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때리는 말들이 있다. 얼마 전, 평소 존경하는 한 창업가가 던진 일성이 그랬다.
어떤 사회적 문제들(주로 정부가 전통적인 공급자였던 공공서비스/공공재 영역)은 비영리라는 옷을 입고 있을 때 훨씬 더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회혁신기업들이 영리의 함정에 빠져있습니다.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생태계와 투자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이해관계들로 인해 “영리=혁신”이라는 잘못된 신화에 사로잡히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교육 분야 비영리단체의 설립자인 이 창업자는 영리 기업 못지않은 규모와 지속 가능성을 만들어내었다. 그가 설립한 비영리 모델은 서울을 벗어나 전국으로, 또 국내를 벗어나 해외에도 이식되기 시작했다.
무릎을 치게 되는 말들도 있다. 얼마 전, 소풍에서 함께 일했던 한 동료의 고백이 그랬다.
지역에서 필요한 사회혁신을 만들어나가는 지역 혁신조직들이 많다. 그러나 지역 문제에 집중하는 이 조직들은 현재 국내의 임팩트 투자사에겐 투자 대상이 아닌 것 같다. 역설적으로 현재의 임팩트 투자에서 지역 혁신은 빠져있다. 이 모델들에 Grants와 액셀러레이팅이 적절히 주어진다면, 지역 문제 해결에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소풍에서 이제 로컬 관점의 투자(Local Lens Investing)를 해야 하지 않나 싶다.
큰 임팩트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규모화가 가능해야 한다며, 스케일업(Scale-up)이 가능한 혁신 모델들에 대한 관심을 이어왔던 옛 동료는 어느새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지역 혁신 모델들에 관심을 가진 임팩트 액셀러레이터가 되어 있었다.
해를 거듭하며 급성장 중인 한국의 소셜벤처 및 임팩트 투자 생태계를 보며 영리와 규모화의 함정에 빠져있다는 이 말들이 계속 마음속에 남았다. 한동안 이 말들을 담고 있어서야 깨달았다. 국내 임팩트 투자의 다양성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원래 임팩트 투자의 스펙트럼은 넓다. 재무적 수익만을 강조하는 전통적 투자(Traditional Investing)와 사회적 가치만을 강조하는 전통적 자선(Traditional Philanthropy)의 사이에서 재무적 수익과 사회적 가치를 어느 정도로 혼합(Mix) 하느냐에 따라 여러 임팩트 투자 모델이 가능하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이 다양성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임팩트 투자사 대부분은 개인투자조합이나 벤처투자조합을 결성하여 투자를 하고 있다. 전체 임팩트 펀드에서 정부 산하기관인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나 한국성장금융의 출자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 에 달한다. 자연스럽게 영리 기업만을 대상으로 지분투자나 대출을 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인증사회적기업을 위한 투자조합들도 마찬가지다. 비영리나 협동조합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 중심의 금융지원이 존재하지만, 담보가 없거나 재무구조가 열악하다면 이마저도 요원할 따름이다.
임팩트 투자와 벤처 투자의 교집합
종종 벤처 투자는 모험자본이기 때문에 새로운 혁신의 태동을 지원하는 사회적 가치가 크다며 임팩트 투자와 벤처 투자 자체를 구분하는 것이 난센스라는 말을 듣곤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큰 틀에서 보면 자본으로 하는 ‘투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한국의 상황만 보자면 ‘임팩트 투자’가 ‘벤처 투자’의 한 영역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는 한국 임팩트 투자자들의 숫자가 아직 적고 또 그 다양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다. 아무래도 벤처투자의 역사가 임팩트 투자보다는 길고, 한국을 포함해서 전 세계적으로도 임팩트 투자가 확산되기 시작한 지는 아직 10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나씩 좁혀보면 임팩트-투자와 벤처-투자는 공통점만큼이나 차이점도 많다. 예를 들어 벤처-투자는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총칭하는 말이다. 어떤 대상에 투자하는지에 중심이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임팩트 투자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프로젝트나 조직에 이루어지는 재무적 지원과 투자’를 망라하는 개념이다. 즉, 대상이 법인이 아니어도 심지어 비영리법인이라도 임팩트 투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물론 어느 지점을 보느냐에 따라 임팩트-투자와 벤처-투자는 쌍둥이처럼 보일 수도, 서로 외계인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임팩트 투자와 벤처 투자는 영리와 비영리로 구분하더라도, 법인과 프로젝트로 구분하더라도, 재무적 수익과 사회적 가치로 구분하더라도 아직 쌍둥이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 임팩트 자금의 다양성이 떨어지니, 곧 임팩트 투자의 다양성도 떨어지는 것이다. (민간에서 비영리나 프로젝트에도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사는 벤처 기부 회사로 익히 알려진 C-program이나 SK의 행복나눔재단이 거의 유일하다. 벤처의 방법으로 자선이나 비영리 지원을 하는 독특한 곳이다.)
큰 임팩트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부차적인 문제일까?
한국 임팩트 투자의 과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다수의 임팩트 투자자 및 투자조합의 구조상 한국 임팩트 투자사들에겐 투자금의 회수가 필수적이다. 투자금 회수를 포기하고서라도 임팩트를 고려해 줄 출자자도 부족하고 임팩트를 설득하고 증명할 언어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소풍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임팩트 투자도 본질적으로는 자본의 영역에 있는 일이니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로 인해서 벤처 투자와 임팩트 투자의 구분이 사라지는 것 같다거나 사회 혁신이 영리의 함정에 빠져있다는 이야기가 점점 많이 들려온다는 점이다.
현재를 긍정적으로 보자면 전통적인 벤처 투자자들이 투자 시에 임팩트를 고려하기 시작했고, 영리의 방식으로 사회혁신을 이뤄낸 모델들이 큰 주목과 투자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기존 벤처 투자사들과 비교하여 임팩트 투자사들의 차별성이 떨어지고, 또 임팩트를 고려하여 출자하는 자본도 부족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임팩트 투자사들은 의미를 좇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임팩트 투자는 사회문제 해결에 솔루션을 제시하여 큰 임팩트를 창출하는 모델에 투자한다. 작은 규모, 적은 임팩트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큰 규모, 큰 임팩트를 갖춘 모델들도 처음에는 의미를 좇다 지속가능성이나 성장성에 의문을 갖게 되는 모델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앞서 뼈를 때리는 일성을 날린 창업자의 비영리단체는 그 어떤 영리 기업 모델보다도 못지않은 큰 임팩트를 창출하고 있다.
임팩트 투자사들은 결국 어떻게 다양한 가치와 관점을 고려한 임팩트 머니(Impact Money)를 다양하게 확보할 것인가와 출자자들에게 어떻게 재무적 가치만큼이나 사회적 가치를 회수의 관점으로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두 가지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바라는 지역 혁신도, 비영리나 프로젝트 방식의 사회혁신도 더 활성화될 것이다.
우리는 어디쯤 와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이 많다. 이 고민은 다양한 가치를 고려한 임팩트 투자, 재무적 수익과 사회적 수익의 혼합 수익률을 다양한 기준으로 제시하는 임팩트 투자사, 그리고 이런 임팩트 투자사에 출자할 수 있는 다양한 임팩트 머니(Impact Money), 이 세 축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한상엽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