대 디자이너를 찍어내듯 마케터를 생산해내고 있거든요.
모든 마케터들이 단순히 광고 캠페인을 잘 돌리는 것을 본인의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광고 캠페인을 설계하는 것을 공부하길 바랍니다.
제안서를 잘 쓰는 것이 아닌 제안을 잘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배너 카피보다 제품의 슬로건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입찰 전략 능력보다 고객을 다루는 능력이 있길 바랍니다.
확고한 믿음보다 편견이 없는 시야를 가지길 바랍니다.
쥐군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